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이른바 성(城)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이름하여 ‘명박산성’과 ‘국민토성’이다. ‘산성 지키기’와 ‘토성 쌓기’ 그리고 ‘성 빼앗기’는 21세기 서울 도심에서 묘한 감흥을 준다. 이는 분명 정부당국과 국민과의 한판 싸움이다. 애초 이 싸움은 촛불시위대가 비폭력 평화 시위를 행함으로서 가능했다. 촛불시위가 평화적이니 공권력은 예전처럼 촛불을 원천봉쇄할 수도 없고 또 모인 촛불을 강제해산할 수도 없다. 이는 신뢰를 잃은 정부와 공권력의 업보이기도 하다.

◆ 성 싸움이 시작된 연유는 이렇다. 지난 5월 31일 촛불은 4.19혁명 이후 최초로 청와대 앞인 정부종합청사 앞 도로를 점령했다. 순간 ‘해방구’가 형성되었다. 이후 깜짝 놀란 공권력은 세종로 일대를 전경버스로 연결해 바리케이드를 쳤다. 그러나 이 정도로는 성난 민심을 막기에 한계가 있었다. 어느 날엔가는 전경버스가 끌려 내려지기도 했다. 이러던 중 100만 촛불대회인 6.10항쟁 21돌이 왔다. 서울을 비롯한 전국엔 긴장감이 돌았다. 이날 정부의 선택이 궁금했다.

◆ 6.10항쟁 21돌의 날, 정부가 선택한 것은 세종로 네거리 이순신 동상 바로 앞에 컨테이너 박스로 성을 쌓는 것이었다. 시민들은 이를 ‘명박산성’이라 불렀다. 그날 이른 아침부터 공권력은 인천에서 컨테이너 박스를 들여와 두 겹에다 이층으로 성을 쌓았다. 컨테이너 박스 안에는 모래주머니를 넣고 각 컨테이너 사이는 용접으로 때웠다. 백주에 그것도 한 나라의 수도 한복판에서 컨테이너 박스를 쌓아올리는 광경은 지금 시기가 5공으로 회귀한 듯한 착각을 일으켰다. 세종로 네거리에서 반나절 만에 철옹성이 축성된 것이다.

◆ 국민들이 가만있을 리 없다. 시민들과 네티즌들은 명박산성에 대응해 ‘48시간 비상행동의 날’인 21일 국민토성을 쌓겠다고 선언했다. 이후 공권력과 촛불간의 숨바꼭질이 전개됐다. 21일 당일 촛불집회 도중 위급신호로 1천명의 시민들이 억류(?)되어 있는 모래차를 구출하기 위해 서울역으로 급파됐다. 시민들은 움직일 수 없게 된 차에서 모래를 비닐봉지에 담고 개미떼처럼 세종로 네거리로 달렸다. 이어 전경버스 차벽 앞에다 릴레이로 모래주머니를 전달해 국민토성을 축성했다. 결국 경찰 차벽을 점령했다.

◆ 명박산성의 성주(城主)는 이명박 대통령이지만 국민토성의 성주는 국민이다. 명박산성은 조롱거리가 됐지만 국민토성은 감동적이다. 여기에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대통령은 감동을 통해 국민의 마음을 움직여야 한다. 대통령이 감동을 주면 국민은 두말 않고 촛불을 내릴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은 입만 열면 거짓이거나 핑계 일색이다. 이번에 대통령은 청와대 뒷산에서 무엇을 봤을까? 모래주머니를 나르고 국민토성을 쌓는 촛불들의 감동적인 모습을 봤다면, 그리하여 국민을 진정으로 섬기겠다면, 이제 명박산성의 성주는 백기를 들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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