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의 대립 끝에서 시작된 평택 대추리 주민과 정부와의 대화가 13일, 이주요건에 양측이 최종합의하면서 마무리됐다.

12차례에 걸친 공식대화의 결과에서, 이주방안에 관련해서는 ‘이주단지가 조성될 때까지 전세주택으로 이사했다가 또 한번 이사하는’ 정부의 요구가 관철됐으며, 부차적인 면에서 ‘정부유감표명, 사법처리 선처요청’ 등 주민의 요구가 일정부분 수용됐다.

그러나 핵심사항이었던 이주방안이 정부의 요구대로 결정되면서 이주를 합의한 주민들의 마음은 편치 않아 보였다. 이주합의가 알려진 뒤, 대추리 촛불집회에서 ‘또 한번 정부가 원하는 대로 됐다’는 불만이 터져나왔다.

이번 대화가 무산돼 정부가 또다시 강제철거에 나설 경우, 이에 대응할 힘이 없는 주민로서는 정부의 이주방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날 정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위기국면에서도 ‘참여정부의 기본방침인 대화를 통한 사회적 갈등 해결’ 원칙을 준수하여 합의를 이뤄내는 성과를 거두었다”며 생색을 냈다.

그러나 정부가 강조하는 ‘대화’는 주민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아서 만든 ‘강요된 대화’였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지난 5월 4일 강제철거와 황새울의 철조망, 군부대가 부인할 수 없는 증거다.

평택범대위 유영재 정책위원장은 “주민들이 원해서 나가는 것도 아니고 내쫓기는 것이기 때문에 가슴이 아프고 범대위 관계자로서 책임을 느낀다”면서도, “정부가 대화에서 강압조치를 통해 최후통첩을 하는 등 끝까지 주민들에게 압력을 행사해 내쫓는 것”이라며 정부를 규탄했다.

‘마을 공동체 유지’, ‘정부의 합의사항 이행’은 남은 과제

부당한 여건 속에서 진행된 대화지만, ‘평택미군기지확장 반대운동’의 중요한 축이었던 주민들의 문제는 이번 합의로 일단락됐다.

그러나 주민들이 만 3년 6개월 동안 거대한 국가를 상대로 ‘평택미군기지확장’의 부당성을 바로잡기 위해 싸워온 과정은 이주가 합의됐다고 해서 퇴색될 수 없는 부분이다. 그동안 싸워왔지만 이주할 수밖에 없다는 상실감에 빠진 주민들에게 위로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주요건이 합의됐지만, 주민들의 ‘마을 공동체만큼은 유지하겠다’는 마지막 바람이 지켜지기 힘든 측면도 있다. 이번 합의안에서 평택시 팽성읍 노와리나 남산리(CPX훈련장)에 이주단지를 조성하기로 해 두 곳으로 갈라질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실제 주민들 마을 자체조사에서 대부분 이주조성단가가 상대적으로 싼 노와리로 이주하기를 원했으나, 남산리로 이주하겠다는 주민들도 소수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이주단지가 조성될 때까지는 1년 8개월여가 소요돼, 이 기간 동안 주민들의 지금과 같은 유대감을 유지하는 것 또한 쉬운 일이 아니다.

평택지역의 시민사회단체 측에서는 그동안 평택시가 중앙정부보다 ‘대추리 주민문제’에 대해 관심이 없었다는 점을 들어 합의사항 이행에 대한 의구심을 제기하기도 했다.

주민들이 새로운 이주단지에서 공동체를 유지하고, 정부가 합의사항을 이행하도록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는 것이 우리 사회가 할 수 있는 남은 몫이라 할 수 있다.

3월 31일 이주완료, 사라지는 대추리

이번 합의로 주민들은 다음달 31일까지 대추리를 떠나게 된다. 이어 남아있는 주택 등 대추리의 건물, 그동안 문화예술인들의 작품들이 모두 철거된다. 대추리는 지상위에서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주민들의 이주가 현실로 다가오면서, 그동안 주민들과 함께 싸워온 시민사회단체와 대추리를 지지했던 이들의 상실감 또한 커 보인다.

올 초 이주협상이 진행되면서부터 이들 단체는 ‘평택미군기지확장 반대운동’의 새로운 활로를 찾기 위해 노력해왔지만, 한동안 ‘주민이주로 평택싸움은 끝났다’라는 여론에 밀려 이러한 활동이 위축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평택미군기지확장사업의 MP(시설종합계획)가 발표를 앞두고 있고, 기지건설이 본격화 되는 시점에서 이 싸움의 중요한 국면이 조성되고 있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평택대책위 이은우 상임대표는 “일단 최근 주민들이 대화에 나서고 타결까지 가는 과정에서 지역사회단체들이 주민들에게 어떤 연대나 희망을 주지 못한 점에 대해 반성하고 죄송한 마음이 든다”면서도 “올해 진행되는 기지건설공사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해 좀 더 문제를 구체화 시키고 평택 전역에 미치는 문제를 공론화해, 지역에서 시민들을 묶어서 새롭게 출발하는 계기가 되어야겠다는 다짐도 든다”고 밝혔다.

대추리에서 ‘지킴이’로 살고 있는 진재연 씨는 “마을 주민들이 이주를 하더라도 이 싸움은 계속 해나가야 하기 때문에, '평택지킴이'들의 모임인 ‘평화를 택했다’ 등을 통해 새로운 것을 계속 만들어 가야 한다”고 다짐했다. 마을지킴이들은 14일 회의를 통해 향후 방침을 정하기로 했다.

그동안의 애착만큼이나 크게 다가올 ‘대추리 상실감’으로부터 빨리 벗어나는 것이 그동안 대추리를 지지하고 평택미군기지확장의 부당성을 주장해온 개개인의 숙제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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