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이 함께 쇠는 개천절과 추석이 연이어 달력상에 빨간 날로 표시된 휴일만도 5일이나 된다. 형편에 따라 좀더 길게, 혹은 좀더 짧게 휴가를 맞겠지만 설레는 마음만은 누구나 마찬가지이리라.

개천절과 추석연휴, 어떤 책을 읽을까 고민하는 독자들에게 너무 무겁지 않으면서도 분단된 조국과 분쟁이 끊이지 않는 세계의 단면을 잘 보여줄 수 있는 5권의 책을 권해보고 싶다.

영원한 지식인의 사표, 리영희의 『대화』

▶리영희 선생의 '대화'. [자료사진-통일뉴스]
리영희, 그의 이름은 이미 우리 현대사 속에 우뚝 선 지식인의 사표로 자리매김되고 있다. 『전환시대의 논리』, 『우상과 이성』, 『베트남전쟁』등 그의 저서는 7,80년대 당시 진보운동진영의 필독서였고 우리 지성사에 획기적 전환을 가져왔다.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 소장과의 대담 형식으로 엮여진 『대화』(한길사, 2005)는 현대사의 흐름과 함께 한 리영희 선생의 일대기를 다룬 독특한 형식의 자서전으로 누구에게나 일독을 권할만한 책이다.

『대화』속에는 그의 지식인으로서의 삶의 궤적과 대쪽같은 자세와 사상이 그대로 드러나 있을 뿐만 아니라 당시 현대사의 흐름이 고스란히 담겨있어 이 책을 잡는 순간 책에서 눈을 뗄 수 없게 된다.

지난 9월 18일, 50년 간의 그의 집필활동을 총결산한 '리영희저작집 출간을 기념하는 모임'이 열렸고, 이 자리에서 그는 집필활동 마감을 선언했다. 독자의 입장에서 아쉬움이 남는 것도 사실이지만 지식인으로서 역할을 훌륭히 수행하고 떠나는 그에게 참가자들은 박수를 보냈다.

『대화』를 읽고 나서 그의 책들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된다면 이번에 발간된 '리영희저작집'(한길사) 전12권을 한권씩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12권의 책은 『전환시대의 논리』, 『우상과 이성』, 『80년대 국제정세와 한반도』, 『분단을 넘어서』, 『역설의 변증』, 『역정』, 『自由人, 자유인』,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스핑크스의 코』, 『반세기의 신화』, 『대화』, 『21세기 아침의 사색 』등이다.

비전향장기수 허영철의 『역사는 한번도 나를 비껴가지 않았다』

▶허영철 선생의 '역사는 한 번도 나를 비껴
가지 않았다'. [사진제공-보리출판사]
27년간 감옥살이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남아프리카의 넬슨 만델라가 명함도 못 내미는 유일한 나라가 있다. 0.75평의 독방에 갇혀 생사를 넘나드는 전향공작과 고문을 이겨내고 3,40년이 넘는 옥중생활에도 자신의 신념을 지킨 채 두발로 옥문을 나선 이들이 부지기수인 우리나라가 바로 그곳이다. 그들을 이름하여 비전향 장기수라 한다.

해방후 고향인 전북 부안군에서 인민위원장을 지냈고 한국전쟁 시기에는 빨치산 활동을, 이후에는 북쪽에서 개풍군 인민부위원장을 역임하고 통일사업을 위해 남파됐다가 구속된 뒤 만 36년 간의 감옥생활을 견뎌내고 출소한 허영철 선생(86).

그의 일대기를 다룬 『역사는 한번도 나를 비껴가지 않았다』(보리출판사, 2006)는 주로 해방정국과 전쟁시기, 전후복구시기를 '인민'과 더불어 사업한 구체적 경험을 생생히 증언하고 있다. 특히 그간 남측에 잘 알려지지 않은 북녘의 전후복구시기 그가 경험한 북녘 사회가 손에 잡힐 듯이 그려져 있다. [통일뉴스 서평 보기]

한번 손에 잡으면 밤을 새워 마지막 한 장까지 읽게되는 이 책을 덮기가 아깝거든 다른 비전향장기수들의 사연들도 찾아 읽어볼 수 있을 것이다.

최초의 본격적인 비전향장기수 관련 소설 『완전한 만남』(김하기, 창작과비평사, 2000)을 비롯해 『0.75평 지상에서 가장 작은 내방 하나』(창, 2000), 『보안관찰자의 꿈』(정순택, 한겨레신문사, 1997), 『역사는 남북을 묻지 않는다』(심지연, 소나무, 2001),『김석형 구술자료집 - 나는 조선노동당원이오!』(이향규, 선인, 2001), 『통일의 한길에서』(고성화, 창미디어, 2006) 등이 있다.

또한 김동원 감독의 다규멘터리 『송환』과 홍기선 감독의 영화『선택』도 추석을 맞아 함께 둘러앉아 볼만한 영화이다.

실크로드학을 개척한 정수일의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다』

▶정수일 선생의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감옥에서 보낸 편지글을 모아 책으로 엮어 낸 중에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것은 인도의 독립영웅 자와할랄 네루가 딸에게 쓴 196편의 편지글을 모은 『세계사 편력』(남국원 역, 일빛, 2004)을 꼽을 것이고, 국내에서는 단연 신영복 선생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돌베게, 1998)을 꼽을 것이다.

그처럼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읽는이의 가슴에 잔잔한 파문을 일게하는 또 한 권의 옥중 서간집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정수일 선생의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다』(창작과비평사, 2004)이다.

그는 '무함마드 깐수'라는 필리핀인으로 위장해 간첩활동을 했다는 죄목으로 1996년 체포된 후 2000년 8월 석방될 때까지 감옥에서 부인에게 옥중편지를 보냈다.

편지글에는 일반인의 상상을 초월하는 남북은 물론 중국 이집트, 모로코, 튀니지, 말레이시아 등 세계를 편력한 경험과 '실크로드학'을 개척한 석학으로서의 부단한 자기 정진과정이 담담히 펼쳐져 있다.

그의 학문세계를 더 엿보고 싶은 독자들은 우선 쉽게 읽을 수 있는 『한국 속의 세계(상.하)』(창작과비평사, 2005)나 『이슬람문명』(창작과비평사, 2002) 등을 읽고 난 뒤 그의 방대한 저서 목록을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저서로는 『신라.서역 교류사』(단국대출판부, 1992), 『세계 속의 동과 서』(문덕사, 1995), 『씰크로드학』(창작과비평사, 2001』, 『고대문명교류사』(사계절, 2001), 『문명의 루트 실크로드』(효형, 2002), 『문명교류사 연구』(사계절, 2002) 등이 있고 역주서로는『이븐 바투타 여행기(1,2)』(창작과비평사, 2001), 『중국으로 가는 길』(사계절, 2002), 『혜초의 왕오천축국전』(학고재, 2004) 등이 있다.

생생한 분단의 현장을 담은 이시우의 『민통선 평화기행』

▶이시우 사진작가의 '민통선평화기행'.
[자료사진 - 통일뉴스]
우리가 일상에서는 늘 잊고 사는 분단의 현실. 그 분단의 현장에 카메라를 들이댄 사람이 있다. 평화운동가이자 사진작가인 이시우.

『민통선 평화기행』(창작과비평사, 2003)은 이시우 작가가 비무장지대 서쪽 끝 백령도부터 동쪽 끝 고성까지를 10년간 발품을 팔아 쓴 역작이다. [통일뉴스 서평 보기]

그는 단순한 사진작가를 넘어서서 대인지뢰에 발목을 잃은 민통선 주민들의 아픔을 처음으로 이해해준 그들의 벗이 되었고, 한강하구 평화의 배띄우기를 최초로 제안하기도 한 평화운동가이다.

그의 카메라와 시선이 머무는 곳에는 녹슨 철로 위에 피어난 작은 꽃 한송이도 분단의 아픔으로 피어났고, 고인돌의 기울기 하나에서도 소중한 조상의 지혜가 살아난다.

분단 현장을 담은 많은 사진과 그의 사색이 묻어나는 사진 설명, 발로 뛰어 기록한 풍부하고 다방면적인 글은 독자를 경탄케하기에 충분하다. 이 책은 지난해 10월 독일 프랑크푸르트도서전에 '한국의 아름다운 책 100종'에 선정되기도 했다.

그의 사진을 더 보고 싶은 독자들은 사진집 『비무장지대에서의 사색』(인간사랑, 1999), 『끝나지 않은 전쟁, 대인지뢰』(한국교회여성연합회, 1999)를 보면 되고 분단현실에 대한 보다 역사적인 안목을 갖추길 원하는 독자는 판문점 역사의 산증인인 이문항 선생이 쓴 『JSA-판문점(1593∼1994)』(소화, 2001)의 일독을 권한다.

제3세계 반미투쟁의 선봉 『민중의 호민관 차베스』

▶'민중의 호민관 차베스'.
[자료사진 - 통일뉴스]
지난 9월 16일 쿠바 아바나에서 92쪽의 선언문을 발표하고 폐막된 제14차 비동맹 정상회의에 대해 언론들은 일제히 "반미가 지구촌의 새로운 코드로 등장했다"고 대서특필했다.

쿠바의 라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 의장 대행, 이란의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 볼리비아 에보 모랄레스 대통령, 북한의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은 약속이라도 한 듯 연설에서 미국을 맹성토했으며, 그중 가장 선봉장은 단연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대통령이었다.

우리에게는 지구의 대척점에 해당될만큼 먼 곳인 라틴아메리카에서 뭔가 새로운 반미자주의 움직임이 꿈틀대고 있고 그 태풍의 눈에 차베스 대통령이 있다는 사실이 우리에게는 아직은 피부로 잘 와닿지 않는다.

때마침 발간된 『민중의 호민관 차베스』(리처드 고트, 당대, 2006)는 TV를 통해 뭔가 열정적으로 연설하는 모습으로만 비춰지던 차베스 대통령이 과연 어떤 사람이고 라틴아메리카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은 단순히 군사쿠데타에 의해 실각한지 이틀만에 민중의 힘으로 권좌를 다시 찾은 그의 인물평이나 일대기를 그린 것이 아니라 라틴아메리카와 베네수엘라의 식민과 저항의 역사를 총체적으로 보여주고 그가 추진하고 있는 혁명의 성격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또한 미국의 코밑에서 사회주의혁명을 고수하고 있는 쿠바가 라틴아메리카에서 차지하고 있는 역할에 대해 이해하는 데도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

특히 이 책은 황건 사월혁명회 전 상임의장이 직접 번역한 책으로 어려운 사회과학적 용어와 낯선 인물과 지명까지 꼼꼼히 번역했다는 장점이 있다.

라틴아메리카의 민족주의적 좌파운동을 더 이해하고 싶은 독자는 『카스트로의 쿠바』(그레고리 토지안, 홍민표 역, 황매, 2005)도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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