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LL(서해상 북방한계선)의 'N'자만 나와도 국가안보가 무너지는 것처럼 호들갑을 떨던 보수언론이 이제는 '유엔사'의 도움까지 요청하고 나섰다.

<조선일보>는 13일 "유엔사측은 NLL 변경 혹은 재설정은 남북이 단독으로 결정할 사안이 아니며, 유엔사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우리측에 전달했다"고 보도했다.

이어 정부소식통의 말을 빌려 "NLL변경문제는 유엔사가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 유엔사의 강한 입장인 것으로 안다"고 덧붙여, 이번 남북정상회담에서 남북이 마음대로 NLL을 건드리면 유엔사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는 엄포를 놓았다.

'NLL변경 문제에 유엔사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보도만 놓고 보면 크게 틀린 말은 아니다. 이날 국방부 김형기 홍보관리관은 "NLL은 남북간 군사적 충돌을 막기 위해 유엔군 사령관이 설정했기 때문에 NLL에 대해서는 유엔관 사령관이 관할하는 것"이라는 해석을 내놓았다.

하지만, 이번 <조선일보>의 보도는 중요한 사실을 숨기고 있다. 바로 '새로운 해상불가침 경계선' 문제는 남북간 협의할 사항이라고 유엔사가 입장을 표명한 바 있다는 점이다.

김형기 대변인은 99년 연평해전 당시 유엔사와 북한의 장성급 회담에서 유엔사 대표가 "새로운 해상불가침 경계선 문제는 남북간 군사공동위원회에서 협의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음을 강조했다.

뿐만 아니라 1992년 남북이 체결한 남북기본합의서에도 "새로운 해상불가침 경계선은 남북간 협의사항이라고 기술되어 있"으며 이 역시 유엔사의 양해가 있었을 것이라고 시사했다.

즉, NLL에 대해서 유엔사가 관할권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남북이 '새로운 해상불가침 경계선'을 설정하는 문제에는 유엔사의 권한이 없다.

따라서 <조선일보>가 'NLL변경 문제는 남북이 단독으로 결정할 사안이 아니다'라는 보도는, 국민들이 NLL과 새로운 해상불가침 경계선의 개념을 모호하게 인식하고 있는 점을 이용해, '남북정상이 만나서 결정하면 안 된다'라고 호도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남북정상회담에서 해결할 문제는 '새로운 해상불가침 경계선'을 설정하는 것이지, <조선일보>가 말하는 'NLL변경'하자는 것이 아니다.

NLL 역시, 남북이 합의한 사항이 아니라 당시 클라크 유엔군사령관이 남한군의 서해상에서 북진을 막기 위해 일방적으로 그은 선이라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또, 정전협정에는 육지의 군사분계선은 있어도 해상의 군사분계선은 명시되어 있지 않다는 점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남북에게 권한이 있는 '새로운 해상불가침 경계선'이 확정된다면, 임시적으로 만들어 놓은 NLL은 그 의미를 상실하게 된다. 이 상황에서도 유엔사가 'NLL은 우리의 권한이니 없앨 수 없다'고 버틴다면 '한반도 평화 통일을 가로막는 세력'이라고 자처하는 꼴이 된다.

전문가들도 대체로 이 문제는 미국측이 양해한 사항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신안보연구실장은 통일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은 이 문제가 미래의 문제이지, 법적 구속력을 가지는 과거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한국정부에게 맡긴다는 입장"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같이 상황은 명확함에도 불구하고 우려되는 부분이 있다. 유엔사는 남북관리구역에 대한 관리권을 남측군대에 이양했음에도, 지난 2002년 지뢰상호검증단 교환을 둘러싸고 문제제기하고 나선 바 있다.

보수언론이 도와달라고 요청한 상태에서 유엔사가 가만히 있을까?

이날 김형기 대변인은 실무차원에서 '새로운 해상불가침 경계선'이 남북이 협의할 사안이라는 8년 전 입장에 대해 변화가 있는지 유엔사에 문의한 바 있으며, 이에 대한 답변이 아직 오지 않았다고 전했다.

한국 정부 그리고 언론이 이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가지고 명확한 입장을 표명하는 것이 남북이 해결해야 할 '새로운 해상불가침 경계선' 문제에 대한 유엔사의 개입을 막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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