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 선(민주노동당 자주평화통일위원장)
 

15-16일 금강산에서 진행된 '6.15공동선언 발표 8돌 기념 민족통일대회'를 다녀온 황선 민주노동당 자주평화통일위원장이 <통일뉴스>에 참관기를 보내왔다.

'촛불발언' 등으로 우여곡절도 있었던 이번 행사에 대한 참가자들의 입장은 다양할 것이므로, 다른 참가자들의 참관기에 대해서도 <통일뉴스>는 항상 문을 열어두고자 한다. /편집자 주

 

▲ 15,16일 금강산에서 열린 '6.15민족통일대회'에 참가한 민주노동당 대표단이 포즈를 취했다. 왼쪽에서 두 번째가 필자 황선 자주평화통일위원장. [사진제공-황선]

여섯 번째 방문한 금강산,
6.15선언이 발표된 이후 금강산 방문길에 이번처럼 심경이 복잡했던 적이 없던 것 같다.
‘비핵.개방.3000’을 공공연한 대북정책으로 고집하고 있는 이명박 정부 시대에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마침 진부령을 넘는데 비바람이 분다.
령은 늘 기상이 불안정하지만 제 풀에 심란해져서 마음을 다스릴 겸 몇 자를 적었다.

<진부령을 넘으며>

길은 구불거리고
마침 비 뿌리고
주춤 주춤 넘는 길

그래도,
령 넘으면 금강산.

험준산령에 비바람 불어도
이미 저만치 나있는 길
6.15가 닦은 길
허물어지지 않을 겨레의
양양한 전도

6.15 1돌 기념 민족 대토론회 때 금강산 목전에서 불허통보에 좌절한 이후 공식적인 6.15행사 참가는 처음 있는 일이다.
기대와는 달리 긴장감도 높고 낙천적이지만은 않은 것이 역시 남북관계 경색의 여파가 온정리까지 미치는구나 싶었다.

 

▲ 15일 현대문화회관에서 진행된 개막식 겸 민족대회 모습. [사진제공-6.15남측위]

이번 행사에서 가장 큰 난관은 ‘촛불’이었다.
6.15남측위 일부 단체에서 이번 행사 때 촛불문화제 관련 발언이 한 마디도 들어가선 안 된다는 강력한 제기를 했고 6.15남측위 공동대표단 사이에선 이 같은 요구에 대해 만장일치를 보았다는 것이다.

문제는 북과 해외의 대표들은 촛불민심에 대해 저마다 한 말씀 씩 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일부가 지닌 우려의 요는 금강산 행사에서 촛불관련 발언이 나오는 순간 서울시청 앞 촛불은 꺼지고야 말 것이라는 것이었다.
그런 두려움은 말할 것도 없이 이명박 정부와 보수언론이 끝없이 촛불의 배후를 거론하며 운동진영을 색깔론으로 위축시킨 결과이다.

광우병 쇠고기의 위험과 한미 FTA의 부당함에 대해 진작부터 외쳐온 운동진영이 이 경이로운 촛불의 물결 속에 보람을 느끼며 새로이 대중들로부터 배우기보다 자괴감에 허우적거리는 모습 역시 그간 정권이 운동세력과 국민을 괴리시키기 위해 이데올로기 공세를 지속하고 투쟁의 끝머리에 들이밀었던 공안탄압과 조직사건의 추억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때문이기도 하다.

남북해외 동포들의 연대자리에서 촛불에 대한 언급을 과도하게 검열한 것은 그것이야 말로 간섭이 지나친 것이다.
행사의 순조로운 진행을 위해 공식문서에서 삭제하는 것을 넘어서 연설에 앞선 언급, 그것도 ‘촛불시위야말로 우리 민중들의 진심을 반영한다’는 취지의 발언에 일부 참가자들이 대회장을 퇴장한 것은 그 모두발언에 순수하게 아낌없는 박수를 던진 대다수 대표단을 무색하게 한 일이다.

금강산 행사에 참가한 교포 한 분이 말했다. “촛불은 시청 앞에서만 들고 있지 않다. 우리 해외동포들도 미국에서 일본에서 유럽에서 함께하고 있는 것이다. 동포끼리 조국의 문제에 연대하자고하는 자리에서 내정간섭이니 하는 것이 섭섭하다.”

우리의 청소년들이 밝힌 촛불이 한국국민을 움직이는 것을 넘어 동포들을 고무하고 미국인들 내에서 조차 미국의 검역체계에 대한 반성과 대외정책에 대한 각성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장한 일이다.

전 세계에 존재하는 진보적 단체들이 박수를 보낼 뿐 아니라 부러운 눈길을 보내고 있다. 미국의 뉴욕타임즈, 워싱턴포스트, CNN도 관심을 보인다. 모두의 관심과 지지는 고마우나 북 혹은 통일운동가의 관심은 사절이라는 것은 촛불을 밝힌 청소년들의 당당한 품과 거침없음에 반하는 것이다.

물론 누군가는 북 혹은 통일인사의 촛불칭송을 두고 온갖 색깔 씌우기에 나설 수도 있다.
그러나 몇몇 인사의 선동으로 촛불에 불이 붙은 것이 아니듯 민족공동행사에서 나온 발언 몇 줄이 각성된 국민주권의식을 단번에 끌 수도 없는 일이다. 그리고 과정에서 숱한 공세를 보란듯이 야유와 조롱으로 넘어서고 있는 우리 국민들이다.

이미 동포들이 둘 이상 모이면 촛불과 한미관계에 대해 토론이 벌어지는 일반적인 풍경이다. 어쩌면 조국의 현실에 대해 가장 관심이 많을 인사들이 모여서 가장 큰 관심사인 촛불을 쉬쉬하게 했으니 그 분위기가 민망했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특히 곽동의 선생은 해외에서조차 조국의 민주화를 위해 발벗고 싸우다 고향 땅에 방문조차 거부당하며 반정부인사로 낙인찍혀 사신 분이다. 촛불에 대한 뜨거운 마음을 어떻게 다 이해할 수 있겠는가.

서울로 돌아와 신문을 보니 또 한 분의 해외위원회 위원장이신 문동환 목사님의 인터뷰 기사가 한 면에 가득하다. 온통 촛불시위에 대한 고무찬양이다. 언짢지도 악영향을 미치지도 않는다.

누군가는 0교시와 광우병 때문에 촛불을 밝히고 누군가는 공기업 민영화가 또 누군가는 방송장악 시도가 어이없어서, 나는 남북관계를 파탄내는 이명박 정부가 한심해서 흥분한다. 촛불소녀들은 “아, 그래요? 그것도 그렇군요”하고 존중할 뿐이다.

 

▲ 황선 위원장(두 번째 줄 맨 왼쪽)이 이정희, 홍희덕 민주노동당 의원들과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사진제공-황선]

두 번째 심각한 상황은 16일 폐막식을 앞두고 벌어졌다. 북의 연설문에 ‘뒤늦게라도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에 합의한다면 과거에 어떤 일을 했든 과거불문하고 통 크게 함께 해야 한다’는 북측 최고지도자의 의지가 적시돼서 들어가 있는 것을 두고 남측 내에서 쟁론이 벌어진 것이다.

이를 두고 삭제를 요청하자거나 그럴 필요까지 있느냐는 의견이 팽팽하게 맞선 것인데 폐막식을 한 시간 지체하면서 벌어진 논쟁으로 말미암아 영문도 모르고 자리를 지키던 남측 대표단은 물론이고 북의 인사들도 불쾌감을 감출 수 없어했다.

결국 다소 수정돼 북측의 여성 노동자가 연설문을 낭독했고 문제의 그 부분에서 대표단은 공감을 박수로 표했다. 또 한 번 오랜 시간에 걸친 대립이 무색한 순간이었다.

중요한 것은 6.15공동위 일부에서 서로의 사상과 제도를 인정하고 민족중시의 정신을 근본으로 하는 남북 합의를 기본으로 세워졌음에도 이를 간과하는 모습을 노골적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이는 6.15정신에 대한 훼손이고 이를 바로잡지 않을 경우 이후 공동위 존망에 심각한 영향을 끼칠 것임은 자명하다.

그리고 남측 일부에서 문제 삼은 부분이야말로 이번 대회를 통해 함께하지 못한 이명박 정부에게 보내는 북측 나름의 의미 있는 메시지였다.

남북해외는 이번 대회를 통해 이명박 정부의 ‘비핵.개방.3000’의 비현실성과 반민족적 내용을 규탄하는 한편 북의 연설문을 통해 ‘이제라도 비핵.개방.3000같은 반북대결정책을 포기하고 6.15를 인정하고 이행하고자 한다면 과거를 불문하고 함께 할 수 있다’는 정치적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국가보안법에 대한 반응만으로 북과 해외의 연설문을 제단하려 했으니 답답하고 안타까운 일이다.

다행이도 이번에 문제가 된 부분은 염려와는 달리 남북해외 거의 모든 대표단으로부터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음으로써 내용적 정당성을 획득했다.
이런저런 계산 없이 통일을 갈망하는 사람들의 명쾌함이 돋보이는 자리였다.

물론 이번 헤프닝(사활을 건듯한 그 모든 것들이 그저 헤프닝이란 말로 정리됐다. 일면 다행이고 일면 씁씁한 일이다)의 원인은 정부에 있다. 국민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생각은 없이 ‘배후조정’ 설에만 매달리니 솔직하고 유쾌하고 발랄한 오늘의 대중과는 다른 류의 피해의식이 있는 사람들은 그 혐의를 피해야 한다는 강박증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일이다.

그리고 국가보안법.
국가보안법에 대한 두려움과 그걸로 덮어쓸 칼은 사실 얼마나 감당하기 힘들었던가. 여전히 우리 사회는 국가보안법의 지배를 받는 사회고 일부는 오늘도 ‘빨갱이’를 가장 혐오하는 대상을 향한 욕으로 내뱉고 있다. 그러니 이산가족 상봉에서도 흔히 듣고 노래자락 속에서도 읽을 수 있는 북녘 동포들의 일상적 감정과 어휘조차 이해할 수 있는 아량을 갖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이겠는가.

6.15공동선언 이후 8년, 6.15민족공동위를 세우고 90년대 죽기로 지킨 3자연대 운동을 많은 사람들이 함께하고 있다.
3자운동의 진전에 비해 남측 내 통일운동 대중화는 더딘 것 같아 초조한 마음이 들 때도 있다.

그러나 진부령을 넘어 금강산이 있고
개마고원을 지나야 백두산에 다다르듯
숱한 할 일을 꾸역꾸역 하다보면 저만치 나있는 길이 눈에 들어온다.
돌아보면 지나온 길이 남은 길보다 멀고 험하다. 되돌아 갈 엄두가 나지 않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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