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공부 도로아미타불’이란 말이 있다. 지금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이 그렇다. 자칫 남측의 대북정책이 ‘잃어버린 10년’이 될 운명 앞에 서 있다.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한 김하중 통일부장관, 김태영 합참의장 등 통일.안보 관련 각료들의 잇따른 대북 강성발언에 북측이 역시 강하게 반발하면서 형성된 기류다. 한마디로 남북관계가 급랭하면서 특히 당국간 교류가 전면 정지될 순간에 와 있다. 냉각된 남북관계가 가뜩이나 교착상태에 있는 한반도 정세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태세다. 그리하여 2006년 북핵실험 이후 “핵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이 재개된 이래 최악의 대결구도”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대북정책 10년을 잃는다는 것은 민족화해 10년과 한반도평화 10년을 잃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는 선임정부인 김대중-노무현 정부에 대한 예의가 아니고, 가까스로 북핵해결 2단계로 나아가고 있는 부시 행정부의 노력에도 반하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왜 이리 우둔한 짓을 하고 있는가?

누차 나왔지만 이명박 대통령의 대북정책은 ‘선핵포기’에 입각한 ‘비핵, 개방, 3000구상’으로 요약된다. 이에 대해 ‘선핵포기’는 미국조차 실패한 정책이고, ‘비핵, 개방, 3000구상’은 정작 상대편인 북측의 의향도 묻지 않고 일방주의적으로 내걸었다는 비판이 따랐다. 김하중 통일부 장관의 “북핵문제가 타결되지 않으면 개성공단 확대가 어렵다”는 발언에 대해 북측은 공단내 남측 당국 인원을 사실상 ‘추방’한데 이어 김 장관을 콕 찍어 “사물의 본질도 제대로 파악할 줄 모르는 자의 가소로운 넋두리”(통일신보 3.29)라고 혹평했다. 특히 김태영 신임 합참의장의 ‘북핵선제타격’ 발언에 대해서는 북측의 융단폭격이 가해졌다. 북측 군부는 29일 “남측의 사소한 ‘선제타격’ 움직임에 대해 우리 식의 앞선 선제타격으로 대응할 것”이라면서 “‘선제타격’ 폭언을 취소하고 사죄”할 것을 요구했다. 이어 30일 북측의 군사논평원은 “우리 식의 앞선 선제타격이 일단 개시되면 불바다 정도가 아니라 모든 것이 잿더미가 될 것”이라고 경고 수위를 최대한 끌어올렸다.

북측의 일련의 공세에 거친 표현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본질은 남측이 문제의 소지를 제공했다는 점이다. 통일부장관의 ‘개성공단’ 발언은 자기 부서의 역할을 부정하는 부적절한 발언이고, 합참의장의 ‘선제타격’ 발언 역시 누구라도 선전포고로 받아들일 만한 호전적인 내용이다. 사실 북측은 이명박 대통령에 대해 후보시절부터 특별한 해코지 없이 판단을 유보해 왔다. 그 이유는 당시 이명박 후보의 당선가능성이 유달리 높은 점도 있지만 그보다는 누가 대통령이 되든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을 존중하길 바랐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실제로 남측에서 대통령선거가 끝나 보수집권세력의 출현이 결정된 다음에도 북측은 여러 기회에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의 실천과 이행을 호소하였는데 이명박 정권은 아직껏 여기에 호응하지 않고 있다”(조선신보 3.30)며 이명박 정부의 ‘정치적 우둔함’을 꼬집은 것도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지금의 한반도 평화와 민족화해 분위기는 괜히 만들어진 게 아니다. 남북과 북미가 여러 차례의 시행착오와 학습효과를 통해 형성된 것이다. 그런데 이제 갓 출범한 이명박 정부가 10년 공든 탑을 무너뜨리고 있다. 이 과정에서 놀라운 건 북측의 이유 있는 공세에 대해 남측이 너무나 태평하다는 것이다. 기껏해야 남측당국은 “장기적 관점에서 신중하게 접근한다”면서 무대책을 드러냈고 아울러 “그러나 대화를 포기하거나 강경일변도의 대북정책을 펴겠다는 뜻은 아니다”고 애매하게 밝혔다. 북측의 공세를 예측하지 못했다면 아마추어 티를 못 벗어난 것이지만, 예측했어도 이 정도의 무대책으로 모르쇠 한다면 직무유기에 가깝다. 그나마 보수정권의 전가의 보도인 안보위기관리마저 허술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대북정책이 ‘잃어버린 10년’이 돼서는 안 된다. 남북관계가 경색되면 안보고 경제고 다 날라 간다. 이명박 정부가 남북관계를 회복하고 발전할 수 있는 길은 명확하다. 우선 북측이 요구한 ‘선제타격’ 발언을 취소하라. 이어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의 이행의지를 밝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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