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년 4월 9일은 박정희 독재정권이 대법원 확정 판결 18시간만에 인혁당 사건 관련자 8명에 대해 사형을 집행함으로써 국제사회로부터 '사법사상 암흑의 날'로 지탄받은 날이다.

7일 '국가정보원 과거사건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국정원과거사위, 위원장 오충일) 발표에 따르면, 인혁당사건 처리와 관련해 박 전대통령은 1975년 2월21일 문화공보부 순시중 "합법적인 정부를 뒤집어엎으려 했다면 내란음모죄가 되고 내란음모죄는 어느 나라 법에서든지 극형에 처하도록 되어 있다"고 신속하고도 강력한 처벌을 독려했다. 이러한 자료에 의거, 국정원과거사위는 '18시간만의 처형'은 사실상 박 전대통령의 의중을 반영한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엄혹한 독재정권 치하를 거친 나라들에게 있어 과거청산은 주요 인권과제중 하나다. 지난 시대의 국가폭력을 파헤치고 필요시 가해자 처벌을 포함해 구제조치를 취함으로써 동일한 침해행위를 예방하기 위함이다.

국가폭력중에서도 사찰기관의 자기고백과 진실규명은 우선순위에 해당하는 과제다. 최근 국가정보원이 'KAL858폭파사건' 등 7개를 우선 조사대상으로 삼아 하나씩 사건의 전모를 고백하고 있다. 이를 통해 김형욱 전중앙정보부장 살해, 경향신문 및 부일장학회 강탈사건에 이어 인혁당 및 민청학련 사건 배후에는 항상 박정희 전대통령이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국정원과거사위 발표에 대해,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모함이라거나 정치적 의도를 문제삼아 반발하고 있다. 심지어 "우리 역사를 왜곡해 함부로 발표하는 것 자체가 과거사가 될 것"이라며 "돈 들여 과거사위원회를 만들었는데 왜 법적 근거도 없이 별도로 하느냐"고 강변하기도 했다.

박 대표는 박정희 전대통령의 딸로서 '박정희'를 정치적 자산으로 삼고 있다. 그러므로 그 승계가 타당하려면 자산과 부채를 함께 이어받아야 하는 것은 불문가지다. 박정희 전대통령의 부채란 기나긴 장기집권기간 사찰기구를 동원해 저지른 수많은 인권침해 행위들이다.

그 침해행위의 일단이 이제야 드러나고 있으니 박 대표는 박 전대통령이 앞장섰거나 또는 그 배후에서 저지른 각종 인권침해 행위들에 대해 겸허히 인정하고 반성하는 태도를 보임이 옳을 것이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박 대표는 박 전대통령이 저지른 인권유린으로 피해를 입은 생존자들과 그 유족들에게 사과 한마디 건네기는 커녕 '북한인권'이 문제라고 엇서고 있다.

8일 오전 한나라당 최고위원 회의에서는 "북한 인권문제에 대한 정부의 태도도 문제가 심각하다"면서 "전 세계적으로 지금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북한인권국제대회를 이 정부는 외면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날 저녁 이른바 '북한인권국제대회' 환영만찬에서는 "인류 문명이 진보해온 역사는 곧 인권을 개선하고 쟁취해 온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라며 "이번 국제대회가 북한 주민들에게 희망의 불씨가 되어, 북한의 동포들이 자유와 인권을 함께 누리고 호흡할 수 있는 날이 하루속히 다가올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고 설파했다.

나아가 "한나라당도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앞으로 북한 주민의 인권 개선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다"고 다짐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박 대표가 말한 "인류문명이 진보해온 역사"에는 박 전대통령이 '저지른' 인권침해를 기록하거나 구제하는 일은 빠져있다. 그러면서도 북한의 인권침해 '예방'에 참여정부가 나서지 않는다고 공격하는 용감성을 보인다. 그 과감한 이중잣대가 부럽다.

박 대표의 사고 구조에서는 이런 것들이 자연스러운 지 몰라도 구체적인 가해행위와 막연한 개연성에 입각한 부작위 행위를 같은 항렬에 놓고 비난하는 것은 인류 '보편'적 상식에는 맞지 않는다. 다른 경우는 모르겠지만, 인권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말하면서까지 이래서야 되겠는가.

인권운동가들은 인권문제를 제기하는 주체에게 자격요건을 부과한다. 그 일차적 덕목이 바로 자기반성적 접근이다. 탓하려는 상대방이 저지른 행위를 이전에 자신이 행한 적이 없는지 먼저 살피고 시정함으로써 상대방에게도 개선을 요구할 도덕적 근거를 확보할 수 있는 까닭이다.

따라서, '인권'문제에 관한한 박 대표에 지금 요구되는 것은 박 전대통령이 저지른 숱한 인권유린행위들에 대한 끊임없는 반성과 고백이다. 그런 연후에 '북한인권'을 말하든 정부를 탓하든 할 일이다.

그렇지 않고 지금처럼 균형을 잃은 처신을 계속 유지한다면 그에게 돌아갈 말은 한 가지밖에 없다. "너나 잘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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