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동당 비상대책위원회가 26일 워크숍을 통해 △최기영 전 사무부총장 등 이른바 ‘일심회’ 사건 관련자들 제명 △‘미군 철수시 북핵 폐기’ 대선 공약 즉각 폐지 △2006년 북핵 실험 당시 이용대 정책위의장의 ‘북핵 자위론’ 발언이 전쟁과 핵을 반대하는 평화정당 정신을 담은 당 강령의 위배 등을 결정했다. 이같은 결정은 손낙구 대변인이 이날 “편향적 친북행위를 당헌당규와 강령을 위반한 행위로 명확하게 규정했다”고 밝힌 대로 민노당 비대위가 그간 논란이 되어왔던 ‘종북주의’ 청산을 강력하게 추진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당내 평등파(PD) 가운데 일부 강경파는 26일 종북주의 완전 청산을 주장하며 별도의 신당 창당을 공식화하고 나섰다.

이로써 지난해 말 대통령 선거 이후 민노당 내 이른바 자주파(NL)와 평등파 사이에서 대선 패배(낮은 지지율)를 둘러싸고 평등파 측에서 문제제기를 한 이른 바 ‘종북주의, 패권주의 청산문제’가 어떤 극점을 향해 치닫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는 여기서 한 정당의 대선 패배 논란과 관련 내부 문제에 대해 왈가왈부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대선 패배와 종북주의가 무슨 연관이 있는지, 또한 한솥밥을 먹은 당원들끼리 한 정파가 다른 정파를 향해 치명적인 ‘종북주의’라는 말로 단죄할 수 있는지를 묻고 싶다. 아무튼 우리는 심상정 비대위원장이 당내 다수세력인 자주파의 반발을 무릅쓰고 종북주의 청산을 강력하게 추진하는 것이 평등파내 강경세력이 추구하는 분당(分黨)의 명분을 없애고 일단 한 덩어리로 가자는 고육지책으로 이해하고자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번 ‘일심회’ 관련 결정을 두고 몇 가지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이번 ‘일심회’ 사건 관련자들 제명 결정은 당과 당원과의 관계는 어떠해야 하는가라는 근본문제를 제기한다. 우리나라처럼 백년정당은커녕 정권에 따라 부침하고, 지역에 따라 명멸하고 또 외세나 일인 보스에 기대려는 포말정당, 급조정당, 지역정당, 일인정당만 있는 풍토에서 당과 당원과의 관계에 대해 얘기하는 게 사리에 맞지 않기도 하다. 하지만 계급성과 진보성을 띤 민노당은 기존의 정당개념을 거부하고 진성당원 개념을 들여와 이 땅의 정당풍토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그런 점에서 민노당이 이번에 진성당원을, 그것도 간부급 당원들을 제명하겠다는 것은 작지 않은 사건이다. 당과 당원의 관계란 ‘순치(脣齒)관계’다. 당은 당원을 존중하고 보호해야 한다. 그리고 당원은 당을 따르고 당이 내린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우리는 여러 나라들의 당사(黨史)를 통해 당원이 당 때문에 양심과 지조를 지키고 임무를 수행하는 얘기를 많이 접해왔다. 당원에게는 당이 일종에 생명의 근원인 셈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민노당 비대위가 ‘일심회’ 사건 관련자들을 제명하겠다는 것은 이들에게는 사형선고가 될 것이다. 사실 일심회는 재판 결과 이적단체가 아님이 밝혀졌다. 그리고 당사자들은 민노당 내부 자료를 북한에 전달했다는 혐의도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는 이들 당원들에게 소명의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본다. 그나마 옥중인데다 제명조치가 이뤄진다면 이들은 끈 끊어진 연과 같은 신세가 될 것이다. 아울러 우리는 ‘북핵 자위론’ 발언과 관련 2006년 10월 북한이 핵실험을 했을 때 당시 김대중 전대통령을 비롯한 사회 일각에서 북핵이 자위적, 방어적 수단이라는 분위기가 있었음을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이같은 북핵 자위론은 미국의 대북 선제 핵공격론 앞에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견해도 만만치 않았음을 알고 있다. 게다가 대선에서 이미 국민의 선택을 받은 ‘미군 철수시 북핵 폐기’ 대선 공약조차 이제 와서 즉각 폐지하겠다는 것은 무슨 한풀이를 보는 듯하다.

여론에 휘둘리거나 정파적 입장에 매달려 당원을 제명한다는 것은 공당(公黨)이 취할 태도가 아니다. 당원의 제명은 당의 정체성 문제이자 노선의 문제이다. 민노당과 이념이나 노선이 다를 수밖에 없는 한나라당이 오죽하면 민노당 비대위의 당원 제명건에 대해 바람직한 모습이라고 긍정 평가하고 나섰겠는가? 보수주의 정당들은 당원이 금품문제나 스캔들에 연루되었을 때 이를 즉시 무마하거나 또는 무마되지 않을 경우에는 잠시 출당(黜黨)시켰다가 일정 시간이 흐른 뒤 소리소문 없이 ‘묻지마 복당(復黨)’시키는 일을 다반사로 해 왔다. 명색이 진보적인 당에서 이럴 수는 없다. 하지만 당원을 아끼고 보호하려는 근본이야 다를 수가 없다.

당은 당원이 명백한 해당행위를 하지 않는 한 당원을 보호해야 한다. 당원을 사지(死地)에 몰아서는 안 된다. 민노당이 보수주의 정당들의 행각을 좇을 수는 없지만 명백한 해당행위로 드러나지 않은 ‘일심회’ 사건 관련자들인 두 당원을 제명한다는 것은 자칫 보수주의 정당보다 못한 행태일 수 있다. 민노당은 다음 달 3일 열릴 전당대회에서 비대위가 내린 이번 ‘일심회’ 사건 관련자들의 제명 결정에 현명한 선택을 하기 바란다. 아울러 우리는 국민들 사이에서 보수주의 정당의 막무가내식 행태로 가뜩이나 정당 불신주의가 팽배하고 있는 판에 진보정당마저 이번 일로 그와 다를 바 없다는 식의 평가를 받지 않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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