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으로 이번 정상회담에서 어떤 ‘의제’가 논의될 것인가? 우문현답일 테지만 우리 민족이 한반도에 살고 있는 만큼 한반도와 관련된 모든 사안이 ‘의제’가 될 수 있다. 그런데 다행히도 지난 8월5일 남북이 합의한 ‘노무현 대통령의 평양방문에 관한 남북합의서’에 잘 정리되어 있다. 이 8.5합의서에 따르면 주요 의제는 ‘평화문제’, ‘민족공동의 번영문제’, ‘조국통일문제’ 등 세 가지다. 여기서 ‘평화’와 ‘번영’은 노무현 정부의 ‘평화번영정책’이, ‘통일’은 ‘조국통일3대헌장’을 강조해 온 북측의 입장이 반영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지금 의제와 관련 남측에서 주로 요구되는 것을 보면 보수진영의 경우 ‘비핵화’, 시민단체의 경우 ‘평화협정’, 정부당국은 ‘경제공동체’를 강조하다가 최근에는 노 대통령이 직접 나서 ‘평화협정’을 강조하고 있다. 이 외에도 NLL(북방한계선), 정상회담 정례화 문제 등이 있다. 그러나 앞에서도 지적했듯이 이는 모두 북측의 입장에 천착하지 않은 남측의 입장일 뿐이다. 게다가 ‘합의’를 볼 수 있는 건 한정되어 있다. 따라서 ‘의제’와 ‘합의’를 나눠서 봐야 한다.
그렇다면 이번 정상회담에서 남북은 무엇을 ‘합의’할 것인가? 더 나아가 그 합의의 첫 자리에 무엇이 놓일 것인가? 합의는 없던 게 갑자기 땅속에서 솟구치는 게 아니다. 그간 남북관계에서 진행되고 축적된 것 위에서 합의하기 마련이다. 이제까지 남북 간에 의미 있는 합의문은 두 가지다. 7.4공동성명과 6.15공동선언이다. 1차 정상회담 개최 합의 때 7.4공동성명이 원용되면서 6.15공동선언이 나왔듯이, 이번 2차 정상회담 개최 합의 때에는 6.15공동선언이 원용됐다. 그렇다면 이번 제2차 정상회담에서 남북이 합의문을 작성하게 된다면 그 첫째 항은 ‘통일문제’가 될 것이다. 그 이유는 한편으로 7.4공동성명과 6.15공동선언을 일관되게 관통하는 것이 ‘통일문제’이고 다른 한편으로 분단된 나라의 최고 지도자가 만나서 통일문제를 논의해야 함은 당연지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회담은 남측의 숱한 요구에도 불구하고 ‘평화회담’이나 ‘경제회담’ 못지않게 ‘통일회담’이 될 공산이 크다.
이번 정상회담이 ‘통일회담’이 된다면 남북은, 특히 북측은 무엇을 강조할 것인가. 대략 두 가지를 예상할 수 있다. 먼저, 북측은 큰 틀에서 ‘하나의 민족’을 강조할 것이다. 이는 되돌이킬 수 없는 통일의 틀로 작용할 것이다. 더구나 남북의 두 최고 지도자는 10월3일 개천절에 집중적으로 만난다. 10.3공동선언이 나온다면 단군을 우리 민족의 원시조로 간주하고 있는 북한이 이 뜻 깊은 날을 맞아 하나의 민족을 강조하는 것은 전혀 어색하지 않고 오히려 매우 어울린다. 다음으로, 지금 남북 간 공통적인 ‘통일문제’는 6.15공동선언 2항에서 제시된 통일방안을 좀 더 명확히 하는 것이다. 남측의 ‘연합제’와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사이에서 어떤 공통성을 찾을 것인가? 여러 여건상 이번 정상회담에서 그 공통성을 찾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이번 정상회담 남측 특별수행원 중에는 통일문제 전문가가 일천하고 또한 남측도 통일방안에 합의해 오면 부담이 클 것이다. 따라서 통일방안의 합의보다는 그 전단계로서 그것을 내오기 위한 기구, 즉 ‘통일기구’ 구성에 합의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이처럼 이번 정상회담에서 남북이 합의문을 내고 또 그 첫 자리에 ‘하나의 민족’과 ‘통일기구’를 내용으로 하는 사항이 놓인다면, 향후 남과 북은 통일의 틀을 갖추면서 6.15공동선언의 동력(動力)을 이어갈 것이다. 물론 평화문제 및 경제공동체문제와 관련된 내용들은 그 다음 자리에 놓이게 될 것이다. 한반도 정세가 여전히 불안정한 조건에서 평화문제가 중요한 건 사실이지만 한반도 평화문제에 미국이 커다랗게 개입돼 있는 현실적 조건에서 남과 북이 할 수 있는 것은 어차피 제한되어 있다. 그렇다면 남북이 합의가능하고 실천가능한 통일문제를 극대화시키는 게 현명할 수 있다. 남북은 통일문제 합의라는 민족공조를 통해 미국이 개입되어 있는 한반도 평화문제를 다투는 것이 최선일 것이기 때문이다. 거듭 강조하지만 2007년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합의문이 발표되고 그 10.3공동선언 첫 자리에 ‘하나의 민족’과 ‘통일기구’를 내용으로 하는 사항이 담긴다면 그것만으로도 남북은 통일에 성큼 다가서게 될 뿐만 아니라 미국과 한반도 평화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룰 계기를 마련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된다면 이는 제2의 6.15공동선언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