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식(통일뉴스 상임고문)

 
                 - 차   례 -

머리말

1. 마르크스주의와 민족문제

2. 유물사관 민족관의 창조적 수용

3. 주체사관 민족관(주체의 민족관)과 민족제일주의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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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북한의 민족론은 「주체의 민족관」에 그 이론적 근거를 두고 있다. 주체의 민족관이란 마르크스·레닌주의의 물질과 경제 중심의 역사관인 유물사관 민족관이 아니라 사람 중심의 사회역사관이라고 하는 주체사관의 민족관으로 설명되고 있다.

종래의 민족관은 서구 중심의 민족관으로서 주로 자본가계급의 이익을 옹호하는 부르조아 민족관과 그와는 달리 노동자계급의 이익을 중시하는 마르크스·레닌주의 민족관 등 두 가지 흐름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주체의 민족관은 인류역사 발전을 사람을 중심에 놓고 풀이하며 그러한 역사과정에서 사람에게 체현된 핏줄, 언어 및 심리의 공통성에 기초하여 민족이 형성된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종래의 자본주의라는 특정한 지역의 시대상황을 기준으로 한 민족관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며, 따라서 민족 논리의 전개에 있어서도 본질적인 차이가 있음을 찾아볼 수 있다.

즉 민족의 형성과 시기 문제, 민족의 개념, 민족의 징표, 민족운동, 민족의 장래 등에 관한 이론에서 기존의 이론과 다른 새로운 이론을 제시하고 있다. 이 글은 북한에서 주체의 민족관 확립과정을 살피고 또한 북한이 주장하고 있는 민족제일주의와 민족의 생명으로서의 자주성 문제를 간략히 정리해 본 것이다.

 
1. 마르크스주의와 민족문제

본래 사회주의·공산주의 운동은 노동자 계급이 주동이 되어 전개되는 국제적 규모의 계급투쟁을 의미한다. 즉, 마르크스가 「공산당선언」에서 밝히고 있는 바와 같이 공산주의 운동은 `만국의 노동자들이 단결하여` 국제적으로 형성된 자본가계급을 전복하고 세계적 범위에서 노동자계급의 정권을 수립하는 것을 뜻한다.(주1)

그러므로 마르크스주의의 창시자들은 계급을 초월한 민족에 관한 문제가 당면 과제로 제기될 수 없었다. 그보다는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 사이에 놓여 있는 적대적 모순관계를 극복하고 프롤레타리아트가 정권을 장악하여, 그 정권을 통해서 노동자계급도 포함한 모든 계급을 청산하는 투쟁을 전개토록 하는 것이 당면과제로 된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민족문제보다도 모든 사회현상들을 계급투쟁이라는 관점과 시각에서 보고 거기에서 제기되는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투쟁이론들을 창조하는 일이 급선무였다.

그러나 레닌의 시대에 와서는 민족문제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된다. 그것은 20세기에 들어서서 피압박민족들이 민족자결권을 쟁취하는 투쟁과 식민지 민족해방투쟁이 전개되는 시기였으므로 민족문제를 프롤레타리아 혁명운동과 연결되는 방향에서 보게 된 것이다.(주2) 이러한 경우에도 프롤레타리아 계급혁명이 주가 되고 민족해방투쟁은 그에 종속되는 하위투쟁으로 설정하고 있었다.

이처럼 마르크스·엥겔스·레닌에 이르기까지는 민족문제에 있어서 일정한 개념규정이 없었으며 프롤레타리아혁명이라는 계급투쟁의 측면에서만 모든 사회현상들을 파악하는 데 관심이 집중되었다.

민족 개념과 민족운동에 대해서는 소련의 10월혁명 후 스탈린에 이르러 비로소 그 이론이 정립되었다고 볼 수 있다.

스탈린은 민족을 "언어, 지역, 경제생활 및 문화의 공통성에서 나타나는 심리상태의 공통성을 기초로 하여 발생한, 역사적으로 형성된 사람들의 공고한 공동체"(주3)라고 정의했다. 스탈린의 이와 같은 개념규정은 스탈린 사후에도 소련에서 거의 그대로 계승되었으며 사회주의 진영 내에서 공통된 개념으로 통용되었다.

또한 스탈린은 "민족이란 자본주의시대의 역사적 범주, 즉 자본주의 발전으로 형성된 사람들의 집단"으로 보았으며, 따라서 `민족`을 보는 시각이 긍정보다는 부정적인 면이 강했다고 볼 수 있다.

스탈린의 민족에 대한 시각에 부정적인 측면이 강했다는 것은 민족운동에 대한 그의 견해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즉 그는 "본질에 있어서 부르조아적인 민족운동의 운명은 자연히 부르조아계급의 운명과 연결된다. 민족운동은 오직 부르조아계급이 멸망하는 때라야만 종국적으로 끝날 수 있다"라고 하여 부르조아사회가 종식되면 민족도 이와 함께 소멸할 것으로 이해한 것이다.


2. 유물사관 민족관의 창조적 수용

북한은 해방부터 60년대까지 반제·반봉건 민주주의혁명으로부터 사회주의 과도기 과업을 수행하면서 사회주의제도를 수립하고 사회주의의 전면적 건설을 추진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는 마르크스-레닌주의라는 일반적 명제에 기준을 두고 그를 창조적으로 실천해 나가는 과정이었다고 볼 수가 있다. 따라서 여기에서 논의하고 있는 민족 개념에 있어서도 스탈린의 유물사관적인 개념들을 그대로 수용하는 입장이었다

그런데 당시에는 사회주의혁명과 건설이 무엇보다도 계급투쟁이라는 차원에서 추진되었기 때문에 민족문제와 관련된 것은 부차적인 것으로 돌려질 수밖에 없었다. 특히 6.25라는 `조국해방전쟁`은 강렬한 이데올로기적인 계급투쟁을 그 내용으로 하고 있었으며 농업협동화운동과 개인 상공업의 사회주의적 개조사업도 심각한 계급투쟁을 동반할 수밖에 없었다.

뿐만 아니라 당시에는 동서 냉전구조라는 국제질서 속에서 남북한 사이에 군사적 대결과 갈등관계가 지속되었기 때문에 민족문제보다는 이데올로기적인 계급문제가 항상 우선시 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시대상황 때문에도 민족에 대한 개념은 스탈린의 정의를 비판 없이 수용하는 입장이었다고 보아야 할 것 같다.

그러다가 민족에 관해 새로운 시각에서 그 개념을 정립하게 된 것은 1960년대 중반부터이다.

1964년 김일성 주석은 「조선어를 발전시키기 위한 몇 가지 문제」라는 논문을 발표한 바 있는데, 여기서 그는 언어를 민족의 가장 중요한 징표로 지목하고 있다.

언어는 민족을 특징짓는 공통성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의 하나이다. 핏줄이 같고 한 영토 안에서 살아도 언어가 다르면 하나의 민족이라고 말할 수 없다. 조선 인민은 핏줄과 언어를 같이하는 하나의 민족이다.(주4)

민족에 대한 이러한 주장은 종래의 스탈린적 입장에서 벗어나 새로운 개념을 정립하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언어를 민족 개념에서 가장 중요한 징표로 파악했다는 것은 경제문제를 강조한 스탈린의 견해와는 큰 차이가 있는 것이며, 더욱이 마르크스·엥겔스·레닌, 그리고 스탈린에 이르는 동안 전혀 언급되지 않았던 핏줄의 공통성를 주장했다는 것은 매우 독창적인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 같다.

한편 김일성 주석은 이 논문에서 언어의 공통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언어개혁을 반대한다고 지적하고 있다.(당시 당 지도부와 학계 일부에서 언어개혁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경우가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언어문제를 민족문제와 결부시키지 않았다. 언어는 민족을 특징짓는 공통성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것의 하나이다. 핏줄이 같고 한 영토 안에서 살아도 언어가 다르면 하나의 민족이라고 할 수 없다.…미제의 남조선 강점으로 말미암아 우리 나라가 남북으로 갈라졌지만 우리 민족은 하나이다.… 만일 우리가 문자개혁을 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남북 조선사람들이 서로 다른 문자를 쓰게 되면 편지를 써 보내도 모르게 되고 신문·잡지를 비롯한 출판물들도 서로 알아볼 수 없게 될 것이다. 이는 민족사적 공통성을 없애며 결국은 민족을 갈라놓는 엄중한 후과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주5)

계속해서 1970년에 발간된 한 출판물은 민족 개념을 "언어, 지역, 경제, 생활문화와 심리 등에서 공통성을 가진 역사적으로 형성된 사람들의 공고한 집단"이라고 규정함으로써 스탈린의 유물사관 민족 개념을 대체로 수용하면서도 민족의 형성 문제에 대해서는 유물사관의 입장에서 크게 벗어나 다음과 같이 새로운 설명을 하고 있다.

우리 인민의 민족적 공통성은 우리 나라에 일찍부터 봉건적인 강력한 중앙 집권적인 통일적 국가가 세워지고 이 틀 안에 언어ㆍ지역ㆍ문화의 공통성, 경제생활의 공통성이 점차로 이루어져 가는 유구한 역사를 통하여 형성되었다.(주6)

이러한 설명은 민족을 자본주의 발생과 함께 형성된 것으로 보는 스탈린적 견해와는 달리, 그보다는 중앙집권적인 국가, 즉 민족을 형성하는 요소의 공통성을 국가의 통일성에서 찾고 있음을 보여 준다.

따라서 이는 자본주의경제를 민족 형성의 기본 요인으로 보는 종래의 개념에서 크게 벗어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이 출판물에서는 민족의 장래에 대한 문제에 대해서도 정의를 달리하고 있다. 즉 종래에는 "전 사회에서 공산주의가 실현되고 모든 민족들이 유일한 공산주의적 경제체제를 가지게 되면 점차 민족들의 합류가 실현될 것이다"라고 하여 민족 소멸의 필연성을 주장했는데, 여기에서는 "공산주의사회를 건설하려면 계급적 차이와 함께 민족적 불평등도 없애야 한다"라고 하였을 뿐 민족의 소멸에 관한 언급이 없다. 그 대신에 민족적 불평등의 해소만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주7)

이처럼 해방 후부터 60년대까지는 민족의 개념에 유물사관의 이론을 수용함으로써 스탈린이 정의한 민족 개념과 거의 같은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민족의 형성 문제에 대해서는 우리 나라의 특수성을 감안하여 서구사회의 민족형성에 관한 일반적인 이론보다는 독자적인 해석을 하게 되었다.

다시 말해서 민족의 형성 요인을 자본주의적인 경제권의 형성이 아니라 중앙집권적인 봉건국가의 통일성에서 찾고 있다. 그리고 민족의 장래에 있어서도 종래의 민족소멸론보다는 민족적 불평등의 해소를 주장함으로써 민족영구론적인 입장을 간접적으로 시사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후 1973년에 발행된 한 출판물은 민족 개념에 관해서 언어, 지역, 경제생활, 혈통과 문화, 심리 등에서 공통성을 가진, 역사적으로 형성된 사람들의 공고한 집단이라고 정의하고 있다.(주8) 민족 개념에 대한 이러한 정의는 1970년에 발간된 앞의 출판물에서 설명한 스탈린식 민족 개념의 정의와는 큰 차이가 있으며 민족 개념의 요소로서 `혈통`이 들어가 있는 점이 특징이라 하겠다.

이 문제는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1964년 김일성 주석의 「조선어를 발전시키기 위한 몇 가지 문제」라는 논문에서 언어와 핏줄의 공통성 문제로 다루어진 바 있는데 당시의 이러한 논의들을 70년대에 와서 정식으로 수용, 정리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이 출판물은 민족을 특징짓는 표징에서 가장 중요한 것 가운데 하나로 언어의 공통성을 들고 있다. 즉 "그것은 언어와 문자의 공통성에 의해서만 경제생활과 문화와 심리의 공통성이 이룩되고 또한 그것이 공고한 것으로 될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하여 언어문제를 가장 중요한 징표로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언어문제에 대해서는 `혈통`과 함께 이미 1964년 김일성 주석의 논문에서 지적된 바 있는데, 민족과 언어의 관계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민족어`에 대한 정의를 어떻게 하고 있는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위의 출판물에서는 민족어에 대해 "민족의 형성과 함께 이루어지고 발전하며 그와 운명을 같이 하며, 민족 안에서 단일화되어 전체 민족 성원들에게 공통적으로 쓰이고 이해되는 언어"(주9)라고 풀이하고 있다. 즉 민족어는 민족의 형성과 함께 생기고 또 민족과 운명을 같이하는 것으로 풀이함으로써 민족과 언어를 일체화하고 있다.

이러한 민족 개념의 정립과 함께 1980년 10월에 열린 노동당 6차 대회에서는 민족문제를 계급과 사상보다 중요시하는 입장을 취하게 되었다. 이 대회는 고려연방공화국의 창설방안을 제시함과 아울러 민족문제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이데올로기와 민족문제의 상호관계를 새롭게 밝혔던 것이다. 동 대회에서 당시 통일문제와 대남정책 담당비서인 김중린은 토론에서 다음과 말하였다.

김일성 동지께서 이번 대회에서 내놓으신 통일방안에 대해 민족문제에 관한 우리 당도 이러한 근본입장에 기초하고 있다.… 이것은 민족의 백년대계를 위해 모든 것을 복종시키는 가장 철저한 애국적 방안이라는 것을 확증하여 주고 있다.… 민족문제의 해결은 계급해방이나 인간문제 해결에 앞서야 하며 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민족의 자주성을 실현해야 한다. 민족이 있고서야 혁명과 건설도 있을 수 있고 사상과 이념도 있을 수 있으며 민족을 떠나서는 그것이 다 무의미한 것이다. 그러므로 민족주의를 하든 공산주의를 하든 그 어떤 사상과 이념을 신봉하든지 간에 무엇보다도 먼저 민족을 찾아야 하며 나라의 자주성을 지켜야 한다.(주10)

이처럼 그는 민족문제에 대해 종래의 유물사관적 입장과는 관점을 전혀 달리 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그리고 이 토론에서는 민족이 자본주의시대의 역사적 범주가 아니라고 하였고, 또한 사상과 이념의 상위개념으로서 민족문제를 설정하였는데, 이는 매우 파격적인 발언이었다고 할 수 있다.


3. 주체사관 민족관(주체의 민족관)과 민족제일주의

1982년 3월에 발표된 김정일 비서의 논문인 「주체사상에 대하여」는 당시까지 거론되어 오던 주체사상 이론을 하나의 사상체계로서 `완벽하게` 정립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을 기초로 하여 주체사상에 대한 이론을 「주체혁명위업」의 모든 부문과 관련시켜 그를 이론적으로 연구·개발하는 작업이 전개된 것이다.

그리하여 1985년에는 당 창건 40주년에 즈음하여 『주체사상총서』가 발간되었다. 이 『주체사상총서』는 주체사상을 사회주의혁명과 건설의 모든 부분에까지 결부시켜 풀이한 `총서`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총서에서는 민족 개념의 문제를 주체사관의 시각에서 더욱 완벽하게 정의한 것을 찾아 볼 수 있다. 이 총서에서 밝힌 민족의 형성과정과 개념을 보면 다음과 같다.

민족은 씨족, 종족을 이루고 살던 사람들이 자주성을 위한 투쟁을 하여 오는 역사적 과정에서 핏줄과 언어, 문화와 영토의 공통성에 기초하여 결합된 공고한 사회적 집단이다. 자주성을 위한 오랜 기간의 투쟁과정에서 사람들은 점차 씨족, 종족의 좁은 울타리를 벗어나 보다 복잡하고 다양한 사회적 관계를 맺게 되었다. 씨족, 종족의 필연적 조직이 파괴되고 사람들 사이에 새로운 통일적인 경제생활, 문화생활, 정치생활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통일적인 경제생활, 문화생활, 정치생활은 민족의 형성 발전을 위한 기본요인이다.(주11)

이와 같이 유물사관적 해석에 따라 자본주의 형성과 결부시켜 민족의 형성을 설명하지 않고 경제, 문화, 정치생활의 통일성에서 찾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다시 말해서 민족의 형성을 자본주의라는 특정한 시대적 배경과 연결시키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 대신에 자주성을 위한 장기간의 투쟁과정에서 형성된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러므로 민족을 구별하는 징표는 핏줄과 언어, 문화와 영토의 공통성이 된다는 논리이다. 또한 총서에서는 민족은 자주성을 본질적 속성, 민족의 생명으로 주장하고 있다. 그것은 모든 민족은 그들 사이에 어떠한 예속과 지배를 받지 않고 자주적인 사회 집단으로 존재하면서 자기의 문제를 주인된 입장에서 자결의 원칙에서 해결해 나가는 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 이러한 의미에서 민족의 생명은 자주성이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민족의 자주성은 민족의 형성과 함께 역사적으로 형성되었고 민족의 발전과 함께 견지되고 높여 나가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밖에 총서에서는 민족은 사회생활 단위라는 점을 다음과 같이 강조하고 있다.

민족은 사회의 공동생활을 확고히 담보하는 언어와 문화, 영토와 핏줄의 공통성에 기초하여 결합된 자주성을 가진 공고한 사회적 집단인 만큼 사람들의 사회생활은 민족을 단위로 하여 진행되게 된다.… 사람들은 특히 혁명과 건설도 나라와 민족을 단위로 하여 진행된다.… 민족이 있는 한 민족을 떠난 사회생활이나 혁명투쟁과 건설사업에 대하여 생각할 수 없다.(주12)

이러한 주체의 민족관은 8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민족주의 대신에 민족제일주의라는 것을 주장하게 된다. 이 문제는 1986년 7월 15일에 발표한 김정일 비서의 논문인 「주체사상 교양에서 제기되는 몇 가지 문제에 대하여」에서 처음으로 제시되었다.

김정일 비서는 이 논문에서 "혁명이 나라와 민족을 단위로 진행되고 있는 조건에서… 자기 나라 혁명에 충실하자면 무엇보다도 자기 민족을 사랑하고 귀중히 여길 줄 알아야 한다. 나는 이런 의미에서 민족제일주의를 주장한다"고 하여 민족제일주의라는 명제를 처음으로 제시한 것이다. 이어서 이 논문에서는 민족제일주의가 무엇인가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그 내용을 풀이했다.

내가 우리 민족제일주의를 주장하는 것은 자기 민족을 가장 귀중히 여기는 정신과 높은 민족적 자부심을 가지고 혁명과 건설을 자주적으로 해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큰 나라나 발전된 나라들에 대해서도 환상을 가져서는 안 된다.… 우리는 언제나 자기 나라의 구체적 현실로부터 출발하여야 한다. 친선도 자주성을 위하여 필요한 것이며 또 자주적 입장에서만 참다운 친선을 보장할 수 있다. 민족의 위대성은 결코 영토의 크기나 인구수에 의하여 규정되는 것은 아니다. 사람의 가치가 사상에 의하여 규정되는 것처럼 민족의 위대성도 무엇보다 그 민족의 지도사상이 얼마나 위대한가에 따라 규정된다.(주13)

또한 김정일 비서가 1989년 12월 당 중앙위 책임간부들 앞에서 한 「조선민족제일주의 정신을 높이 발양시키자」라는 제하의 연설을 했는데 이 연설에서는 조선민족제일주의에 대해서 인종주의나 민족배타주의와는 아무런 인연이 없다고 전제하고 조선민족제일주의 정신을 한마디로 말하여 "조선민족의 위대성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 조선민족의 위대성을 더욱 빛내여 나가려는 높은 자각과 의지로 발현되는 숭고한 사상감정이다"라고, 정의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긍지와 자부심이란, 첫째 위대한 수령을 모신 긍지와 자부심, 둘째 위대한 당의 영도를 받은 긍지와 자부심, 셋째 세상에서 가장 우월한 사회주의 제도에서 사는 긍지와 자부심을 뜻하는 것으로서, 민족의 우월주의는 아닌 것으로 되어있다. 또한 긍지와 자부심을 간직하는 것과 함께 "자기 운명을 남만 못지 않게 개척해 나가려는 자각과 의지를 가지는 것이 더 중요하다"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주14)

김정일 비서가 제시한 민족제일주의는 언뜻 보면 민족주의와 비슷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은 민족제일주의를 주장하면서도 민족주의에 대해서는 상황에 따라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는 자본주의사회에서 민족주의가 두 가지 측면에서 표현될 수 있다는 이론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 하나는 "대국 배타주의로 특징지어지는 지배하는 나라 또는 한 나라 안에 있는 큰 민족의 자본가계급의 민족주의"는 반대한다는 입장이며, 또 다른 하나는 "지배받는 나라 자본가계급의 민족주의"는 긍정적 측면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의 한 출판물은 다시 민족주의 문제를 다음과 같이 풀이하고 있다.

민족주의는 계급적 이익을 전 민족적 이익으로 가장하고 자기 민족의 우수성을 내세워 타민족을 멸시하고 증오하며 민족들 사이의 불화와 적대를 일삼는 부르조아사상이다.… 그러나 식민지 예속국가들에서의 민족주의는 제국주의 침략세력을 반대하고 민족독립을 이룩하기 위한 투쟁과 결합되었을 때 일정하게 진보적 역할을 한다.(주15)

이러한 주장은 자본가계급 민족주의는 부르조아계급의 사상이며 따라서 이는 원칙적으로는 부정적으로 보아야 하나, 식민지 국가의 민족주의는 반외세 투쟁과 연결될 수 있기 때문에 그런 경우에는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입장인 것이다.

따라서 민족제일주의와 민족주의는 전혀 다른 개념이라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서 민족제일주의는 집단주의사회인 사회주의제도에서 민족집단의 입장을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이는 주체사상의 사회역사관에서 비롯된 논리전개라고 보아야 할 것 같다.

주체사상의 사회관에서는 민족을 사회적 집단의 범주에 넣고 있으며, 그 내용은 사람의 집단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민족이란 사회적 집단의 하나이며 내용으로는 사람의 집단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주체사상에서는 사람의 집단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자주적 사상의식으로 보고 있으므로 인간의 집단인 민족의 위대성은 민족의 지도사상에서 규정된다고 주장하게 된다. 한마디로 말해서 민족제일주의는 사람 중심의 세계관에서 비롯된 것이며, 인민대중(민족 단위)이 역사의 창조자이며 사회운동의 주체라는 원리에서 출발한 민족에 대한 주체적 관점과 입장의 표현이라고 보아야 할 것 같다.

따라서 민족제일주의는 첫째 자기 민족을 가장 귀중히 여겨야 한다는 것, 둘째 민족적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 셋째 사회주의혁명과 건설을 자주적 입장에서 추진해야 한다는 것, 넷째 민족의 위대성을 지도사상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 다섯째 민족의 존엄과 영예를 더욱 높이 떨치도록 하여야 한다는 것 등으로 설명되는 것이다.

90년대에 들어서면서 북한의 주체의 민족관은 사람중심의 주체사관에 입각하여 보다 이론적으로 정식화하게 된다. 즉 민족을 사람들의 사회적 집단이며 사회생활의 기본단위로서 공산주의사회인 무계급사회가 도래한다 하더라도 민족은 해체 또는 소멸되지 않고 계속 발전해 나가는 것으로 정리가 된다.

다시 말해서 민족의 영구론을 보다 분명히 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민족의 형성과 민족의 본질적 징표에 있어서 마르크스의 민족이론과 근본적인 차이가 있는데서 비롯된 것이다.

마르크스는 민족의 기본적인 징표를 경제생활의 공통성이라고 하면서 인류역사를 계급투쟁의 역사로 보았다. 그리고 민족문제를 계급투쟁에 종속시키는 입장이기 때문에 계급이 소멸되는 공산주의사회에서는 「민족」이라는 것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 된다.

이러한 마르크스의 논리는 민족이 차지하는 독특한 지위와 역할을 무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주체의 민족관은 마르크스의 계급주의와는 달리 역사발전에서 민족이 갖는 역할을 인정하고 계급을 민족의 틀 속에 포함시켜 민족을 역사창조의 기본단위로 보고 있기 때문에 계급투쟁을 전개해서 공산주의사회가 온다해도 민족은 존속되면서 발전해 간다는 주장이다.

따라서 마르크스와 같이 경제상황을 민족의 기본 징표로 보지 않고 핏줄과 언어, 영토의 공통성을 징표로 보고 있다. 즉 "하나의 민족은 그에 고유한 핏줄기의 공통성, 언어와 심리에서 표현되는 문화의 공통성, 영토의 공통성에 의하여 다른 민족과 구별된다"는 논리이다.

그리고 민족의 징표중 핏줄, 언어 및 심리는 민족집단에 체현된 공통성이고 영토문제는 민족의 삶이 이루어지는 환경의 공통성이기 때문에 민족집단의 사람을 먼저 논해야 하며 다음으로 영토라는 환경을 말해야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지역을 달리하는 해외동포는 당연히 민족의 범주에 들어가게 된다.

그밖에 주체의 민족관에서는 정치제도와 경제제도를 민족을 구분하는 징표로 보는 것을 반대하는 입장이다. 이는 구 동독의 민족이론가들이 동독과 서독은 정치제도와 경제제도가 다르기 때문에 동독은 사회주의 민족이고 서독은 부르조아 민족이라고 주장하면서 민족단합을 주요시하지 않은 것과 관련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주체의 민족관에서 가장 핵심적이고 특징 있는 것은 민족을 하나의 사회적 생명체로 보고 그 생명체는 자주성으로 표현된다는 논리이다.(주16)

다시 말해서 자주성은 민족의 사회적 생명이라는 주장이다. 여기서 말하는 자주성이라는 것은, 첫째 다른 민족에 예속되거나 동화되지 않고 자기 운명의 주인으로서의 권리를 옹호하고 행사한다는 것, 둘째 다른 민족의 힘에 의존하지 않고 자기 운명의 개척자로서의 책임과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 등 두 가지로 설명되고 있다.

이러한 논리로부터 사회적 생명체로서의 민족의 집단적 생명은 민족 성원 등의 개인적 생명의 모체가 되며, 따라서 개인 등의 민족의 번영과 이익을 위해서 실천 활동을 하는 것은 민족의 집단적 생명의 요구인 동시에 개인적 생명의 요구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민족의 생명체론은 민족통일이론에 그대로 원용되고 있다. 따라서 민족 분단에 대해서도 민족이라는 생명체의 분단, 그리고 민족적 생명의 전일성이 파괴된 것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민족통일은 민족적 생명의 전일성과 통일적 기능을 회복하는 것으로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민족의 생명인 자주성의 확보와 통일적 기능의 회복은 계급논리가 개재될 수가 없으며 민족논리만이 가능한 것으로 된다. 다시 말해서 특정한 계급의 이념으로는 민족통일이 실현될 수 없는 것으로 된다. 요컨대 민족적 생명의 전일성과 통일적 기능의 회복은 민족논리에 입각한 민족집단 전체의 운동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맺음말

북한의 민족 개념은 사회주의혁명과 건설의 추진과정에서 그 내용을 달리해 오고 있다. 해방 뒤부터 60년대까지는 마르크스-레닌주의적인 유물사관의 입장에서 스탈린의 민족 개념을 별다른 비판 없이 수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70년대 이후에는 유물사관의 시각에서 벗어나 주체사관의 입장에서 민족에 대한 개념을 새롭게 정의하고 있다. 그리고 8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는 민족제일주의라는 것을 주장하게 된다. 90년대 들어서면서 주체의 민족관에 대한 이론이 보다 정식화되면서 자주성으로 표현되는 민족생명체론을 강조하게 된다.

이러한 민족관의 변화는 북한의 지도사상의 변화와 밀접히 결부되어 있다. 북한은 해방 후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창조적으로 수용하여 반제반봉건 민주주의혁명을 거쳐 사회주의 개조와 사회주의 건설 등 과도기 과업을 추진하게 되었는데, 그와 같은 실천과정에서 주체사상이라는 인간중심의 세계관이 이론적으로 정식화하게 된다.

이러한 지도사상의 변화과정이 바로 민족 개념의 정의에 그대로 반영되어 그 내용의 차이를 나타내주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이는 인문ㆍ사회과학 등 모든 분야가 주체사상에 입각하여 모든 범주들이 새롭게 조명되고 해석되는 것과 관련이 있는 것이다.

민족제일주의는 자기 민족에 대한 사랑과 자부심을 가지며 민족사 발전의 주체인 민족은 바로 사람 집단의 한 단위가 되기 때문에 민족의 자주의식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민족제일주의는 주체의 민족관에 기초하고 있음으로 기왕의 배타적 민족주의와는 그 내용과 차원을 달리하고 있음을 찾아볼 수 있다.

요컨대 북한의 주체의 민족관과 거기에서 출발한 민족제일주의는 종래의 마르크스-레닌주의에서 벗어나 새롭게 정립된 개념과 시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앞으로 인민대중의 자주성의 실현은 오늘날과 같이 민족단위로 실천해 나간다는 것이 분명한 사실이라는 것을 감안할 때, 민족제일주의 그리고 민족생명체론은 북한에서 계속 강조될 것으로 보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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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 >

(1) 공산당선언은 1847년 11월 공산주의자동맹 제2차 대회의 위임에 의하여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집필했으며 다음해인 1948년 2월에 공산주의동맹 강령으로 선포되었다. 동 선언에서 제시된 가장 중요한 내용은 계급투쟁에 관한 학설이며 노동자계급의 역사적 사명과 부르조아지의 멸망의 불가피성을 밝힌 점이다. 그리고 공산당의 당면 목적을 `…프롤레타리아의 계급에로의 형성. 자본가계급의 지배권 전복. 노동계급에 의한 정권 쟁취`라고 밝혔으며 만국의 노동자들은 단결하라는 구호를 제시함으로써 공산주의 운동의 국제주의적 단결의 사상을 천명했다.

(2) 레닌은 1916년 「사회주의혁명과 민족자결권」이라는 제하의 글에서 `프롤레타리아트는 그 국가의 국경 안에 있는 피압박 민족들을 폭력적으로 남겨두는 데 반대 투쟁해야 하며 이것이야말로 자결권을 위해 싸우는 것을 의미한다. 프롤레타리아트는 자국에 의해 억압되고 있는 식민지 및 제 민족의 정치적 분리의 자유를 요구해야 된다. 그렇게 하지 않을 경우에 프롤레타리아국제주의는 입만으로 때워버리는 공허한 것으로 끝나 버릴 것이다. 또한 피압박 민족의 노동자와 압박 민족의 노동자 사이의 신뢰성이나 계급적 연대성도 불가능해 질 것이다`라고 지적했다.(레닌선집 제22권, p.170, 동경 학우서방, 1966)

(3) 스탈린은 `…이 경우 민족의 역사는 다른 모든 역사적 현상처럼 변화의 법칙에 따라 그 시작과 끝이 있다는 것은 자명하다.… 이상의 특징은 한가지씩 뽑아내는 것만으로는 민족을 규정하는데 불충분하다. 하나만 빠져도 민족일 수 없게 된다`라고, 민족의 징표 중 하나만 빠져도 민족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주장했다.(마르크스주의와 민족문제, 1913, 스탈린전집 제2권, pp.329-330), 「원전 공산주의 대계」상, 극동문제연구소, 1984, p.845

(4) 「조선어를 발전시키기 위한 몇 가지 문제 」, 1964, 김일성저작선집 제4권, pp.1-5

(5) 상동

(6) 「철학사전」, 평양사회과학출판사, 1970.10, p.256

(7) `자본주의시대는 계급적 착취와 함께 민족적 억압이 지배하는 시대이며 극소수의 민족에 의하여 대다수 민족들의 자유로운 발전이 억제되고 민족적 불평등이 존재하는 시대이다. 인류의 최고 이상인 사회주의 공산주의를 건설하려면 계급적 차이와 함께 민족적 불평등도 없애야 한다.` 상동

(8) 「정치사전」, 평양 사회과학출판사, 1973.12, p.423
`우리 인민의 민족적 공통성은 우리 나라에 일찍부터 강력한 중앙집권적인 국가가 세워지고 여기에서 언어, 지역, 문화, 경제 생활의 공통성이 점차 이루어지는 오랜 역사를 통하여 이루어졌다. 민족은 생물학적 표징에 의하여 구분되는 인종과 다르며 한 국가 안에 거주하면서 사회정치 생활에 참가하는 공민(혹은 국민)과도 다르다.`

(9) `언어는 민족을 특징짓는 공통성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의 하나이다. 핏줄이 같고 한 영토 안에서 살아도 언어가 다르면 하나의 민족이라고 말할 수 없다` 「정치사전」위 책, p. 432

(10) 그밖에 김중린은 토론에서 고려민주연방공화국창설 방안은 `무엇보다도 자주성을 민족의 생명으로 보고 민족의 자주성을 옹호하며 고수하는데 모든 것을 복종시켜 나가는 우리 당의 일관한 입장이 철저하게 관통되어 있다. 다 아는 바와 같이 주체사상은 인간 중심의 철학적 원리로부터 출발하여 민족문제는 제국주의와 식민주의, 온갖 형태의 지배주의의 예속에서 벗어나 민족의 생명인 자주성을 완전히 실현하는 문제로서 그것은 자주성을 위한 근로인민 대중의 혁명위업의 기본구성 부분으로 된다는 것을 역사상 처음으로 밝혀 주었다. 나아가서 주체사상은 사람은 민족이라는 공동체 속에서 살아가는 사회적 존재로서 그들의 자주성을 위한 투쟁도 민족국가를 단위로 진행되는 만큼 민족의 자주성을 쟁취하고 고수하는 문제가 매개 나라 혁명에서 우위를 차지한다는 것을 독창적으로 밝혀 주고 있다`라고 민족문제 해결이 계급투쟁보다도 앞서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조선로동당대회 자료집」4권, 국토통일원 조사연구실, 1988.11, p.322)

(11) 「위대한 주체사상 총서」, 2권(주체사상의 사회역사원리), 서울, 백산서당, 1989, p.69
종족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풀이하고 있다. `원시사회에서 갈래가 같은 몇 개의 씨족 공동체나 촌락공동체가 연합한 집단. 자기네 거주지역과 종족 이름을 가졌고 그들에게만 고유한 언어와 풍속을 가지고 있었다. 공동의 이해관계가 있는 일을 심의하기 위한 종족 평의회가 있었고 곳에 따라서는 최고 추장이 있었다.`(「현대조선말사전」, 평양사회과학원 엮음, 1988, 도서출판「백의」펴냄, p.1835)

(12) 「위대한 주체사상 총서」, 2권 위 책, p.73
 
(13) 「근로자」,제7호, 통권 543호, 1987.7, 평양, p.11

(14) 「2000 북한자료: 인명편」, 1999.9, 연합뉴스, pp.436-439

(15) 「철학사전」, 1985년, 평양 사회과학원 철학연구소 집필, 1988.12, 서울 도서출판「힘」, 영인발행, p.231. 또한 이 사전에서는 민족의 발생에 대해서 `민족적 봉건적 억압과 경제적 분산성을 없애고 민족적 통일과 민족경제의 자본주의적 발전을 지향한 부르조아 민족운동 시기에 신흥 부르조아지의 계급적 이해관계를 반영하여 나왔다. 신흥 부르조아지는 자기의 계급적 이해 관계의 실현에 광범한 민주주의 역량을 끌어들일 목적 밑에 민족주의를 들고 나왔다`고 풀이하고 있다.

(16) 「기독교와 주체사상」, 1993, 신앙과 지성사, pp.359-3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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