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란 무지할 때 만용하게 되고 사실을 왜곡하고 있음을 느낄 때 비겁해진다. 따라서 진정한 용기란 사실에 근거하고 또 그것을 확신할 때 나오는 법이다. 남북정상회담을 성과적으로 마치고 돌아온 노무현 대통령의 용기가 나날이 빛나고 있다. 북측에 대해 ‘개혁.개방’하라고 요구해서는 안 된다며 ‘역지사지(易地思之)’를 강조했던 노 대통령이 만수대 의사당 방명록에 ‘인민’이라 쓴 것을 두고 일부 보수층에서 말이 일자 그러면 ‘국민’이라고 써야 하느냐며 점잖게 핀잔을 주더니, 이번엔 보수층의 아킬레스건인 NLL(북방한계선)을 들고 나왔다.

◆ 노 대통령은 11일 청와대에서 열린 여야 정당 대표들 초청 오찬 간담회에서 서해 NLL과 관련, “그 선이 처음에는 우리 군대(해군)의 작전 금지선이었다”며 “이것을 오늘에 와서 ‘영토선’이라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는 데 이렇게 되면 국민을 오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더 나아가 “휴전선은 쌍방이 합의한 선인데 이것은 쌍방이 합의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그은 선”이라면서 정치권에서 사실 관계를 오도하는 인식을 국민들에게 심어주지 말 것을 당부했다. 한마디로 ‘NLL 사실’에 근거하자는 것이다.

◆ 아니나 다를까? 한나라당을 비롯한 보수세력 측의 반론이 거세다. 노 대통령의 NLL 관련 언급에 대해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는 “매우 충격적이었고, 대통령의 시각교정이 필요하다”고 했으며 한나라당 대변인은 “이런 잘못된 인식이 남북관계의 건전한 발전을 저해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비판했다. 또한 재향군인회는 “NLL은 지난 50년간 대한민국이 실효지배를 해왔고 우리 영토인 서해 5도를 지키기 위해서도 필수적인 영토선”이라면서 북한의 NLL 무력화 기도에 말려들 것을 경계했다.

◆ 모르면 물어봐야 한다. 유엔사 특별고문을 지낸 이문항(제임스 리)의 저서 <JSA-판문점(1953-1994)>에 보면 군사분계선(MDL)은 육지에만 존재하고, 서해와 동해에는 군사분계선이 없다. 그리고 NLL이란 “유엔사/연합사 해군 및 항공초계활동의 북방한계를 한정짓기 위해 유엔군 총사령관이 일방적으로 설정”(97쪽)한 것이다. 즉, NLL과 정전협정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유엔사령부와 미국무부 그리고 1996년 당시 이양호 국방부장관도 북의 NLL 월선을 영해침범으로 보지 않았다는 것은 이제 진부한 사실이 되어버렸다.

◆ 보수세력이 NLL을 군사분계선이나 영토선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자신의 무지를 드러내거나 고의로 사실을 은폐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보수층이 자극적인 영토 용어를 내세우는 세태에 노 대통령이 과감히 ‘NLL 사실’을 얘기하는 용기는 빛난다. 남북관계의 진정한 발전을 바란다면 이처럼 왜곡된 사실들을 하나하나 바로 잡아야 한다. ‘NLL 사실’에 근거하지 않는 한나라당과 보수세력은 아직 남북문제를 제대로 풀 준비와 역량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시각교정이 필요한 측은 당연히 한나라당과 보수세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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