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남과 북의 최고지도자로서는 두 번째로, 6.15 공동선언 이후 7년만에 새로운 합의를 이뤘다.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2007 남북정상선언)으로 명칭된 이 합의문은 모두 8개항으로 되어 있다. 6.15 공동선언이 통일의 원칙과 방도를 담은 명확한 ‘통일선언’이라면 이번 2007 남북정상선언은 남북관계 발전에서 나타난 현안들을 담은 실무적인 ‘이행합의문’의 성격을 띠고 있다. 따라서 이번 2007 남북정상선언이 비록 명칭은 ‘선언’으로 되어 있지만 6.15 공동선언과 동급인 ‘제2의 6.15 공동선언’이라기보다는 6.15 선언을 이행하고 남북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한 구체적인 프로세스의 총합으로 볼 만하다. 즉, 통일문제에 있어 ‘6.15 공동선언-2007 남북정상선언’의 관계가 마치 평화문제(북핵문제)에 있어 ‘9.19 공동성명-2.13 합의’와 비슷한 위상이라는 것이다. 이번 선언문의 특징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6.15 공동선언의 계승을 명확히 했다. 이번 선언은 모두(冒頭)에서 “6.15 공동선언에 기초하여 남북관계를 확대.발전시켜 나가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며 8개항을 나열했다. 아울러 그 첫째 항에서 “남과 북은 6.15 공동선언을 고수하고 적극 실현해 나간다”면서 ‘우리 민족끼리 정신’에 따를 것을 강조했다. 이는 남북이 ‘통일 이정표’로서의 위상을 갖는 6.15 공동선언을 고수하고 이행하겠다는 재천명으로 풀이된다. 특히 “남과 북은 6.15 공동선언을 변함없이 이행해 나가려는 의지를 반영하여 6월 15일을 기념하는 방안을 강구하기로 하였다”고 밝혔는데 이는 6월 15일을 ‘우리 민족끼리의 날’로 제정하는 것과 연관해 보면, 이제 남과 북 사이에서 6.15 공동선언은 돌이킬 수 없는 통일의 이정표로 자리 잡게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둘째, 남북관계를 한 단계 높이자는 의지가 들어있다. 선언에는 원제목에 걸맞게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제반 사항들이 총망라 되어 있다. 8개항의 요지는 ▲6.15 공동선언 실현 ▲남북관계 발전 ▲군사적 긴장 완화 ▲종전선언 ▲민족경제 발전 ▲사회문화 분야 교류 ▲인도주의 협력사업 그리고 ▲국제무대에서 민족 이익을 위한 협력 등으로서, 그 조항 수도 많지만 각 항마다 구체적이고 자세하게 실천 방법까지 적시했다. 이들은 6.15 공동선언 이후 7년간의 6.15 선언 이행과 남북관계 발전 과정에서 문제가 되거나 새롭게 제기된 문제를 구체적이고 실무적 차원에서 정리한 것이다. 그런데 이들 내용은 6.15 선언보다는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에 더 닮아 있다. 남측에서 어느 차기 정부도 선뜻 거부하기 어려운 내용들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번 선언은 파격적인 내용을 통해 남북관계 발전의 전략적 돌파구를 연다기보다는 구체적인 실천을 통해 남북관계를 한 단계 높이자는 의지가 들어있다고 볼 수 있다.

셋째, 초점이 된 6.15 공동선언 제2항을 구체화하는 문제가 빠져 있다. 6.15 선언 제2항이란 남측의 ‘연합제’와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와의 공통점을 찾자는 통일방안 문제다. 통상 합의문이 양측의 입장과 처지를 반영해서 공통분모를 끄집어낸다고 볼 때 이번에는 남북이 통일방안을 논의하거나 합의할 형편이 아닌 것으로 상호 인식했다고 볼 수가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한편으로 남북이 지난 7년간 실질적인 통일방안 논의를 한 번도 진행하지 않았으며, 다른 한편으로 남측의 완고한 보수 지형과 노무현 정부의 임기말이라는 정치 상황이 통일방안 합의라는 메가톤급 사안을 허용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렇더라도 이번 선언의 가치나 의미가 반감되거나 폄훼될 수는 없다. 그 이유는 남북이 통일문제를 정면돌파 하기보다 우회전략을 핀 흔적들이 곳곳에 있기 때문이다.

전체적으로 보아 이번 선언은 6자회담 및 북미관계의 진전만큼 남북관계를 발전시켜야 한다는 현실인식과 남측 정치지형의 처지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합의 내용이 정상급회담보다는 실무급회담에서 이뤄질 수 있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남북관계 발전을 위한 현안들을 총망라한 가운데 놓치지 말아야 할 게 있다. 바로 위에서도 지적했듯이 남북 정상이 이번 회담에서 직접적인 통일문제를 논의한 흔적은 없지만 이번 선언에서 보면 장차 통일논의를 위한 걸림돌을 제거하고 통일기구 구성을 예비하기 위한 흔적들이 지뢰처럼 곳곳에 잠복해 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제2항의 ‘남북관계의 통일 지향적 발전을 위한 법률적.제도적 장치 정비’이며 다른 하나는 여러 항들에서 보이는 각종 회담의 발동, 즉 남북 의회 접촉(2항), 남북 국방부장관회담(3항), 현재의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의 부총리급 ‘남북경제협력공동위원회’로의 격상(5항) 그리고 말미에 나온 남북 총리회담 개최와 정상회담 수시화 등이다.

이 사안들은 매우 중요하다. 본격적인 통일문제 논의를 위한 전단계 수순으로 보여지기 때문이다. 전자가 남측의 국가보안법과 북측의 조선로동당 규약의 개폐를 의미한다면 후자는 이같은 수다한 회담을 통해 전방면적인 통일논의를 본격적으로 하겠다는 신호로 보여지기 때문이다. 특히 후자의 경우 정상회담 정례화를 뜻하는 수시화 언명은 그 자체로 남북관계에 무게감을 주면서 안정성을 보장하고, 신설된 총리회담은 남북관계의 격을 한 단계 높이며 그리고 국방장관회담은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는 효과를 내게 된다. 따라서 이같은 다양한 형태의 남북회담 발동은 자연스럽게 통일논의의 걸림돌을 제거하고 통일기구를 향한 일정 역할을 할 수 있게 할 것이다. 6자회담의 순조로운 진전과 함께 남북관계도 이번 회담을 통해 일대 전기를 마련함으로써 한반도 평화의 통일의 길이 성큼 다가왔다. 남과 북의 ‘2007 남북정상선언’ 합의를 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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