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오후 2시 서울 삼청동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2층 국제회의실에 모습을 드러낸 故 윤이상 선생의 부인 이수자 여사(80)의 음성은 떨렸다.
이 여사의 방문 목적은 윤이상평화재단(이사장 박재규) 주최 '윤이상 탄생 90주년 페스티벌' 참석이다. 윤이상 선생이 '베를린간첩단사건(1967)'으로 옥고를 치른 뒤 40년만이며, 지난해 진실화해위(위원장 송기인)가 이 사건에 대해 박정희 정권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간첩단으로 확대포장한 것이라며 '국가의 포괄적 사과'를 권고하고, 이에 따라 올해 5월 이재정 통일부 장관이 '공식 사과'와 함께 고국 방문을 초청한데 따른 것이다.
'이제는 조국이 선생에 못해준 일 갚을 때'
이 여사는 "윤이상 선생의 고향방문인 만큼 저는 오늘 여러분에게 선생의 이야기를 조금 할 생각"이라며, "윤이상 선생은 과거 정부에서 온갖 굴욕을 다 겪었지만 실제는 민족의 아들로서 부끄럼없이 살아 세계 방방곡곡에 민족의 이름을 선양한, 조국의 아들로서 자기 임무를 다하다 살아간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세계적인 예술가들에게 있어, 조국은 그의 예술을 가꾸고 꽃을 피웠다. 그의 예술의 영광은 조국의 기상이고 자랑이고 긍지이다. 독일의 베토벤이 그렇고 핀란드의 시벨리우스, 소련의 차이코프스키가 그렇다. 그러나, 조국은 선생의 앞길만 가로 막았다"고 과거 군사독재의 소행을 비판하는 한편, 현 정부의 명예회복 노력에는 감사를 표시했다.
나아가 "정부는 선생의 방대한 예술작품을 갈고 닦아서 세계 여러나라에 전해야 한다"면서 "그것이 과거 선생에게 못해준 일을 갚는 것"이라고 촉구했다. 또 평양 윤이상 음악축제와 같은 행사를 서울에서 개최하기 위해서는 국가의 적극적인 뒷받침이 필수적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 여사는 노무현 대통령과의 면담에서도 이같은 뜻을 전하겠다는 의향을 내비쳤다.
'유골 이장'에 대해서는 "선생이 고향땅에 묻히기를 무척 희망했다"고 전제하면서도 타국에 묻히게 된 상황이나 윤 선생의 위상 등을 생각할 때 "단순하게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선을 그었으며, 이 여사 자신의 정착에 대해서도 "독일에 집이 있고 평양에도 집이 있다. 외국에도 오래 살면 정이 들어 살게 된다. (그런데) 40년만에 고향에 돌아오니 너무 낯설다"는 말로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북 최고책임자, 충분히 보고 마음을 풀고 오라 했다"
이번 고향방문에 대한 북측 분위기에 대해서는 "대단히 환영하고 있다"고 전했다.
"저는 항상 윤이상 관현악단이 서울에 와서 공연해주길 원했다. 그런데 제가 느끼기에는 '윤이상 선생의 이름을 가진 관현악단이 남에서 정치적 명예회복이 되어 있지 않은데 어떻게 남에 보낼 수 있나'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느꼈다. 그래서 저는 주저했다. 그런데, 이번 통일부 장관의 초청 받고 서울에 돌아가야 겠다 말하니 모두 기뻐했다."
특히 "최고책임자(김정일 국방위원장)께서도 '오래도록 고향 방문 못했는데 충분히 보고 마음을 풀고 돌아오라' 했다"면서 "(북측 관계자들이) 적으나마 여러가지 선물도 보냈다"고 전하기도 했다.
'윤이상 선생이 생전에 '나의 땅 나의 민족'을 김일성 주석에게 헌정했다'는 질문에 대해서는 "군사독재에서 민주인사들이 생사의 경계선을 오가던 험악한 때였다. 작품을 썼을 때가 그 무렵이었다. (저항)시인들의 시를 전부 묶어서 하나의 장시로 묶어 '나의 땅 나의 민족'을 썼다. 기자 선생에게 묻고 싶다. 그걸 서울에서 공연할 수 있었겠는가. 어림없죠. 그래서 평양에서 연주했다. 그때 주석께서 살아있어서 연주회에 나오셨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어 '헌정 여부'와 관련해서는 "선생님이 돌아가셔서 답변드릴 수는 없고 확실하게 아는 것도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와 관련 기자회견에 참석했던 윤이상평화재단 관계자는 "선생이 곡 해설을 직접 만들어놓으신 것이 있으니 가장 정확한 것은 그것을 참고하시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회견은 40분간 계속됐다. 박재규 윤이상평화재단 이사장과 정원 감사, 송기인 진실화해위 위원장이 배석했다. 많은 취재진이 회견장에 몰려 '윤이상의 영령과 함께 온' 이수자 여사의 40년만의 고국방문을 카메라에 담았다.
10일 입국한 이 여사는 '윤이상 탄생 90주년 페스티벌' 참가 외에 윤이상 선생의 고향 통영을 방문, 남편의 선산묘에 참배할 예정이다. 고국 일정을 끝내면 10월 예정된 윤이상음악축제 참석차 평양으로 떠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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