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일, 문정현 신부는 사제서품 40주년 기념식에서 주민들에게 선보일 손풍금을 연습하고 있었다. [사진 - 통일뉴스 정명진 기자]
"사제서품 10주년은 감옥에서 지냈고, 은경축(25주년)은 친동생 문규현 신부가 임수경 씨와 동행해서 군사분계선을 넘은 것으로 징역살이하고 있었다. 40주년 마저 김지태 위원장이 감옥에 있고, 이렇게 고통 속에 있는 주민들과 같이 지내게 된다."

사제서품 40주년을 평택 대추리에서 맞이한 문정현 신부의 첫마디에서 대추리.도두리 주민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묻어났다.

문 신부의 사제서품 40주년은 12월 16일이다. 주변에서 40주년을 축하하자고 했으나, 문 신부는 '이런 판에 어떻게 경사스런 일을 지낼 수 있느냐'며 극구 사양했다.

그런 와중에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26일, 대추리 성탄절 미사와 함께 문 신부의 사제서품 40주년 기념행사를 준비했다. 문 신부는 "축하행사를 한다고 하니, 대추리.도두리 주민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사제서품 40주년 기념미사'에 앞서, 이날 오전 문 신부가 2년 가까이 살고 있는 대추리 '평화바람' 집에서 그를 만났다.

새해를 맞이하기 전에, '평택미군기지확장저지 범국민대책위' 상임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문 신부로부터 '치열했던 2006년 평택싸움'을 정리해 보고도 싶었다.

"주민들에게 더이상 버티라고 말할 용기가 없어"

문 신부의 방문을 열고 들어가자, 손풍금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는 이날 미사 때 주민들에게 선보일 '고향의 봄'을 연습하고 있었다. 여지껏 힘 빠지고, 지친 주민들에게 문 신부의 이런 모습이 힘이 돼 왔었다.

문 신부의 주민들에 대한 애정은 남다르다. 그럴수록 극한의 상황 속에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주민들을 바라보는 문 신부의 심정은 더욱 타들어 간다.

[사진 - 통일뉴스 정명진 기자]
요즘 문 신부는 주민들 앞에서 서는 것조차 편치 않아 보였다. "주민들 얼굴 보기가 너무 가혹해, 가혹해." 문 신부는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그는 "난 솔직히 주민들에게 더이상 싸우라고 말 못하겠다"며 "이 분들이 자기 탓도 없이, 미군기지 확장이라는 것 때문에 고통당해야 하는가. 나는 정말 주민들에게 더이상 버티라고 말할 용기가 없어"라고 말했다.

그는 "여기 주민들은 송두리째 뺏긴다. 집이고 텃밭이고, 논이고, 전체를 뺏기는 것 아니냐"며 "금년 봄에 파종을 했고, 벼가 지금도 논에 서 있지않나. 철조망에 가로막혀 추수도 못하고 있다"고 안타까워 했다.

가을에 추수해서 빚도 갚고 내년 농사 지을 준비도 해야 하는데, 올해 파종하면서 들어 간 돈이 고스란이 주민들의 빚으로 남게 됐다고 한다.

이런 주민들에게 정부는 더욱 가혹했다. 문 신부는 "이주대책이라는 것도 날짜를 잡아서 10월 22일까지 (협의매수에 응하지) 않으면 모든 혜택을 받을 수 없다고 그래서 도두리는 거의 넘어 간 것"이라며 "대추리 사람들은 구속되어 있는 이장님 때문이라도 그것에 응하지 못했지. 그리고 상가 분양권이다, 취득세다, 이런 것들을 다 불리하게 만들어 놨다"면서 정부를 원망했다.

"그러니 이 주민들이 숨을 쉴 수 없는 것이지, 촛불집회도 웃음이 없어졌어. 참 침울한 촛불집회라고. 어떻게 용기를 불어 넣어 줄 수 있어! 이것은 개인으로서는, 몇 단체로 감당할 수 없는 일이야. 이것을 주민들 보고 견디라, 견디라 할 수 없잖아. 더 이상 견디라고 말을 못하는 그것이 너무 마음이 아파. 주민들의 숨통을 조이는 이런 정부를 대항하는 게 울분이 터지고, 이 울분을 삭힌다는 것이 보통 힘든 것이 아니야." 말을 잇는 문 신부의 얼굴에도 힘든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그는 "이렇게 주민들에게 고통을 가중시켜 가면서 이 사업을 진행한다는 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며 "내가 내 손으로 내 목숨을 끊는 것 이외에 못할 짓이 없을 것 같다"며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평화세력이 다 하지 못한 것"

▲ 생각에 잠긴 듯한 문 신부.
[사진 - 통일뉴스 정명진 기자]

문 신부에게 올해 싸움에 대한 평가를 부탁했다. 그는 먼저 정부에 대해 "민간정부가 군부에서 벗어나서 민간정부가 들어섰지만, 외형적으로 민주화 됐지, 내부적 운영요소는 독재요소가 많다"고 평했다.

그는 "미군기지 확장 사업은 시작부터 폭력적이고 독재적"이었다며 "땅을 빼앗기는 주민들이 자기 권리를 주장할 여백이 전혀 없었고, 땅을 뺏기 위한 수단으로 법을 만들어 집행했다"고 꼬집었다.

아울러 "이를 지켜보는 평화세력들은 점차로 독재요소에 대해 깊이 인식하고 투쟁을 계속함으로써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며 넘지 못할 산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올해 주민들과 함께 싸워온 '평화세력'에 대한 아쉬움도 이어졌다. 그는 "이렇게 이 투쟁에서 대추리 주민들은 할 만큼 다 했다"며 "평화세력이 다 하지 못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주민들은 평화대행진이라는 이름으로 4차 평화대행진까지 해왔다"며 "그때마다 주민들은 지지세력에 대한 기대가 컸지만, 주민들에게 만족감을 주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이어 "주민들이 만족했다면 더 버틸 수 있었던 것"이라면서 "사람이 돈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고 정의.진실을 추구하면서 살 수 있는데, 주민들이 물질적으로 잃는다 하더라도 싸우려면 싸울만한 가치가 발견되야 하는 것"이라면서 평화세력이 다하지 못한 부분을 지적했다.

길 위의 신부, "뭐 하나 제대로 이룬 것은 없다"

▲ 길위의 신부, 문정현. [사진 - 통일뉴스 정명진 기자]
문 신부를 두고 사람들은 '길 위의 신부'라고 부른다. 74년 인혁당 사건 이후 반독재 운동, 노동운동, 통일운동 등에 몸 담아 온 문 신부는 97년부터 매향리, 미순이.효순이 사건, 미군 범죄문제 등 'SOFA(한미주둔군지위협정) 재개정 운동'으로 활동을 이어갔다.

그는 길 위에서 보낸 사제생활을 뒤돌아 보며 "이제껏 뭐 하나 제대로 이룬 것은 없다"고 말했다. 특히 "평택 싸움에서 정부는 다 끝난 수순으로, 계속해서 소환장이 날아 오고, 기소를 하고, 감옥에 집어넣고...... 이렇게 지는 싸움을 생각할 수록 처절하다"며 "요즘은 혼자 이런 생각을 하면 눈물이 앞선다"고 심정을 밝혔다

천주교에서는 사제서품 10주년과 25주년인 '은경축', 50주년인 '금경축'을 기념한다. 문 신부에게 금경축까지 10년이 남았다. 그는 "금경축을 지내는 신부님은 흔치 않다"며 "10년이면 성당생활로 두군데 지내면 훌쩍 지나간다"면서 "여기 싸움이 어쩌면 내 역사 안에서의 삶, 투쟁의 마지막이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그 까지꺼 10년 더 살면 그 세월이 얼마나 길며, 그렇다고 보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것을 다 쏟아 부을 수 있는 마지막 계기가 아닌가. 10년이 길다면 길지만 지나놓고 보면 눈깜짝할 사이에 지나는 10년일 텐데...... 다 산거야. 아마 내 생애 마지막 종착점이 아닌가. (사제서품) 40주년 이야기가 계속 나오는데, 그때마다 얼마 남지 않았네, 내 생도 얼마 남지 않았네라는 생각이 들어."

74년 인혁당 이후, 문 신부는 '이런 싸움이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단다. 그러나,

"엄청난 변화, 투쟁을 했던 나도 예기치 못한, 내가 기대한 그 이상으로, 그리고 탄압을 가하던 자들도 놀랄 만큼 큰 변화가 오더라. 내가 97년부터 미군 싸움에 뛰어들었으니까 벌써 2006년 아닌가, 그러면 내년이면 10년이야, 변화가 오지 않겠는가." 그는 그가 살아온 인생을 통해 변화를 직감하고 있었다.

이어 문 신부는 "그 변화를 위해서 그야말로 유보없이, 계란으로 바위 친다 하더라도 살아야 그날이 오지 않겠는가"라며 "경우경우의 투쟁에서 지는 싸움을 계속하고 있지만, 변화가 오는 날이 온다 이거야"라며 힘주어 말했다.

"절대로 주저앉지는 않겠다"

[사진 - 통일뉴스 정명진 기자]

그렇다면 올해 치열했던 평택싸움으로 얻은 것은 무엇일까? 문 신부는 "대추리 주민을 지지하는 그룹들이, 그동안 이곳을 다녀간 사람들, 왔다가지 않았어도 모두가 빚을 진 마음이더라"며 "이런 죄스러움, 빚진 마음이 굉장이 중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죄스러워 하는 것, 이것을 저지하지 못했다고 하는 점, 이것이 하나로 모아질 수 있다. 어느 날, 어느 곳에서 모아 질 수 있는 현상"이라며 "그래서 절대로 주저앉지는 않겠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 신부는 평택 싸움의 다음 과제로 '마스터 플랜(MP)'를 주목했다. 마스터 플랜은 평택미군기지확장을 위한 주요계획으로 한미간 이견으로 인해 발표가 늦어지고 있다.

그는 "마스터 플랜이 7월이다, 12월이다 그러면서 아직도 안 나오고 있다"며 "그것도 없이 280만평을 정하고, 울타리를 치고 시설을 갖추어 주고, 이사비용까지 대주고 한다는 것은 백지수표나 다름 없다. 국민 세금을 백지수표로 넘겨 준다는 것이 틀리지 않나"라고 꼬집었다.

또한 "그동안 흘러나온 이야기가 풀장을 만든다, 골프장을 만든다, 각종 유락시설에다가 호화판 주택을 짓는다는 것"이었다며 "이런 계획이 공식적으로 발표됐을 때, 전국민적 저항에 부딛힐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고 예상했다.

이어 "마스터 플랜이 곧 나오게 될 것이고, 2013년으로 연장한다고 하는데, 이런 과정에서 어떤 변수가 일어날 지 누구도 모르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주민들이 땅을 다 뺏기는 한이 있더라도 투쟁을 해서 변수가 생기는 대로 대응하고, 종래에는 한미간의 평등한 관계로 가는, 그 때는 이러한 투쟁이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싸움은 그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지"

▲ 스스로 힘들어 하는 문 신부지만, 대추리. 도두리 주민들에게는 큰 힘이 된다.
[사진 - 통일뉴스 정명진 기자]

문 신부에게 내년 계획을 물었다. 그는 "한미간의 관계가 이렇게 돼서는 안되는 것이라는 점은 분명한 것이고, 아직도 한미관계가 평등하기 위해서는 아직도 많은 과제가 남아 있는 상태에서 내년이라고 다를 것이 있겠나"라고 답했다.

그는 "주민들이 모든 것을 다 빼앗겨도 이 싸움은 계속하는 것"이라며 "주민이 지금까지 주체가 됐지만, 주민이 주저앉아도 주민의 억울함을 만천하에 알려야지"라고 다짐했다.

"대추리에 계속 있어야지. 주민들과 같이 있어야지." 문 신부는 되뇌였다.

주민들이 지금까지 싸워온 것은 문 신부에게 있어서 황혼을 불사르게 할 '불씨'로 남을 것 같다. 그리고 그 불씨는 대추리 안에서만 타다 꺼지는 것이 아니라 이미 이리저리 옮겨 붙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문 신부가 말한 당신의 '죄스러움과 빚진 마음' 속에도 주민들이 뿌린 불씨가 옮겨 붙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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