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찾아오나 싶더니, 서울 하늘에 때 아닌 눈보라가 휘날린다. ‘평화협정’ 이야기까지 나오던 한반도 정세도 한미군사연습인 ‘키리졸브/독수리연습’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갑자기 얼어붙고 있다. TV와 신문은 세계 최대 규모의 미군 항공모함, 초대형 잠수함, 미 본토 해병대가 한반도에 투입돼 훈련하는 모습을 연일 비추고 있다. 이에 북측의 <조선중앙통신>, <노동신문> 등 관영매체에 이어 ‘조선인민군 판문점대표부’, ‘외무성’ 등 공식기관까지 나서 이번 한미군사연습에 대한 우려를 표하고 있다. 급기야 ‘조선인민군 판문점대표부’는 “미국과 남조선 호전 세력들이 우리를 군사적으로 압살하려는 기도를 끝내 실현하려 한다면 오랫동안 비싸게 마련해 놓은 모든 수단을 총동원한 주동적 타격으로 맞받아 나갈 것”이라는 표현까지 쓰며 경고 메시지를 날렸다.

먼저 확실히 해야 할 문제는 싸움을 거는 쪽이 미국과 한국이라는 점이다. 당연한 사실을 새삼 거론하는 것은 일부 언론을 필두로 한 ‘보수세력’들이 본말을 전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앙일보>는 4일자 사설에서 이같은 북측의 경고 메시지를 두고 “미국 뉴욕 필하모닉을 초청해 미국에는 화해의 제스처를 보내고 한국에 대해서는 핵위협을 하는 형세”라고 주장했다. 입은 비뚤어졌어도 말은 똑바로 하라고 했다. 어불성설이다. 북미관계 진전의 결과물인 뉴욕필 평양 공연이 만들어 놓은 화해의 분위기를 깨는 것이 ‘키리졸브/독수리’ 한미군사연습이다. 북한이 지난 1월 공군기 하루 출격 회수를 13년 만에 최고 수준을 높인 것을 두고도 이들은 ‘도발’이라고 규정하고 있지만, 에너지 사정이 좋지 않은 북한이 강도 높은 군사훈련을 하는 것도 미국과 한국의 군사적 위협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더 상식적이다. 더구나 최근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미군 전력이 강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한미군사연습이 진행되기 때문에 북한의 우려는 예전보다 더욱 높을 수밖에 없다.

이들 ‘보수세력’들의 주장은 이번 군사연습이 ‘방어연습’이라는 한미연합사의 주장을 전제로 하고 있다. 반면 외무성 대변인은 3일 ‘키리졸브/독수리연습’을 “북침 핵전쟁 연습”으로 규정했다. 미국이 ‘핵선제공격’ 전략을 채택하고 있는 만큼 북측의 주장은 전혀 근거 없는 것이 아니다. 이미 공개된 ‘한미전략기획지침’에서 작전계획 5027-04의 작전목적이 ‘북한군 격멸’, ‘북한정권 제거’, ‘한반도 통일여건 조성’이라는 점도 드러난 바 있다. 이러한 작전계획을 바탕으로 진행되는 이번 한미군사연습이 ‘북한 정권 제거를 통한 무력통일’을 위한 것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번 ‘키리졸브/독수리연습’이 북한을 상대로 한 공격연습이냐, 방어연습이냐를 가지고 논박하자는 것은 아니다. 다만 먼저 싸움을 걸지 말라는 것이다. 한미연합사가 이번 군사연습의 언론공개 지침을 ‘ACTIVE(적극적)’으로 정한 것도 강경파들이 주로 사용하는 ‘싸움의 기술’이다. 북한이 북미관계 정상화를 바라고 있지만, 싸움을 걸어오는 상대를 두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심정일 것이다. 이같은 과정을 통해 한반도 위기는 차츰 높아지고 있다. 바로 이것이 ‘한반도 평화협정’ 정세의 발목을 잡으려 하는 강경파들의 의도다. 봄이 오기 전 이들이 몰고 온 ‘꽃샘추위’를 이겨낼 수 있는 민족의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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