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학반도도(海鶴蟠桃圖)>를 만나다

이번 방북기간 동안 접한 북한 그림에서 몇 가지 흥미로운 점을 발견했다. 그중 하나는 마지막 날 기념품을 사기 위해 들렀던 민예전람실 입구 벽에 걸린 <장생도(해학반도도)>를 마주친 것이다.

북의 그림은 ‘사회주의적 사실주의’를 표방하고 있어 북한 미술을 대표하는 조선화 역시 ‘민족적 형식에 사회주의적 내용을 담는’ 것을 기본적 지침으로 삼고 있고, 봉건성과 종교성을 띤 전통회화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견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장생도>는 매우 흥미로웠다.

 

▲ 민예전람실에 걸린 해학반도도. ‘위대한 지도자 김정일 동지께서 보아주신 <장생도>’라는 표찰이 붙어있다. [사진-통일뉴스 송정미 전문기자]

<해학반도도(海鶴蟠桃圖)>라고도 불리는 이 <장생도>는 장생(長生)을 의미하는 장생물과 삼천년에 한번 열매가 열린다는 반도(蟠桃, 선계의 복숭아 나무)로부터 뻗어 나온 풍성한 열매 등을 통해 죽지 않고 영원히 복락을 누리는 이상세계를 표현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민예전람실에 걸려있는 장생도는 그린 시기와 서명이 돼 있지 않고, 단지 ‘위대한 지도자 김정일 동지께서 보아주신 <장생도>’라는 표찰이 붙어 있을 뿐이었다.

72년 평양 사회과학출판사에서 간행한 북한의 문학예술사전 등을 참조해 이구열은 『북한미술 50년』에서 북의 '장생도'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옛날 사람들이 행복하게 오래 살 것을 바라며 장생불사, 부귀영화 등 이른바 길상의 뜻을 자연의 사물과 현상에 비유하여 상징적으로 그린 그림. 주로 해와 달, 구름, 학, 소나무, 산, 물과 같은 것을 소재로 하여 그리는 것인데 그 내용과 형식은 시대에 따라 서로 다르다. 일반적으로 상징적이며 장식적인 것이 특징적이다.

우리나라에서 장생도의 기원은 그것이 행복한 삶에 대한 염원과 자연 숭배에 기초하고 있는 것인만큼 멀리 원시 고대사회와 관련되어 있으나, 그것이 <장생도>라는 하나의 종합적이며 체계화된 그림으로서 이루어지기 시작한 것은 고려 시기였으며, 특히 십장생으로 발전하면서 이조 시기에 와서 더욱 왕성하게 창작되었다.

계급사회에서 장생도는 지배계급의 오행사상과 결부되면서 유교, 불교 등 종교사상을 인민들 속에 퍼뜨리기 위한 목적으로 많이 그려졌다. 현재 우리나나에서 잘 알려진 장생도로서는 조선미술박물관에 있는 <영원한 봄>을 들 수 있다”

 

▲ 리석호의 『조선회화가 리석호의 화첩』(예술교육출판사, 1992)에는 <장생도>가 수록되지 않았다. 왼쪽 그림이 리석호 대표작의 하나인 <소나무>(1966). [사진-통일뉴스 송정미 전문기자]

서울로 돌아온 후 장생도를 만난 기쁨에 인터넷을 통해 자료를 찾아보니 62년에 리석호가 그린 <장생도>가 옥류민예사에 전시돼 있는 것으로 나와 있지만 그의 화첩집 『조선회화가 리석호의 화첩』(예술교육출판사, 1992)에는 수록되어 있지 않았다. 또 2007년 서울에서 열린 북한 화가 전시에서도 <장생도>가 전시됐다.

장생도는 도교의 영향을 받아 선계에서 불사장생 하고픈 인간의 욕망을 그렸다는 점에서 북에서는 경계의 대상이 될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바래봄직한 보편성을 띠고 있고 민족 전통이 스며있다는 점에선 북에서도 종종 그려지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보통강려관의 <금강산 팔선녀>

 

▲ 보통강려관 목란각 내실에 걸린 <금강산 팔선녀>. [사진-통일뉴스 김주영 기자]

<장생도>를 만난 것과 함께 나의 관심을 끈 것은 보통강려관 1층 식당 목란각 내실 벽에 걸린 <금강산 팔선녀>라는 작품이었다. 금강산은 예로부터 신선이 사는 신령한 곳으로 여겨졌다. 여름 금강산을 일컫는 봉래산(蓬萊山)도 이러한 의미로 불리운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 그림에서도 신비로운 모습의 금강산에는 해, 학 등의 장생물이 있고, 계곡에 앉아 악기를 연주를 하는 선녀, 단장을 하는 선녀, 하늘 위를 자유로이 노니는 선녀 등이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2000년 이후에 그려진 작품이었는데, 아마도 우리에게도 널리 알려진 ‘선녀와 나무꾼’이야기를 그림으로 표현한 듯하다. 이 소재가 도교와 연관된 민족적 설화라는 점에서 눈여겨 볼 만한 그림인 듯하다.

보통강려관의 상점과 민예전람실에서 판매하는 북 조선화도 흥미로운 흐름을 읽을 수 있었다. 두 곳의 작품들은 문인화와 풍경을 소재로 한 수묵이 주가 되는 수묵채색화가 많았다. 이는 외부인에게 판매하기 위한 전시작품들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조선화의 최근 경향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 고려호텔 한켠에서 <백두산 천지>를 그리고 있는 화가 리광철. [사진-통일뉴스 송정미 전문기자]

고려호텔 2층 서점 한켠에서는 화가 리광철이 <백두산 천지>를 그리고 있었다. 직접 작업 모습을 보여주며 화가의 작품들을 전시, 판매하고 있는 모습이 이채로웠다. 최근 개성관광이 열리면서 고려민속박물관 앞 기념품 판매점에서도 북 화가가 직접 그림을 그리며 관광객들을 맞고 있다.

특히 민예전람실에 안쪽에 따로 마련된 판매장은 지난 97년 일선에서 물러난 원로 화가들이 만든 조직인 '송화미술원' 소속 화가들의 작품이 전시된 곳이었다.

그곳 전시실 복무원은 판매되는 작품들의 흐름과 관련해 손님들이 많이 찾고 있어 그 요구에 맞춰 제작되고 있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해 심규섭 화가는 “이제 북에서도 비구상화(추상화)를 제외한 거의 모든 부분이 구현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듯 하다”고 평가했다.

▲ 송화미술원 화가들 소개판.
[사진-통일뉴스 송정미 전문기자]
▲ 김상직 송화미술원 원장의 1996년작 <송화>. 
[사진-통일뉴스 송정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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