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상봉 (한국청년단체협의회 전 의장)

민족21 통일신보 조선신보 공동기획, 『래일을 위한 오늘에 살지요』, 월간 민족21
                                             『실리 사회주의 현장을 가다』, 월간 민족21
김현경, 『Mr. 김정일, 차 한 잔 하실까요?』, 한얼미디어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휴전선으로 가로막힌 남북을 넘나든다는 것은 불온하기 짝이 없었다. 적어도 2000년 6.15공동선언 발표 이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그래서 남북을 넘다든다는 것은 전위적이었고, 분단 상황에서 이보다 더 불온한 것은 없었다.

그런데 2000년 6월을 경계로 사정은 크게 달라졌다. 남북정상회담 이후 남북을 넘다든다는 일은 전혀 불온하지 않고 전위(前衛)라는 말 그대로 전혀 전위적이지도 않다. 이제 매일 아침저녁으로 개성으로 출퇴근하는 통근버스가 오가고, 금강산 관광을 다녀온 남측 사람들이 120만 명을 넘어섰다.

말 그대로 상전벽해요, 격세지감이다. 이런 현실을 반영하여 최근 남북을 넘나들면서 쓴 세권의 취재기가 출간되었다.

지난 4월 월간 [민족21]이 창간 5주년을 맞아 북의 통일신보와 재일 총련 기관지 조선신보가 공동기획 한 『래일을 위한 오늘에 살지요』(이하 래일을...)와 『실리 사회주의 현장을 가다』(이하 실리 사회주의...)를 출간한데 이어, 6월 초엔 MBC에서 통일전망대를 진행하는 김현경 기자가 『Mr. 김정일, 차 한 잔 하실까요?』(이하 Mr. 김정일)를 선보였다.

앞의 두 권은 통일신보와 조선신보 기자들이 지난 5년간 민족21에 기고한 북의 실상을 다룬 취재기를 묶은 것이다. 뒤의 『Mr. 김정일...』은 저자가 북한전문기자로 그동안 북을 오가면서 느낀 여러 가지 일화나 소회들을 정리한 통일에세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Mr. 김정일...』은 취재기라고 단정할 수 없다. 그럼에도 세권이 담고 있는 한결 같은 메시지는 6.15시대 남북이 서로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통일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해보자는데 있다.

“겨레의 마음을 잇는 다리가 되겠다”

“겨레의 마음을 잇는 다리가 되겠다.” 이 말은 월간 [민족21]지가 2001년 4월 창간의 고고성을 울리며 온 민족 앞에 내놓은 다짐이다.

▶[민족21]의 창간 5주년 기념 단행본『래일을 위한 오늘에 살지요』와 『실리 사회주의
현장을 가다』책 표지.
그 때로부터 5년의 세월이 흐른 2006년 4월. 월간 [민족21]은 창간 5주년을 기념하여 『래일을...』과 『실리 사회주의...』를 내놓았다. 이 두 권의 내용은 북의 통일신보와 재일 총련의 조선신보 기자들이 이북 사회의 이곳저곳을 찾아보고, 북쪽 동포들의 만나 그들의 생활과 고민과 희망을 생생하게 담은 취재기이다. “그동안 민족21은 남쪽 언론사로서는 처음으로 조선신보 평양지국과 민족대단결사 통일신보사에서 보내온 생생한 북의 목소리를 담아 출발부터 남쪽사회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습니다”라는 소개 그 대로 이 두 권의 취재기는 오로지 [민족21]만이 해낼 수 있었던 작업인 셈이다.

1권 『래일을...』은 북측 통일신보 기자들이 직접 자기 사회와 문화, 인민의 살아가는 모습을 취재해 [민족21]에 실었던 기사들을 중심으로 여기에 조선신보와 [민족21]의 취재기사를 더한 것이다.

『래일을...』의 1부에는 북녘의 생활과 문화에는 평양산원에서 333번째 세 쌍둥이를 출산한 임산부 이야기를 시작으로 바둑 신동들의 이야기까지 28편의 취재기가 실려 있다.

평양시민들의 이야기로 채워진 2부에는 리종혁 아태 부위원장 인터뷰를 시작으로 이어진 18편의 취재기가 실려 있다. 남쪽 사람들에게도 너무 낯익은 계순희 선수를 비롯해 KBS 평양노래자랑에 출연하여 입상한 부부 이야기를 비롯하여 2부에서는 평양사람들의 삶의 모습이 펼쳐진다.

2권 『실리 사회주의...』는 일본 조선신보 평양지국 기자들이 발로 뛰어 취재한 북녘의 경제 현장 보고서가 중심을 이룬다. 2001년에 본격적으로 제시된 ‘새로운 사고’와 2002년 7월 1일 사회주의경제개선 조치 이후 변화하고 있는 북녘사회의 이곳저곳을 소개하고 있다.

『실리 사회주의...』 1부에는 6.15공동선언 이후 3백일 동안 평양의 변화상을 담을 글을 시작으로 16편의 취재기가 실려 있다. 여기에는 ‘닭발쪽 튀기 선술집에서 본 2001년 5월의 평양 민심’도 담겨 있고, 강계정신으로 유명한 강계사람들의 생활상도 선보인다.

2부의 내용은 주로 북녘 문화 예술 인사들의 이야기다. 2부에 실린 9편의 취재기에는 지금은 전설이 되어버린 무용가 최승희의 이야기, 지난 2000년 이산가족 상봉 때 절절한 ‘어머니’라는 시로 널리 알려진 오영재 시인의 “나는 평화를 사랑한다 / 허나 구걸하지는 않노라”는 일성이 생생하게 실려 있다. 그리고 실로 놀랍게만 느껴지는 북의 배경대에 관한 이야기까지 우리가 궁금했던 관심사를 풀어주고 있다.

이처럼 『래일을...』과 『실리 사회주의...』는 6.15시대 남북관계가 얼마만큼 변화했는지를 한눈에 보여준다.

그러나 아쉬움 또한 남는다. 그것은 평양사람들의 생활상을 남측기자의 눈으로 보고 듣고 나눈 이야기와 북측기자가 서울시민을 만난 취재기를 보고 싶다는 바람이다. 『래일을...』과『실리 사회주의...』를 읽다보면 [민족21]지가 창간 10주년을 맞는 5년 뒤에는 이런 바람이 충족될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

1994년 7월 전후로부터

한반도를 생활 터전으로 하는 사람들에게 1994년은 각별했다. 그해 6월 전쟁 직전까지 갔던 정세의 긴박함으로부터 남북 정상회담 개최의 합의와 무산, 그리고 뒤 이은 조문파동과 공안정국. 그야말로 1994년의 6월과 7월은 남북관계의 불안정함과 분단의 양극성을 극단적으로 보여 주었다.

그렇다면 그해 북쪽 인민들은 어땠을까. 1994년 7월 8일 김일성 주석의 급서는 북 인민들에게 하늘이 무너지는 것과 진배없었다고 한다.

당시 정세가 마치 널뛰기하듯 극단을 오가는 상황에서 문화방송 김현경 아나운서의 운명 또한 바뀌었다. 1994년 7월 9일 정오 김일성 주석의 급서를 알린 이북 방송은 아나운서 김현경의 운명을 결정적으로 바꾸어 놓고 말았다. 그녀의 진술을 들어보자.

“정상적인 때라면 아나운서인 나는 뉴스에 끼어들 자리가 없었다. 나는 5년 동안 북한 전문프로그램을 진행하며 모아두었던 자료들을 조심스럽게 꺼내 놓았다. 북한 정보에 목마르던 때였다. 김일성의 건강이나 취향, 김정일의 스타일 등 항간의 설을 모아 놓은 보잘 것 없는 자료였지만 때가 때인지라 곧바로 뉴스거리가 될 수 있었다. 그날로 보도국 임시 파견근무를 하게 됐고 두 달 뒤에는 아나운서실에서 아예 보도국 정치2부(북한문제 담당) 기자로 자리를 옮기게 됐다. 복잡한 퍼즐 맞추기에 동참하게 된 것이다. 그러니 김일성 주석의 사망이 내 운명을 바꾼 셈이다.”(본문 21-22쪽)

이리하여 『Mr. 김정일...』의 저자 김현경은 아나운서에서 북한전문기자로 인생 변화의 운명을 맞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10년 넘게 북한전문기자로 일하면서 이 분야에서 알아주는 권위를 쌓게 된 것이다.

말발을 능가하는 글발

▶『Mr. 김정일, 차 한 잔 하실까
요?』 책표지
이번에 발간된 『Mr. 김정일...』은 김현경 기자가 그동안 남북을 넘나들면서 느꼈던 소회를 편안하게 읽을 수 있도록 풀어내었다.

4부로 구성된 『Mr. 김정일...』에는 총 41편의 글이 올망졸망하게 수록되어 있다. 앞서 소개한 아나운서에서 기자로 전직하게 된 ‘우연한 계기’로부터, 1998년 11월 금강산관광이 열리던 시기의 후일담, 그리고 가까이는 지난해 8.15통일대축전에 참가한 북측 대표단이 한국전쟁 이후 55년 만에 국립 현충원을 찾아 10초간 참배하기까지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김현경식 통일이야기’라 할만한 41편의 내용에는 남북으로, 남남으로 막힘이 없다. 『Mr. 김정일...』을 읽고 난 후의 소감 한마디는 ‘말발을 능가하는 글발’이다. 텔레비전 아나운서와 기자라는 말로 먹고 사는 것을 업으로 하는 저자에게 ‘말발을 능가하는 글발’이라는 표현은 욕이 될 수 있다. 그럼에도 『Mr. 김정일...』을 읽어 본 사람들에게 ‘말발을 능가하는 글발’이라는 표현은 전혀 낯설지가 않을 것이다.

흔히 경험하는 바이지만 남북문제를 다루다보면 자칫 양비론에 빠지기 쉽다. 그러나 [Mr. 김정일...』은 그 흔한 양비론에 빠지고 있지 않다. 자칫 빠지기 쉬운 양비론으로부터 『Mr. 김정일...』이 자유로운 이유는 저자가 두 아이의 엄마라는 입장에서 남북문제를 바라보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엄마의 눈으로 그려낸 통일의 상은 어떤 것일까. 그 한 대목을 옮겨보는 것으로 『Mr. 김정일...』에 대한 소개를 마친다.

“이런 상상을 한 번 해보자. 군사분계선이 없어져 사람들은 남북을 자유롭게 왕래한다. 이산가족을 만날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누구나 원하는 곳으로 여행과 이사를 하고 학교에 다니며 직장을 구할 수 있다. 또 같은 화폐를 사용하기 때문에 일부러 환전할 필요가 없다. 전쟁 위협이 사라져 최소한의 군대만 유지한다. 특정한 이데올로기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의 사상과 신념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게 된다. 이쯤 되면 통일 비슷하지 않을까?”(엄마, 우리 통일됐어? 본문 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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