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대통령 선거판이 이상하다. 나라와 민족의 명운을 책임질 최고지도자를 뽑는 선거에서 민족문제와 통일문제가 실종되고 있다. 한마디로 선거를 30여일 앞둔 현 시점에서 6.15공동선언과 10.4공동선언이 명함조차 못 내밀고 있다. 물론 신자유주의의 거센 파고에 먹고살기가 힘들어진 상태에서 민생과 경제문제가 중요시되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그래도 선거판 자체가 경제 프레임만으로 꽉 짜인 것은 문제라 아니할 수 없다. 가뜩이나 이상한 판에 괴상한 일마저 자꾸 일어나고 있다. 민족문제가 실종된 선거판에서 이회창 후보가 무소속 출마를 선언하면서 그 이유로 대북 정책을 들고 나왔는데 이게 가관이다.

이회창 후보는 출마의 변에서 “햇볕정책을 수용한 것으로 보이는 이명박 후보의 대북관은 모호하다”며 이명박 후보의 대북 정책 정체성에 직격탄을 날렸다. 아다 시피 이회창 후보는 5년 전 한나라당 대선 후보 때 6.15공동선언 2항에 대해 ‘폐기 운운’하며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을 극도로 비판했으며 결국 16대 대선에서 최대 쟁점인 북핵문제 해결책에서도 강경입장을 펴다가 국민의 지지를 받는데 실패한 적이 있다. 분명 강성 대북 정책으로 인해 국민적 심판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이회창 후보가 이명박 후보의 빈 곳을 노려 흘러간 옛 노래를 버전업해서 남북관계에서 한층 수구적인 행태를 보이는 게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이명박 후보의 다음 행태가 더 가관이다. 이회창 후보의 지적을 받은 이명박 후보가 곧바로 자신의 대북 입장을 바꾼 것이다. 한나라당 태스크포스(팀장 정형근)가 지난 7월 발표한 새로운 대북 정책인 ‘한반도 평화비전’을 두고 이명박 후보가 “‘한반도 평화비전’은 한나라당의 공식 당론이 아니다”며 “저의 대북 정책과는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명박 후보는 그 당시 ‘한반도 평화비전’과 관련 “변화하는 시대에 맞춰 북한의 개혁과 개방을 이끌어내면서 한반도 영토조항은 그대로 두어 전략적이고 유연하게 대비하려는 취지를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한 바 있다. 이처럼 이명박 후보의 오락가락 대북 정책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명박 후보는 남북 정상회담을 놓고도 올해 초까지는 반대하다가, 8월에는 찬반 상반된 발언을 잇달아 내놨다. 정상회담 후 10.4선언에 대해서도 이 후보는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노력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고 하면서도 이는 선언으로만 되는 것이 아니라고 하는 등 모호한 태도를 보였다. 실용주의로 표현되는 이명박 후보의 대북관이 상황에 따라 유리한 쪽으로 바뀌는 터라 이는 김영삼 대통령이 재임중 대북 정책에서 스무 번 이상 온탕과 냉탕을 왔다 갔다 한 것을 상기시킨다. 이처럼 이회창 후보의 경우 6.15선언을 통째로 부정할 정도로 명백히 반통일적인 게 문제라면, 이명박 후보의 경우는 상황에 따라 오락가락하는 모호한 대북관도 문제다.

그럼에도 이른바 범여권 후보들은 경제 프레임에 대해 시대정신인 평화와 통일 프레임 구축은커녕 이명박-이회창 후보의 노골적인 우편향과 강경 보수화 발언에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김대중 전 대통령이 나서 두 후보의 대북 정책과 관련 “큰 실수를 하고 있다”며 “이번 대선에선 햇볕정책, 6자회담, 남북ㆍ북미관계 발전을 지지하고 새 흐름에 동조하는 사람이 나라를 맡아야 한다”고 역설할 정도이다. 선거에서는 물론 승리가 중요하다. 그러나 그 승리 못지않게 중요한 건 시대정신을 읽고 민족의 진로를 밝히는 것이다. 대선 후보라면 응당 유엔 등 국제사회에서도 지지한 6.15선언과 10.4선언 지지를 전면에 걸어야 한다. 보수적인 대북 정책으로 치닫는 이상한 대선판에서 실종된 민족문제를 복원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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