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진 이재호 열사 기념사업회’는 김세진 이재호 열사의 분신 20주년을 맞아 그들을 추모하기 위해 영화를 만들기로 한다. 그리고 한편의 다큐멘터리가 만들어지고 다큐멘터리는 관객들에게 20년 전 사라져간 두 열사를 만나게 한다. 두 열사를 알고 있는 관객에겐 기억을 재생시키고, 두 열사를 모르는 관객에겐 기억을 만들어내면서.

 

▲ 영화 '과거는 낯선 나라다' 포스터. [출처-'과거는..' 홈페이지]

그들에게 과거의 사건이 있다.

1986년 4월 28일, 서울대학교 앞 신림사거리에서 당시 서울대학교의 학생이었던 청년 김세진, 이재호 두 사람은 400여명의 학생들과 군사훈련인 전방입소 반대 시위도중 분신했다.

한국전쟁 이후 남한에서 벌어진 최초의 대중적인 반미 구호였던 ‘반전반핵 양키고홈’ 을 외치며 제 몸을 스스로 불살랐던 김세진, 이재호. 이 두 청년의 선배이고, 친구이고, 후배였던 그들에게 1986년 4월 28일은 분명 흘러가버린 과거이다.

그리고 20여년이 흘렀다.

남북의 정상이 만나고 북한과 미국은 대화를 시도한다. 그들은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렇다면 그들에게 1986년 4월 28일은 흘러가버린 과거일 뿐일까?

다큐멘터리 <과거는 낯선 나라다>는 그때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들의 기록을 통해 과거란 흘러가버리는 것이 아니라 현재 속에 투영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며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알려주고 있다. 또한 이 해답은 영화를 보는 관객 개개인에게 조금씩 다르게 보여지게 되는데 그것은 이 다큐멘터리가 취하고 있는 낯선 형식 때문이다.

<과거는 낯선 나라다>는 1986년 4월 28일 김세진, 이재호 열사 분신 사건의 기억을 공유한 사람들의 과거의 흔적을 쫓아가는 다큐멘터리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기존의 대부분의 추모 다큐멘터리처럼 비장한 음악, 친절한 나레이션, 그날의 자료 등을 이용해 그날의 사건을 재현하는 형식을 따르지 않는다. 또한 어떠한 극적인 구성도 없다. 그동안 접했던 후일담식 영화처럼 80년대를 추억하지도 않는다.

그런 기존 추모 다큐멘터리 형식을 버리고 이 작품이 선택한 방법은 바로 ‘인터뷰’ 다. <과거는 낯선 나라다>는 그날의 기억을 공유한 사람들의 인터뷰라는 다소 생경한 방법을 통해 1986년 4월 28일을 기억해낸다.

감독은 너무 집요한 것이 아닌가 생각될 정도로 끈질기게 인터뷰어에게 카메라를 들이댄다. 인터뷰어들은 망설이면서 그러면서도 침착하게 그날의 기억을 말하다 결국 그 날 그곳으로 가 버린 자신을 발견하고 이내 흔들리고 만다. 그리고 흔들리는 그들을 스크린으로 바라보는 관객 역시 인터뷰어들과 함께 감정의 흔들림을 경험한다.

인터뷰라는 생경한 방법은 그 날의 흔적을 놀라울 정도로 또렷하게 찾아내어 관객이 다큐멘터리 속 인터뷰를 지켜보면서 인터뷰어 개개인과 같은 과거를 공유하게 하는 역할을 해낸다. 이것은 영화가 관객에게 일방적으로 던져주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관객 스스로 만들어내는 이미지로 만들어지는 것이라는데 의미가 있다. 사건을 아주 객관적인 방법으로 보여주는 인터뷰가 놀랍게도 관객에게 아주 주관적인 감상을 남겨주는 결과를 만들어낸 것이다.

과거는 박물관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삶속에 투영되어 있다는 감독이 말한 제목의 의미처럼 이 다큐멘터리는 20년 전 우리 곁에서 사라졌던, 그리고 우리가 사라졌다고 생각했던 두 열사와 그들의 마지막 그날을 과거가 아닌 지금 현재 속에서 만나게 해준다. 그리고 두 열사에게 미안하다고,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고, 우린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바로 두 열사를 기억하면 아플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의 상처까지 보듬어주는 것이다. 이렇게 이 다큐멘터리는 그들을 진정으로 추모하는 원래의 목적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다.

시간은 흐르고 영원한 현재란 없다. 바로 이 순간의 현재도 그 현재를 말하는 동시에 과거가 되어버리는 것. 어느 누구도 이 시간의 흐름을 거역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 과거를 거역할 수 없는 시간의 법칙에 대입해서 영원히 사라져버린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것은 과거의 흔적은 현재와 공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 또한 어느 누구에게도 예외일 수 없다.

1986년 4월 28일 그 시간은 20여 년 전으로 흘러가버렸지만 그날의 기억은 결코 흘러가버린 과거일 수만은 없다. 그 날은 지금도 공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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