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농민 시위대에 대한 홍콩 경찰의 연행이 모두 끝난 18일 저녁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회원들의 숙소인 ‘우카이샤 유스호스텔’에는 10여명의 농민이 남아 연행된 동료들의 짐을 꾸리고 있었다. 농민들은 “동지들을 남겨두고 어떻게 돌아갈 수 있느냐”고 말끝을 흐렸다.

숙소에 남아있는 농민들은 홍콩 경찰이 시위대를 전원 연행하기 전, 집회 장소를 미리 빠져 나온 농민 또는 부상 치료를 받다가 재집결하지 못한 농민들이었다. 다리를 절룩이는 농민, 깨진 머리에 붕대를 감은 농민도 있었다. 당초 이날 오전에는 홍콩 ‘反 WTO 원정단’의 ‘투쟁승리 보고대회’가 예정돼 있었다. ‘투쟁을 승리로 평가’하며 한 판 잔치를 벌여야할 농민들의 숙소에는 깊은 침묵만이 감돌았다.

‘삼보일배까지 좋았는데 과격시위로 망쳤다?’, ‘한국 농민들의 본색이 드러났다?’ 정말 농민들은 여론의 ‘불화살’이 자신들에게 돌아갈 줄 몰랐을까. 이미 그들은 2명의 농민을 하늘로 보낸 터였다. 농민들의 과격시위만을 부각시키는 국내 보수 언론에 그만큼 당하고도 모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번 홍콩 6차 WTO 각료회의의 의제와 농민 지도부의 대응 방향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전농 박민웅 사무총장은 “계량화된 질문을 하지 말라”고 답했다. 이어 박 총장은 농민운동의 장기적인 안목에서 홍콩 투쟁을 준비했다고 말했다. 어차피 이번 홍콩 각료회의는 별다른 소득 없이 끝나리라는 것은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 정책에 철저히 종속돼 국내 농업이 개방농정의 파고를 맞이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전농은 향후 농민운동의 비젼을 ‘반세계화 운동’에서 찾겠다는 것이다. 박 총장의 말처럼, 장기적인 안목에서 이번 홍콩 투쟁은 향후 농민운동에 엄청난 파급효과를 미칠 것으로 보인다. 각 지역 농민회의 핵심 일꾼으로 이뤄졌던 이번 원정 투쟁단이 다시 각 지역으로 돌아가 홍콩에서 경험한 반세계화 운동의 씨를 뿌릴 수 있다는 말이다. 해외라고는 처음인, 불행하게도 원정 데모가 처음이었던 농민이 어느덧 반세계화 운동의 투사로 변모한 모습을 기자는 볼 수 있었다.

17일 컨벤션센터 앞에서 벌어진 격렬한 시위 끝에 홍콩 경찰이 농민 지도부에 자진 해산 기회를 줬다고 전해진다. 홍콩 경찰은 ‘자진 해산하면 버스로 숙소까지 태워다 주겠다’는 의사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끝까지 투쟁을 사수하겠다’는 각 지역 일선 농민회의 의지를 누구도 꺽지 못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한 농민들의 처절한 분노가 바로 홍콩 투쟁이었다.

그 누가 만리타국에서 경찰의 곤봉에 머리가 깨져가면서, 근처에만 있어도 눈물이 펑펑 쏟아지는 최루액에 범벅이 되면서, 비난 여론을 감수하면서까지 강경 시위를 벌이고 싶어했겠는가. 홍콩 경찰에 전원 연행이 되면서까지 국내외에 알리고 싶었던 ‘Down Down WTO'와 'WTO Kills Farmers'라는 구호를 이제는 귀담아 들어야 한다.

한편, 이번 농민들의 홍콩 투쟁은 홍콩 시민에게도 자신들을 되돌아보는 각성과 성찰의 계기였다. 일부 언론의 보도처럼 농민들의 투쟁은 홍콩 시민들에게 관광상품이자 흥밋거리가 아니었다. 자발적으로 시위대열에 합류한 홍콩 시민들은 그들의 민주주의와 빈부격차, 정경유착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그들은 의지를 어떻게 표현해내야 하는가에 대해 한국 농민들에게 감동을 받았다. 또 개개인으로 모인 홍콩 시민들은 조직의 필요함을 절감하고 언젠가 조직을 만들어 그들이 이뤄야할 민주주의를 이뤄낼 것이다.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