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0 항쟁 21돌을 맞아 100만 촛불이 모일 것이라며 서울 시청광장과 세종로 네거리 일대에 긴장감과 함께 전운(戰雲)이 감도는가 싶더니 급기야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세종로 네거리 광화문 방면 충무공 이순신 동상 앞에 컨테이너 박스로 장벽이 쳐진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촛불시위에 대해 국민과의 소통부재가 그 원인이라고 말했었다. 그런데 ‘소통’ 대신 ‘장벽’을 택한 것이다. 현장 중시를 강조해온 이 대통령이 촛불시위가 33번이 지나도록 단 한번도 현장을 찾은 적이 없다. 뿐만 아니라 사태를 이해하는 제대로 된 발언을 한 적도 없다. 촛불시위를 두고 ‘양초를 산 사람이 누구냐, 찾아라’하더니 또 ‘배후’니 ‘좌파’니 하다가 급기야 ‘친북주사파’라는 진단까지 나왔다.

사실 이명박 대통령의 ‘말 따로 행동 따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 대통령의 국정철학이라 할 수 있는 ‘실용주의’란 시간과 장소에 따라 말이 달라지는 것을 뜻한다. 세간에 유행했던 말로 ‘그때 그때 달라요’다. 또 말을 했어도 처방을 달리 한다. 이러니 기준과 원칙이 없다. 이 대통령은 현충일 추모사를 통해 “남북관계가 그동안 진전이 있었다”며 이전과는 다소 다른 발언을 했다가도 6.15공동선언을 ‘이적문서’라고 주장한 홍관희 안보전략연구소장을 통일교육원장으로 내정한다. 한반도대운하에 대해선 상황에 따라 이리저리 피하는가 하면, 촛불시위에 대해서도 이해한다고 하면서도 ‘광우병 괴담’ 정도로 치부하더니 재협상은 없다고 못박는다.

세종로 네거리에서 이순신 동상을 뒤로 한 컨테이너 박스를 바라보는 심정은 화나다 못해 측은하다. 저 너머로 청와대가 갇혔다. 이게 이명박 정부의 현주소인 듯하다. 아마도 이 발상은 어청수 경찰청장이 한 듯하다. 그는 부산경찰청장으로 있던 2005년 11월 부산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 때 컨테이너 장벽을 쌓는 전법을 사용한 적이 있다. 하지만 백보 양보한다고 해도 그건 항구도시인 부산에다가 인적이 드문 부둣가에서나 있던 일인데, 백주에 그것도 한 나라의 수도 한복판 세종로 네거리에다 설치를 하다니 그 발상부터가 해괴하다. 사실 컨테이너를 치는 광경은 장관이다. 해운 수송용 컨테이너 박스를 이순신 동상 앞에 두 겹에다 이층으로 쌓고 각 컨테이너 안에는 모래를 붓는다. 게다가 컨테이너와 컨테이너를 용접으로 때운다.

컨테이너 장벽을 치는 것을 보고 세종로 네거리를 지나가는 시민들은 연방 셔터를 누르고 한마디씩 한다. “지금이 5공 때냐”, “나 오늘 촛불시위에 꼭 나간다”, “대통령이 컨테이너 박스에 갇혔다.” 네티즌은 더 나아간다. 만리(萬里)장성을 빗대 ‘백보(百步)장성’이라 하고 남한산성을 빗대 ‘광화문산성’이라 조롱한다. 그리하여 시민들과 네티즌들은 ‘광화문대첩’을 이루자고 한다. 사실 촛불들은 온라인과 오프라인 상에서 청와대로 진격할 것인가, 말 것인가로 갑론을박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그런 논란거리가 없어졌다. 저 광화문산성을 보는 순간 누구나 그 산성을 정복하고 또 넘고야 말리라는 전의(戰意)를 불태워주기 때문이다. 이 정권은 하는 일마다 이렇다. 성을 쌓으면 쌓을수록 국민과 더 멀어진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알 일이다. 정녕 이명박 정부만 모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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