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양희 객원기자 (tongil@tongilnews.com)

본사 김양희 기자가 평양 방문에 이어 지난달 25일 <민화련> 주최 ‘청소년 평화통일 숲가꾸기 행사’에 참석해 개성을 둘러봤다. 김 기자의 개성 방문기를 세 차례에 걸쳐 연재한다. / 편집자 주


개성은 또 어떤 모습일까?

▶25일 민화련이 주최하는 '청소년 평화통일 숲가꾸기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세종문화
회관 인근에서 개성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양희 객원기자]
아직 평양 방문의 감흥이 채 가시기도 전, 비록 선죽교, 고려역사박물관 등 개성 시내를 돌아볼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기회가 생겨 바로 개성공단 당일 방문을 신청했다.

개성은 또 어떤 모습일까? 이전부터 몇 번이고 개성공단의 취재를 시도했지만 번번이 무산돼, 당일 방문이긴 하지만 나의 기대는 평양을 갈 때와 별반 다르지 않다.

11월25일 아침 6시50분.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후문 분수대 앞 집결.

광화문 세종문화 회관 뒤편에는 거짓말 조금 보태 수 십 여대의 버스가 서 있다. 결혼식장으로 출발하는 버스, 뒤늦은 단풍구경이라도 가시는지 아줌마 아저씨들의 관광버스, 학생들의 엠티차량 등등...

오늘 개성으로 출발하는 차는 6대. 민족화합운동연합(이하 민화련)가 주최하는 ‘청소년 평화통일 숲가꾸기 행사’에는 경실련, 남이랑북이랑, 보령시, 동국대, 통일문화재단, 안산 시민사회단체 회원 등 총 240여명이 참여를 했다.

▶ 광화문에 있는 양정의숙의 창학터 기념비석. [사진 - 통일뉴스 김양희 객원기자]
특히 내가 속한 2조의 차는 광화문 청학터 앞에 서있다. 광화문 세종문화회관을 수없이 지났지만 이런 곳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의외의 장소에 ‘우리나라 최초의 민립사학 창학’이라는 기념비석이 있었다.

처음으로 우리 민간의 돈으로 학교를 세워 세상에 일꾼을 배출한 민립사학과 통일의 기반이 될 처음으로 조성된 남과 북의 경제협력 단지인 개성공단이 어딘지 모르게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이재봉 교수와 ‘남이랑북이랑’

나는 ‘남이랑북이랑 더불어 살기 위한 통일운동’(이하 남이랑북이랑)이란 단체의 회원자격으로 이번에 개성을 방문한다.

‘남이랑북이랑’은 원광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이재봉 교수가 1999년 6월 연평해전을 빌미로 남북 사이에 전쟁위기가 고조되는 것을 보고 전쟁만큼은 막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북녘 바로 알기 소식지를 펴내며 시작된 것으로 회비는 전액 북녘 동포 돕기의 성금으로 쓰이고 소식지를 만들고 보내는 등 운영비용은 이 교수와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 20여명이 운영위원회를 만들어 별도로 마련하고 있단다.

이재봉 교수는 “7년이 흐른 현재 7000여명의 회원과 7000여 만원의 성금이 모였다”며 “앞으로 1만 여명의 회원을 모집, 1억원의 성금을 모아 체계적으로 북녘 지원 사업에 쓰고 싶다”고 말한다.

처음에는 남측에서 북녘돕기운동 등을 실시하면 분배의 투명성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있어 비닐 온실을 지어줘 남새(채소)라도 이모작, 삼모작을 해서 먹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모금운동을 시작했으나 지난 2005년 10월 ‘남북어린이어깨동무’가 평양에 어깨동무학용품공장을 세우는데 1000만원, 2006년 9월 북녘 큰물 피해 복구를 위해 1000만원을 지원했단다.

이 교수는 “핵실험 이후 미국이 개성과 금강산 관광 사업 중단을 압박 하는데 정부에서는 명확히 대답을 못하고 있다. 개성과 금강산은 최소한의 평화를 위한 통로가 될 것으로 기대, 민간에서라도 남북교류를 지속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번 개성 숲가꾸기 행사와 금강산기행 계획을 세웠다”고 밝혔다.

남이랑북이랑은 앞으로도 2차례의 개성과 1차례의 금강산 기행을 떠난다.

출발을 하려는데 앞에 앉은 선문대 학생들이 부산하다.

일행 중 하나가 이곳까지 왔으나 최종 명단에서 자신의 이름이 누락돼 그냥 집으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유인 즉, 북측에서 초청자 중 외국인과 영주권을 가진 우리교포 등 10여명의 개성 방문 불허 결정을 전날에야 통보를 했단다. 그런데 이 학생은 해당사항이 없었음에도 다른 사람들의 취소 서류 처리 과정 중에서 착오로 인해 누락이 됐다는 것.

그 학생은 이후에도 계속 일정이 있어 개성을 방문할 수 있지만 재외교포의 불허 결정에 이재봉 교수는 애를 먹었다 한다.

한 재일교포 분이 전날 밤 전화를 걸어와 “어떻게 방문을 하는 건데 이럴 순 없다”며 30분을 하소연을 하셨다며 북도 좀 더 유연해져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자유로에 대한 좋지 않은 기억

▶ 개성공단으로 들어가는 도로 입구. [사진 - 통일뉴스 김양희 객원기자]
서울을 출발한 차는 어느새 자유로를 지난다.

나는 사실, 통일시대를 맞아 남북간 연결 간선도로망 건설 및 수도권 서북부지역의 교통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건설됐다는 46.6㎞의 자유로에 좋지 않은 기억이 있다.

2001년과 2002년 8월 두 차례, ‘통일맞이’가 주최한 강원도 고성부터 강화도까지 16박 17일간 휴전선평화통일 대행진을 다녀왔는데 자유로는 심신이 지칠 대로 지친 마지막 부분에 걷게 되는 데다 끝도 없이 쭉 뻗은 도로는 걷기 전부터 기를 팍 죽인다.

▶개성공단 내에서 운행되고 있는 차량의 번호판. [사진 - 통일뉴스 김양희 객원기자]
주변의 풍경이 바뀌지도 않고 함께 대화를 나눌 상대조차 없는 자유로, 아무리 걸어 나가도 앞을 봐도 뒤를 봐도 늘 똑같은 위치에 서 있는 듯한 자유로에는 조금의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도, 최소한 용변을 보기위해 숨을 만한 공간도 없었다. 뜨겁디 뜨거운 8월의 태양은 아스팔트를 작렬, 더욱 기세를 떨치는데 손바닥만한 나무 그늘 하나 없던 그곳에서 대행진단은 하나 둘 탈진해나갔다.

자유라는 이름과는 어울리지 않게 왼쪽에 끝도 없이 늘어선 철책선을 볼 수 있는 자유로에 대해 사진작가이자 평화운동가 이시우 씨는 “노태우 대통령은 통일의 이념을 자유, 인권, 행복의 가치가 구현된 민주국가로 결정했으며 국가형태는 단일국가로 확정, 이를 기리기 위해 이 도로를 자유로라고 이름을 지었다. 그는 자유로 준공식사에서 ‘자유로’를 통해 남과 북이 만나고 대화하게 될 것이라고 했는데 남과 북이 대화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6.15선언으로 7.4남북공동성명의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의 3대원칙이 재확인된 상황에서 과연 자유로라는 이름은 적절한가?”라고 반문한다.

“개성은 ‘열린성’이라는 뜻으로 통일을 예비하는 도시다”

▶ 경의선도로 남북출입사무소 앞 모습. [사진 - 통일뉴스 김양희 객원기자]
민통선을 지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경의선남북도로출입사무소에 도착한다.

민화련 측은 “북핵 실험 이후 남측에서 식량지원을 끊는 일이 비일비재한데 다른 것도 아니고 먹는 것 가지고 장난친다며 남쪽 사람들에 대한 불신으로 개성시내 관광을 금지시켰다는 말이 있다”며 “아무래도 오늘 개성 시내 관람이 어려울 것이다”고 말한다. 곳곳에서 아쉬운 탄성이 터진다. 민화련 측은 또한 “개성에서 나올 때 일일이 사진을 검열을 하니 군인을 대상으로 사진을 찍지 말 것, 찍었을 시 카메라를 빼앗기거나 벌금을 내야한다”는 등의 당부의 말을 몇 번이고 강조한다.

민화련의 주종환 의장은 “개성은 ‘열린성’이라는 뜻으로 통일을 예비하는 도시다”며 “개성공단을 방문하는 것은 나무 심기를 통해 통일을 활짝 열자는 의미다”고 말한다.

▶출경 심사대 모습. [사진 - 통일뉴스 김양희 객원기자]
개성으로 떠나기 전 한 후배 녀석이 “개성에선 핸드폰 터지겠다. 그리고 거기엔 KT 지사가 있잖아” 했는데 평양과 마찬가지로 이곳에서 핸드폰을 걷는다. 테러의 수법이 정교해지면서 핸드폰 모형의 작은 폭탄이 많기 때문에 핸드폰이 반입 금지라 들었다.

이곳은 공항과 마찬가지로 일일이 짐 검사를 하고 수속을 한다. 출경수속을 하는 게 신기한 지 참가자들은 연신 사진을 찍는다.

▶ 참가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양희 객원기자]
이곳에서 반가운 인물을 하나 만났다. 평양을 함께 다녀온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안산본부 노세극 삼임공동대표. 그는 오늘 행사 주최 측인 민화련의 이사로 행사를 추진하기 위한 실무를 담당하고 있단다.

이번 일을 추진하기 위해 총 5차례나 개성을 방문한 그는 평양에 떠나던 날도 오전에 개성에서 행사 담당자들과 협의를 했고, 차로 2시간이면 갈 수 있는 평양을 바로 가지 못하고 다시 서울로 나왔다가 인천공항에서 북경으로 북경에서 하루 묵고 평양에 들어가는 둥 분단으로 참 쓸데없는 소모적인 낭비를 하고 있음을 온몸으로 보여준 바 있다.

노 대표는 “자라나는 꿈나무인 청소년들이 북녘에 직접 와 군인들이 지키고 있던 개성공단 주변을 평화의 나무심기로 울창한 숲을 이루길 바라는 마음에서 사업을 추진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북핵문제, 중간고사 기간 등으로 많은 청소년들이 참가하지 못한 것은 아쉽다”고 말했다.

“앞으로 평양이나 개성 방문하시는 분들, 제발 말 좀 들어요!”

▶ 개성공단 전경. [사진 - 통일뉴스 김양희 객원기자]
출경수속을 마친 우리는 버스를 바꿔 타고 개성으로 향한다.

창밖으로 그 유명한 ‘철마는 달리고 싶다’의 주인공 녹슨 기관차, 경쟁적으로 우뚝 서 있는 남의 대성동 마을과 북의 기정동 마을의 태극기와 인공기도 눈에 들어온다. 서로 더 높이, 크게 만들어 과시하기 위해 만든 그곳의 국기는 6.15시대임에도 아직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깃대라는 타이틀이 좋아서 아직도 있는지... 그곳의 국기는 비바람 등에 훼손이 쉽게 돼 한 달 유지비만도 100여만 원씩 든다고 한다.

이재봉 교수는 “우리는 그동안 정말 쓸데없는 소모적인 일들을 해 왔다”며 “대성동과 기정동 마을의 국기 외에도 김일성대학이 21층이라는 것에 대항하기 위해 영남대학교는 부지가 넓은데도 불구하고 ‘김일성대학에 질 수 없다’며 22층 건물을 세우기도 했다”고 말한다.

북방한계선을 지나고 정말 눈 깜짝할 새에 북측의 출입국 사무소에 도착했다. 지척이라더니, 이리 가까울 수가 없다.

▶ 검사대 앞에서 수속을 기다리고 있는 참가자들. [사진 - 통일뉴스 김양희 객원기자]
남성들은 남성들이, 여성들은 여성들이 검사를 하기 위해 남녀가 나뉘어 수속을 받는다. ‘녀자’라로 쓰여 있는 곳으로 가니 둥글둥글 푸근하게도 생긴 아줌마 직원이 우리를 검사한다.

그런데 여기서도 또 문제 발생, 지지리도 말 안 듣는 남쪽 사람들은 그렇게 몇 번이고 핸드폰을 걷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개인적으로 핸드폰을 갖고 있는 사람이 있어 X선 검사에서 적발된 것이다. 또 그렇게 군인을 찍지 말라고 했으나 한 학생이 호기심에 군인들을 향해 사진을 찍었고 그는 바로 방북증명서와 카메라를 빼앗겼다. 이러니 남측 사람들 10명 줄세우기가 참새 10마리 줄 세우기보다 어렵다는 말이 안 나올래야 안 나올 수가 없다.

▶ 참가자들의 핸드폰을 미리 수거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양희 객원기자]
이는 그저 자신만이 아니라 함께 간 모든 사람에게도 피해가 가는 것으로 수속이 일찍 끝나 시간적 여유가 있으면 1군데 정도 더 업체 탐방을 할 수 있다는데 이런 사소한 문제들이 발생하면서 수속은 늦어져 시간 때문에 결국 갈 수 있는 곳도 못가는 것이다. 앞으로 평양이나 개성을 방문하시는 분들, 제발 말 좀 들어요!

지루하도록 입국 수속을 기다리던 중 또 사소한 문제가 발생했다. 통일부에서 방북 승인을 받을 때 제출해야 하는 질문지의 문항이 너무도 많아 민화련 측에서 키를 한꺼번에 170cm로 통일을 해놓아 우리 일행은 모두 방북증명서에 신장이 170cm로 기재돼 있다. 그런데 한 초등학생의 방북증명서를 보고 “너도 170이냐”고 잠깐 실랑이가 벌어졌던 것.

문제는 바로 해결이 됐지만 아까운 시간이 가고 있었다.

개성공단 성공 케이스 신원

▶신원 개성공장의 모습. [사진 - 통일뉴스 김양희 객원기자]
개성의 날씨는 11월 말 답지 않게 참 따뜻했다. 추울까봐 두툼하게 입고 간 점퍼를 내내 벗고 다녀야 할 지경이었다. 개성공단이 더 따뜻한 것은 남과 북이 함께 어우러져 통일을 만들고 있는 현장이기 때문에 더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을까?

첫 방문지는 신원. 공장 한켠에는 북녘 근로자들의 자전거가 죽 늘어서 있다. 개성공단 내에서는 평양과는 다른 개성공단만의 자동차 번호판이 달려있고 기업체들은 신원이면 신원, 한국전력공사면 한국전력이라는 식의 자신의 업체 이름의 번호판을 달고 다닌다. 개성 공단내에는 버스도 있지만 근로자들의 대부분은 자전거를 이용해 출퇴근을 한다.

▶ 신원 공장 내부. [사진 - 통일뉴스 김양희 객원기자]
▶ 북측 여성 근로자들. [사진 - 통일뉴스 김양희 객원기자]
5개의 여성복, 1개의 남성복 브랜드를 출시하고 있는 신원은 개성공단 사업장에 공장을 세운 후 가장 성공을 한 케이스라 한다. 개성공단의 공장은 중국을 비롯한 다른 해외의 공장들보다 물류도 최적인 동시에 뛰어난 인재들이 많아 가장 성과가 높은 공장으로 평가돼 현재 3개의 공장으로 늘렸단다.

신원의 황우성 법인장은 “이곳에는 남측 근로자 9명에 북측 근로자가 830여명이 근로하고 있으며 북측 근로자들은 전체가 고졸 이상의 학력자이며 30% 이상이 전문대졸 이상의 고급인력들로 정서와 언어가 통해 남과 북이 모두 만족하고 있는 성공적인 교류협력기지이다”며 “개성공단에서는 15개의 봉제라인에서 하루 1500여장을 생산, 국내 내수의 약 5% 정도를 감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북측 근로자들이 타고온 자전거가 나란히 놓여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양희 객원기자]
20대의 앳된 여성들은 부지런히 미싱, 재단, 마무리 등의 일을 하고 있었다.

혹시라도 불쾌하진 않을까 해서 참관은 조용하고 신속하게 이뤄졌으나 오히려 일부는 “이게 뭐 구경꺼리가 되느냐, 뭘 이런 걸 다 보러와 심각해하며 사진을 찍느냐” 하는 투로 우리를 힐끔힐끔 쳐다보고 자기들끼리 속닥거린다.

발랄한 20대들이 한결 가깝게 한다. 이들이 앞으로도 우리 남과 북을 한층 더 가깝게 해낼 주역이리라.

춤 파문 일어난 봉동관

▶ 참가자들은 봉동관에서 식사를 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양희 객원기자]
우리 일행은 점심을 먹기 위해 그 유명한 봉동관으로 향한다. 개성공단 내에는 현대, 현대와 아라코에서 운영하는 단체급식 시설과 봉동관 등의 식당이 운영되고 있다.

남측 근로자들의 대부분은 단체급식 식당에서 끼니를 해결하지만 이렇게 모처럼 손님들이 온다면 대부분 봉동관으로 향한다.

봉동관을 보고 난 깜짝 놀랐다. 나뿐만 아니라 함께 간 일행 대부분이 화들짝 놀랐다. 열린우리당 김근태 의장의 춤 파문이 일어난 봉동관은 작고 허술해 도저히 춤 파문이 일어날래야 일어날 수가 없는 곳이었다.

▶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의 춤 파문이 일어난 봉동관.
[사진 - 통일뉴스 김양희 객원기자]

2차 개발 단지에 포함돼 개발이 시작되면 헐릴 처지라는 봉동관은 재개발을 앞둔 집처럼 초라한 외관과 번쩍 빛나는 조명이나 네온조차 없는 좁은 무대를 자랑(?)한다. 개성공단내의 최고의 식당이지만 봉동관은 한꺼번에 먹을 수 있는 최대 인원이 100명 정도이기에 우리 일행은 두 팀으로 나뉘어 1, 2, 3호 차가 먹고 나면 4, 5, 6호 차가 먹어야 한다.

100명의 인원을 수용할 수 있다지만 어린 시절 초등학교 교실보다도 더 좁아 길게 세로로 붙인 식탁에 우린 옴짝달싹 움직이지도 못하게 다닥다닥 붙어서 먹어야 했다. 그러다보니 무대라는 것이 얼마나 비좁고 허술하던지, 개성이 평양보다도 시골이라 그런지 평양의 식당들에 비해서도 한참 뒤쳐졌다.

▶ 문제의 '춤판'이 다시 벌어졌다. [사진 - 통일뉴스 김양희 객원기자]
춤이라는 것도 또 봉사원들이 “이곳에 오신 여러분들을 민족애로 환영 합니다”라며 손을 잡아 이끌고 손을 위아래로 흔드는 정도이다.

나는 이곳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봉동관이 좀 그럴듯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옥류관을 비롯해 ~~관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만 해도 그렇고 한나라당 의원님들이 거세게 몰아칠 때만 해도 양각도 호텔의 화려한 식당 등을 상상했다.

신문이나 방송 등이 사람들의 눈과 귀를 얼마나 멀게 하는가?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예쁜 봉사원과 춤을 추는 모습의 사진에서 봉동관은 넓고 화려한 무대에서 예쁜 아가씨들과 끈적한 춤을 출수 있는 곳이라는 가짜의 이미지를 만들고 그 이미지를 믿도록 하니 말이다.

▶봉동관 안에 마련된 기념품점. [사진 - 통일뉴스 김양희 객원기자]
신문사에 입사를 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삼천만원만 내면 9시 뉴스에서도 ~~이 좋다는 기사를 낼 수 있다. 그 돈도 9시 뉴스에 한번 나가면 그 다음날 불티가 나 바로 본전 뽑고도 남는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그 이후 나 역시 수차례의 광고성 기사를 쓰게 되면서 신문이나 방송 등을 무조건 믿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런데 언론이 그리 믿을 만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나조차도 이번에 또 한 대 맞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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