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심이 폭발했다. 지난 2일과 3일에 걸쳐 정부를 비판하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가 청계천 소라광장에서 열렸다. 참가인원만 2일에 1만 5000명, 3일에 2만명이 넘고 있다. 이런 군중수는 최근 진행된 대선과 총선 때도 보기 힘든 광경이다. 그리고 5일 오후 온라인 상에서 120만명을 넘는 네티즌이 삽시간에 ‘이명박 대통령 탄핵 청원’에 서명했다. 특히 이번 촛불집회는 지난 2002년 미선.효순이 추모집회와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반대집회 이후 일어난 대규모 시위다. 이번 촛불집회는 정부당국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서 촉발됐지만 이에 그치지 않는다. 현 정부에 대한 민심이반 현상이 심상치 않다는 것이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취임 2개월여 만에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30%대로 급락했다. 민심이반이 가속화되고 있는 것이다. 왜 이같은 일이 일어났을까? 이 대통령이 당선과 취임 이후 지금까지 행한 정치적 행태를 살펴보면 대략 두 가지로 설명된다.

하나는 국민을 무시한 점이다. 단순히 무시한 정도가 아니라 업신여긴 점이다. 이 대통령은 국민을 섬기는 정치를 하자고 말했으나 곧 거짓이었음이 드러났다. 섬김의 정치의 본질은 국민의 뜻을 존중하고 물어보는 것이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말로만 섬긴다고 했지 내용적으로는 전혀 그렇지 못했다. 대통령직 인수위 때 일방적인 영어몰입 교육논란을 비롯해 ‘강부자 내각과 청와대’ 등 인사파동, 과거회귀 노동정책과 공안당국의 발호, 대북강경책, 의료보험 민영화, 0교시 수업 그리고 아직도 애매한 한반도대운하 등 정부가 자기 입맛에 맞게 일방적으로 발표했다가 여론이 나빠지면 슬쩍 빠지는 등 국민을 봉으로 아는 일만 해왔다. 게다가 이명박 정부는 선거 때부터 ‘경제 살리기’를 내세우며 국민의 기대감을 잔뜩 높여 놨으나, 지금 경제 상황은 물가 등 여러 경제 지표가 보여주고 또 경제 부처 장관들이 실토하듯이 이런 기대를 전혀 충족해주지 못하고 있다. 자기가 일방적으로 말했다가 아니면 모르쇠하거나 거두는 등 국민을 업신여기는 정도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다른 하나는 국민의 자존심을 짓밟은 점이다. 이는 이 대통령이 지난 4월 중순 미국과 일본 순방 때 두드러졌다. 정부는 이 대통령이 방미중 부시 대통령과 만나기에 앞서 무슨 선물인양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국회 비준을 위해 덜컥 쇠고기 협상을 타결했다. 문제는 타결 내용이다. 한 예로 현재 미국산 쇠고기의 세계 3대 수입국인 한국, 일본, 중국 중에서 이번 협상결과 검역기준 중에서 한국이 가장 허술한 조건으로 체결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국민들은 미국과의 협상에서 어느 정도 주고받을 수는 있지만 이처럼 국민의 건강권과 검역주권마저 팽개치는 굴욕적인 협상은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것이다. 그러기에 이명박 정부가 한미동맹 복원을 강조한 것이 지나친 친미적 행보로 비쳐졌을 것이다. 국민들은 노무현 정부 때 그나마 한미관계에서 수평적 관계를 유지하던 것이 급격히 수직적 관계로 추가 기우는 것을 보면서 비애를 느꼈을 법하다. 게다가 이 대통령은 방일시엔 한일 간 ‘과거사’보다는 양국 경제협력 강화 등 ‘미래사’ 논의를 중시했다. 그런데 이는 한일간 역사적으로도 예민한 일본의 과거사문제를 눈감아주었다는 의혹을 받기에 충분했다.

6일 촛불시위가 계속된다. 연이어 벌어지고 있는 이번 집회의 성격은 자생적이라는 점이다. 미선.효순이 추모집회나 노무현 대통령 탄핵반대 집회 등 정치적 색채가 짙던 과거와 달리 시민들은 자신의 안전한 먹거리를 요구하며 거리로 나섰다. 실제로 2일과 3일 청계천 일대 광장엔 교복 입은 고등학생, 아이 손을 잡고 나온 주부 등 미래의 ‘광우병 피해자’들이 대거 운집했다. 특히 온라인에서 벌어진 ‘이명박 탄핵’ 운동의 첫 제안자는 고교 2년생이다. 이는 이번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시위를 통해 소비자 주권이 국민 주권으로 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아울러 이번 촛불시위는 국민의 의식이 여전히 살아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 대선과 총선에서는 투표율이 유난히 낮았다. 그래서 민주주의의 위기니 하는 우려도 많았다. 그런데 이번 촛불시위에서 알 수 있듯이 낮은 투표율은 정치 무관심이라기보다는 정치 불신에서 비롯됐음을 시사하고 있다. 따라서 이번 촛불시위는 정치 불신, 즉 정치권에 대한 경종이기도 하다. 이제 이명박 정부가 촛불시위 행진을 멈추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촛불시위를 불법시위로 모는 게 아니라 미국과의 쇠고기 수입 재협상에 들어가는 것이다. 지난 노무현 정부 때부터 세웠던 원칙과 기준에 맞춰 일관되게 협상하라. 국민의 건강권과 검역주권 등은 정권이 바뀌었다고 달라질 수 있는 게 아니지 않은가? 그리하여 국민의 자존심을 지켜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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