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리 세이모어 미 외교협회(CFR) 부회장은 7일, 베를린회동(1.16-18)부터 현실화된 미국 부시 행정부의 북핵 접근법을 ‘제한적 비핵화’라고 규정했습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의 군축담당 특보이자 94년 북미 제네바 기본합의 당시 미국 대표단의 부단장을 역임했던 그의 지적이기에 무게가 실릴 수밖에 없습니다.

‘새로운 접근법’의 배경과 관련, “워싱턴에선 완전 해체는 달성할 수 없는 목표이며, 6자회담에 진전이 없으면 북한이 회담장을 나가 핵실험을 재개할 위험성이 실재한다는 현실주의가 점증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따라서, ‘제한적 비핵화’는 “곧바로 완전해체로 가지 않고 과도적(interim) 단계부터 시작하는” 것이며, 당면 최대 목표도 “영변 5메가와트 원자로의 가동을 단순동결하는 게 아니라 즉시 재가동이 어렵도록 하는 ‘기술적인 장애물’을 설치하는 ‘불능 조치’ 합의”가 되는 것입니다.

부시 행정부는 지난해 ‘10.9핵실험’이 닥치자, 과거 경직된 대북정책으로 빚어진 사태에 대한 국내.외의 점증하는 비판 앞에서 6자회담의 가시적 진전이라는 돌파구가 필요했습니다. 또 진전은 자신이 뒤집어엎은 제네바 합의를 뛰어넘어야 했습니다.

아시다시피 제네바 기본합의는 북 흑연감속로를 ‘교체’하는 대가로 전력 200만kw에 상당하는 경수로 핵발전소를 지어주고 그 초기단계로 동결과 매해 중유 50만톤 지원을 골자로 하고 있습니다.

세이모어에 따르면, 부시 행정부의 새로운 접근법의 핵심은 제네바 합의의 최대 목표(흑연감속로 폐기)와 초기 단계 조치(동결)를 연결시킨, 초기단계 이행조치에서 ‘폐기로 가는 되돌릴 수 없는 동결’이라는 개념에 있습니다.

표면적인 수사가 어떻든 현실적으로 북핵 폐기가 어렵거나 장구한 세월이 걸린다고 보고, '북핵폐기'를 '폐기로 가는 되돌릴 수 없는 초기단계 조치'로 대체하려는 것입니다.

이같은 접근법을 구사할 때, 최대 약점은 결국 종국적인 북핵폐기를 포기하고 있다는 비난입니다. 국내적으로는 이럴거면 왜 제네바 기본합의를 뒤엎었는가는 것이고 국제적으로는 특히 일본의 불만을 무마해야 합니다.

결국, 부시 행정부는 초기단계에서 제네바 합의보다 더 나아가야만 합니다. ‘폐쇄’가 강조되는 이유입니다. 다른 하나는 ‘북핵폐기’를 현실적인 목표로 상정하지 않는다면 북에 굳이 경수로를 지어 줄 필요도 없다는 ‘실리’도 고려했을 것입니다.

이 접근법이 성공하기 위한 최대의 난관은 물론 미국과 북한의 주고받기이며 그 핵심은 양자 모두 ‘되돌릴 수 없는(irreversible)'이라는 개념에 있습니다.

미국으로서는 북한에게서 ‘되돌릴 수 없는’ 동결을 위한 ‘기술적 장치’를 따내야 하고, 북한은 핵카드의 성격상 미국으로부터 ‘되돌릴 수 없는 대북적대시정책 변화의 보증장치’를 받아내야 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교환대상인 ‘비가역적 조치’들이 등가성을 찾기 어렵다는 점에 있습니다. 북이 미국에 해줘야 할 조치(폐쇄)는 물리적 조치인 반면, 미국이 북에 해줘야 하는 조치는 정치적 조치입니다. 정치적 조치가 물리적 조치보다 되돌리기 쉽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베를린 각서’를 통해 이 문제가 해결됐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습니다. 구체적인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북미관계 정상화와 경제제재 해제 또는 다른 테이블(BDA 실무회담)에서 논의 중인 북한의 국제금융체제에의 참가 문제가 될 수도 있습니다.

미국에게 또 하나의 난제는 중유비용을 분담하는데서 일본을 설득해야 하는 것입니다. 일본이 베를린회동 전후부터 여기저기서 불만을 터트리고 이번에는 아베 총리까지 나서서 심통을 부리고 있습니다.

어쨌든 어제 첫날 회의에 대한 각국의 소감은 ‘훌륭한 출발’이었다는 것입니다. 또 합의문 초안도 회람되었다고 합니다. 결과가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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