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사 김양희 객원기자가, <겨레하나>가 주최한 북측 협력사업장 방문단 일원으로 5월4일부터 7일까지 3박4일간 평양을 방문하고 돌아왔다. 지난해 11월달 이후 두 번째다. 평양방문 신청부터 소감을 정리한 김양희 객원기자의 평양방문기를 일기식으로 순차적으로 싣는다. 제목을 편의상 지난해와 구분하기 위해 <김양희 기자의 평양일기 Ⅱ>로 한다. / 편집자 주

평양에 다녀온 지 한 달여가 흘렀다. 지난 한 달 동안 제21차 남북장관급회담이 개최되고 경의선, 동해선이 복원되어 시험 운행을 가졌으며 금강산관광 9년 만에 내금강이 새롭게 추가되기도 했다.

이제 통일은 역사의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 봇물처럼 넘쳐나는 열기를 가로 막을 수 없다. 특히, 나는 지난달 17일에 있었던 남북열차 시험운행 당시의 감격을 잊을 수 없다.

평양친구들과 유럽 여행하는 행복한 상상

▲ 일행을 환영하던 양각도호텔 직원들. [사진-통일뉴스 김양희 객원기자]
남북 열차 시험운행이 성사된데 대해 세계 각국 언론들은 일제히 “한국이 세계와 연결됐다”고 보도했다. 나는 이 역시적인 순간을 회사 앞 식당에서 맞았다.

점심시간 식당에서 무심결에 본 TV에서 경의선과 동해선이 각각 남방, 북방 한계선을 지나 북으로 남으로 향하는 장면이란, 난 왠지 울컥해 목이 메어 간신히 꾸역꾸역 밥을 밀어 넣고 있었다.

“너무 감동적이지 않니?” 하는 나에게 후배는 “솔직히 담담해요. 차라리 우리 집앞에서 회사까지 직통 열차가 생기면 더 감동할 것 같아” 한다.

무덤덤한 후배에게 나는 이 열차의 연결이 얼마나 의미 있는 일인지를 설명했다.

지난 1951년 프랑스의 종군기자 막스 올리비에 라캉은 폐허가 된 서울역에서 파리행 기차표 한 움큼을 쥐고 놀랐다고 한다. 우리나라가 유라시아 대륙까지 연결된 것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난 통일이 되면 이 기차를 타고 평양 친구들도 만나고 함께 시베리아로 유럽으로 여행 갈꺼라는 행복한 상상을 해본다.

로승일 오빠, 기사 잘 보고 있나요?

▲ 로승일 안내원과 나. [사진-통일뉴스 김양희 객원기자]
‘인상 깊은 평양의 나날’이라는 제목은 이번 평양 방문기간 동안 만들어진 나의 오빠! 로승일 안내원이 지어준 제목이다.

언제 여길 왔을까, 또 언제 저길 갔을까 싶을 정도로 늘 요리조리 잽싸게 움직여댔던 로승일 안내원은 사진 찍고 기록하느라 매번 늦는 나에게 “기자가 나처럼 날래야지, 그렇게 느리면 어쩌나?” 놀리면서도 세심하게 챙겨줬다.

그런 로승일 안내원이 순안공항에서 “(고된 일정에 걱정하며) 병나지 말고...” 한다.

“에이 제가 얼마나 튼튼한데요”하며 넘겨버렸지만 한때 작은 몸집에 내 동생하자고 맨날 놀린 내가 부끄러울 정도로 그는 진정으로 나의 오빠였다.

그런 오빠가 내게 “기사 잘 쓰나 통일뉴스 꼼꼼히 보갔어, 제목 뽑아주련다. ‘인상 깊은 평양의 나날’ 어때?”하며 “내년에 또 오라”했다.

오빠, 정말 나의 기사를 보고 있나요? 기사를 보고 있다면 사진 찍지 말라는 곳까지 다 찍은 것을 보고는 ‘굼뜬 줄 알았는데 은근 날래네’하며 많이 놀라시진 않으셨는지.ㅋㅋ

오빠가 ‘뭘 이런 것도 찍냐’며 찍지 말라고 한 곳도 함께 통일을 만들어가야 할 평양의 한 모습이고, 독자들에게 평양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거든요.

담번에 또 평양에 갈 기회가 생겨 오빠를 만나기라도 한다면, 그리고 오빠가 제 기사를 읽으셨다면 “이런 것도 기사라고 썼나? 뭐 이리 못 썼나” 하실지, “그래도 이리 쓰느라 수고했다” 하실지, 아니면 “찍지 말라고 한 곳까지 찍으면 어떡하나?”하실지 참 궁금하네요.

그래도 오빠 말씀대로 지킨 것 하나! ‘인상 깊은 평양의 나날’을 제목으로 뽑았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누구보다 따뜻하고 재미있으며 ‘우리식대로 살아나간다’ ‘세상에 부럼 없어라’며 자신감에 넘치는 북녘 사람들을 만난 이번 참관 기간은 오빠 말대로 인상 깊은 나날의 연속이었습니다.

원고쓰기에 도와주신 분들께 고마운 인사

▲ 3조 뒷풀이. [사진-통일뉴스 김양희 객원기자]
부지런히 쓴다고 썼지만 한 달이라는 시간동안 기사를 쓰다 보니 평양에서 아무리 꼼꼼히 적어오고 사진을 찍어 온다고 해도 ‘아 그 사진 찍었어야 하는데’ ‘아 그것 물어볼 껄’ 하는 등 아쉬운 점이 많다.

돌아오자마자 기사를 쓰려는데 벌써 문제가 발생했다.

수첩에는 평양 도착 첫째 날, ‘저녁 양각도 호텔의 안내원-겨우 빠지셨습니다.ㅋㅋ’라는 메모가 적혀 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 때 무엇에서 겨우 빠져나온 것인지, 또 왜 재미있었는지 모르겠다. 또 내가 열심히 듣고 적었다고는 하지만 미흡한 점이 많아 기사 중에 둘째 날 방문한 ‘김원균명칭 음악대학’은 ‘김원균명칭 평양음악대학’이라고 정정을 해야 한다.

이런 마당에 한 달 여 전에 있었던 일을 쓰려니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부끄럽지만 그저 은근슬쩍 넘어가기도 하고 또 분명 대화를 나누긴 했으나 둘째 날 오전에 나눈 이야기를 오후에 나눈 걸로 쓰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런 오류를 최소화하기 위해 많은 이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또 사진을 얻곤 했다. 내 이름으로 올라간 사진 중에 상당수는 광주전남겨레하나 주관철 사무국장에게, 평양 야경을 비롯 창광유치원의 아이들 모습 등은 겨레하나 콩우유사업본부 탁무건 운영이사에게서 얻은 것이다. 또 일정의 상당수를 막내인 대구경북통일연대의 태상이에게 시도 때도 없이 물어보곤 했다.

마감에 쫒겨 워낙 기사를 급히 써 부족하지만 그래도 이나마 완성을 한 것은 모두 이들 덕분이다. 이들 외에 또 누구보다 고마운 인사를 전해야 할 곳은 평양에서 내게 다양한 기사거리를 제공해준 사람들이다. 이들이 없었다면 난 단 한 줄의 일기도 쓰지 못 했을 텐데 그들은 어느 해보다도 활기찬 모습과 또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어리버리 덜렁대는 기자에게 좋은 기사거리와 또 기사 쓰는 데 많은 도움 주신 분들 정말 고맙습니다.^^

약속지키시라~ 리동혁 안내원

▲ 서울에 온 리동혁, 바빠서 함께 사진한장 못찍다. [사진-통일뉴스 김양희 객원기자]
한 달이 조금 넘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난 평양에서 만난 인연들을 남녘에서도 계속 이어 가고 있다. 너무 신기한 것은 그동안 정말 많은 이들을 만났다는 것이다.

평양에 다녀오고 지난 5월 23일에는 늦으면 벌금을 걷던 3조의 뒷풀이를 진행했는데 이곳에서 한꺼번에 10여명이나 되는 일행을 만났고 그 이전 5월 19일부터 20일까지 광주의 5.18기념행사 취재를 갔을 때도 만나기 힘든(?) 창원의 염주민 부위원장까지 만났다(아! 돌아오는 길 고속도로 휴게실 화장실에서 만난 겨레하나 손미희 조직실장님도 반가웠구요^^).

그렇지만 생각지도 못한 이와도 만났다.

“시집갔나? 문제있구만”하던 북녘의 리동혁 안내원을 만난 것.

지난 5월 21일 아카데미하우스에서 진행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제8차 아시아연대회의에 북측 대표단으로 참석한 그를 취재차 간 내가 딱 만난 것이다.

날 놀리는 것이 아주 재미가 붙었는지 헤어진 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그는 또 내게 “시집갔나?” 한다.
“뭐예요! 며칠 됐다고 이러세요!”

“아 난 또 그 사이에 간 줄 알았지! 대신 담 번, 평양에 또 오면 시집을 보내주겠다.”
“그렇담 담엔 부모님이랑 함께 가야겠네요.ㅋㅋ”

“통일을 위해 힘쓰는 것처럼 땀과 열정을 갖고 적합한 사람들 물색하겠다.”
“헐~정말인가보네, 그런데 상대방이 싫다고 그럼 어쩌게요?”
“여럿 찍으라고, 찍음 바로 연결 시켜줄게.”

그를 만나자 평양에서 꼭 물었어야 하는데 묻지 못한 것들을 몇 가지 물어보았다. 가장 궁금했던 것은 ‘유리왕’ 논란.

동명왕릉에서 해설 강사의 설명을 듣던 중, 누군가 “북녘은 유리왕을 유류왕이라고 부르네” 한다. 고구려의 건국 시기가 우리보다 빠른데 유리왕까지 우리와 부르는 명칭이 다르다는 것은 대단한 기사거리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 그런 중요한 사실을 바쁜 일정을 핑계로 “이따 물어봐야지” 하다가 깜박하고 확인을 하지 못하고 온 것이다.

내내 마음에 걸렸는데 리동혁 안내원을 만나니 반갑기 그지없다.

리 안내원은 “어려운 것 좀 물으라”며 뭐 그런 황당한 질문을 하냐는 표정으로 “유리왕이지 어떻게 유류왕이나?”한다. 북녘의 익숙치 않은 발음에 우리 일행이 잘못들은 것이었다.

마찬가지로 나는 리 안내원을 통해 우리 안내원 이름이 김용실이 아닌 김영실 안내원이었다는 점, 노승일 안내원이 아닌 로승일 안내원이라는 것 등을 확인했다.

또 북녘은 문화어라고 해 1960년대 ‘평양 말을 중심으로 지방의 언어를 모두 모아 새롭게 표준말을 만들어 우리 남녘과는 발음은 물론 단어까지 달라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평양역 거지 해명

▲ 평양거리. [사진-통일뉴스 김양희 객원기자]
이번 일기 기사 중 가장 뜨거운 반응을 보인 것이 ‘평양역의 거지’ 이야기가 아닐까 한다.

기자들에게 가장 기쁜 일은 자기 기사에 반응이 오는 것으로, 무플보다는 악플이 낫다고 할 정도다(늘 기사를 보고 응원을 해주신 이윤 선생님도 고맙습니다).

그런 면에서 평양역의 거지 이야기는 많은 반응이 있었고 덕분에 최근 인기기사 1위에도 오르는 영광(?)을 얻게 해줬다. 그러나 나는 이런 반응 역시 놀라울 따름이다.

양각도 호텔 화장실 표지가 우리와 다른 것이 신기했고, 또 5층 버튼이 없는 것이 신기하다고 사진을 찍어댈 만큼, 다른 사람들이 유치하다고 생각하는 사소한 것도 한 번 눈에 들어오면 신기하게 보는 성격 탓에 나는 조금 엉뚱하다는 이야기도 곧잘 듣는 편이다.

평양역의 거지이야기도 무심결에 지켜보다가 어느 순간 “어 정말 없네”하고 생각이 들어 이야기를 풀어놓게 된 것이다.

우리 너무 당연해 미쳐 생각을 하지 못하다가 갑자기 “아! 맞다 이건 그렇지”할 때가 있는 것처럼 막연히 공동분배를 하는 사회주의에서 거지가 있을 리 없다고 머리 속으로 생각을 하고 있지만(이것도 딱히 떠올려서가 아니라 당연히 그러려니 했던 듯하다) 어느 순간 평양역을 보며 “어! 정말 거지가 없네”라고 생각이 들었던 것.

때문에 결코 이를 ‘평양역에는 거지가 없다’고 선전을 하고 싶어서도 아니고 또 ‘거지가 없어 좋아 보였다’도 아니고 그저 거지가 정말 없었다는 사실 전달과 함께 우리도 그렇고 미국도 세계 최강대국이라고 하는데 왜 거지가 그렇게 넘쳐나는지, 이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는지 안타깝다는 마음을 표현하고 싶어 쓴 글이라고 설명하고 싶다.

이해할 수 없는 일 많으면 좋지!

▲ 만경대학생소년궁전 안내원들. 늘 이곳에 있으니 사진을 꼭 뽑아 달라고 했다. [사진-통일뉴스 김양희 객원기자]
로승일 안내원을 비롯, 일정 내내 운전을 해준 김광철 운전사, 양각도 호텔 김향희 봉사원, 대성식당의 종사원 등, 이들은 한결같이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했다.

원래 근무시간 이외의 시간에까지 일을 하게 되니 힘들지 않냐는 말에 “일이 많으면 좋지요! 하나도 힘들지 않습니다”한다. 국가를 위해 일을 하는 것이 뭐 힘들게 있냐는 것이다.

야근하기를 죽기보다 싫어라하고 또 쉬는 날 나오라고 라도 하면 아예 죽은 척 하고 마는 평범한 직장인인 내가 보기에는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한 인사가 평양에 다녀와서 전해준 이야기도 비슷하다. 호텔에서 메모지를 얻어 쓰려는데 종이를 그냥 주지 않고 4등분을 해 잘라 주더란다.

“그거 어차피 나라에서 나오는 종이인데 왜 그걸 그렇게 아끼냐”는 말에 호텔 종사원은 “내 것이면 그냥 드리지만 나라의 재산이기 때문에 아낍니다” 했단다.

지난해 가을 평양에 다녀와서는 북녘을 생각하며 조금 추워도 참고, 또 난로를 켜기보다는 옷을 더 두툼하게 입었었다. 그런 내 모습을 보며 후배는 “갔다 오더니 쓸데없는 것 배워왔다. 사장이 그러는 거 알아주겠냐? 난로라도 팍팍 떼라” 했다.

후배의 그 말에 “그렇지, 공짜로 쓸 수 있는 거라도 팍팍 쓰자” 했었는데... 이게 또 바로 북의 저력이 아닐지...

평양에 가기 전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푸에블로호를 반환할 것’이라는 기사를 보고 간 터에 한 안내원에게 “푸에블로호를 미국에 돌려줄꺼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그는 “그걸 왜 돌려줍니까? 학생들에게 미제의 본질을 알려주는 학습 장소인데, 남녘에는 우리가 미국에 푸에블로호를 돌려준다고 소문이 났었습니까?” 한다. 물론 그가 영향력 있는 인사가 아니기 때문에 그의 말대로 되는 것은 아니지만 민화협 김만길 중앙위원의 “테러의 왕초는 미국이다”며 “사탕 알 없이는 살 수 있어도 총알 없이는 살 수 없다”는 말에 미루어 볼 때 대부분 북녘 사람들이 그렇게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창광유치원 아이들과 작은운동회,오른쪽엔 통일열차가 달린다. [사진-통일뉴스 김양희 객원기자]
어린이를 왕이라 여기는 자상한 마음 이면에는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과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으며 소위 ‘맞짱’을 뜨는 자존심을 갖고 있고 그러면서도 늘 여유로운 웃음을 간직한 사람들, 그곳에는 내 오빠, 친구들이 있다.

좋은 사람들에게 나의 가족과 친구를 소개시켜주듯, 통일뉴스 독자들에게 내가 만난 평양과 또 그곳의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해주고 싶었다. 내가 비록, 북녘에 대해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은 아니지만 북녘 사람들을 이런 평범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도 또 새로운 기사거리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상렬 대표의 “보면 또 보고 싶고 또 봐도 또 보고 싶다”는 말처럼 평양 사람들은 중독성의 강한 매력이 있다. 그 매력에 빠진 나, 무식하고 평범한 시선도 통일에 꼭 필요할 것이라고 믿고 앞으로도 수다스러운 평양일기는 계속될 것이라고 감히 말해본다. 쭈~욱~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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