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5민족대축전’을 취재하면서 기억에 남았던 일은 뭐니뭐니해도 소설 ‘황진이’의 작가 홍석중 선생과의 만남이다.

서경덕과 황진이의 사랑이 아니라 천민 ‘놈이’와 황진이의 신분을 뛰어넘는 사랑, 그리고 당당하게 운명과 맞서 싸운 강한 여성 황진이. 홍석중 선생이 만들어낸 새로운 황진이에게 매료됐듯이 취재 내내 간간이 홍석중 선생과 마주치면서 그에게도 단숨에 매료됐다. 북측 노래 ‘심장에 남는 사람’의 가사처럼 ‘잠깐 만나도 심장 속에 남는 이’였다고 할까?

 

▶소설 '황진이'의 작가 홍석중 선생(왼쪽 두번째)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남소연기자]

홍석중 선생과는 8.15민족대축전 둘째날(15일) 오후,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남북체육오락경기’에서 처음 마주쳤다. 사진으로 얼굴을 익혔으니 언제 어디서 보든 얼굴을 알아볼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을 갖고 있었지만 15일자 기사에 적은 바대로 우연히 인터뷰하게 된 인물이 알고 보니 바로 홍석중 선생이었다.

선수들이 체육오락경기를 하느냐 빠져나간 자리에 혼자 앉아 온 좌석을 세를 놓은 듯 양손에 풍선을 잡고 열렬히 함성을 외치던 홍 선생. 상당히 ‘절도’ 있게 응원하는 북측대표단과는 달리 좋아 어쩔 줄 모르겠다는 표정이 얼굴에 그대로 다 드러나고 검은 테 안경을 제외하곤 도무지 이른바 ‘인텔리’의 흔적을 엿볼 수 없어, ‘웬 시골할아버지 같이 생긴 해외대표단이 북측 대표단 자리에 앉아있나’했다.

“선생님, 소설 ‘황진이’의 주인공 황진이를 새롭게 해석하셨던데요”
“어떻게? 기자선생은 소설 속 황진이가 어떤데?”
“에...진취적이고, 당당하고 운명과 맞서 싸우는 매력이 느껴지는 여성이요”
“그래, 속된 말로 난 그런 여자가 좋아. 왜? 이것도 쓰려고? 에이.. 적지마”

손을 절래절래 흔드는 모습에서 장난기가 느껴진다. 홍석중 선생의 ‘장난’은 그 뒤에도 계속됐다.
“기자선생, 아직 결혼 안 했지? 북에 좋은 남자 있으면 점 지어 줄게”, 그 다음날 만났을 때는 “남자친구 있어? 데려다가 며느리 삼았으면 좋겠구만”, 마지막날 폐막식이 열린 고양축구경기장에서 만났을 때는 “내가 젊었으면 따라다녔을 텐데~”.

솔직히 홍석중 선생과 깊이 있는 대화는 나눠보지 못했다. ‘몇 살이냐. 아이고, 그렇게 많아? 열 아홉인 줄 알았더만. 애인은 있어?’, ‘그럼 선생님 아드님은 나이가 어떻게 되시나요?’

‘호구조사’뒤에 소감 등을 묻는 질문을 던지려 하면 손을 내저으며 “아이고, 이 기자와는 개인적으로 친해지려 해도 자꾸 취재만 하니”라고 말하며 어린 손녀 어르듯 한다. 공항 환송 식에서는 기자가 북측 대표단들의 멘트를 딸 작정으로 대표단을 유심히 바라보자 “어때? 한 명 낚았어?”라고 장난스럽게 물음을 던진다.

비록 엠프 소리가 쩌렁저렁 울리는 공간에서 바락바락 소리지르다시피 목소리를 높여 간간이 대화를 나누고 스쳐 지나가며 인사를 나눴을 뿐이지만 지금까지 남북공동행사 취재에서 만난 북측 대표단들에게는 느낄 수 없었던 애틋함을 느꼈다.

 

▶체육오락경기에서 '우리는 하나'라는 현수막 아래 몸도 마음도 하나가 되어 춤추는
사람들.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김규종기자]

공항에 환송을 나간 시민이 “제 2의 이산가족을 보내는 마음”이라고 말했듯이 기자 마음도 그러했다. 북측동포가 아닌 한 명의 ‘취재원’에게 형식적인 질문을 던지고 미리 준비해온 듯 딱 부러지는 대답(한결같이 똑같은 답변에 아연실색한 적이 많다)만을 들어온 기자로선 처음으로 마음과 마음이 맞부딪치는 전율을 느꼈다.

마찬가지로 기사에 적힌 공식멘트만을 보아온 독자들을 잡고 한 분 한 분께 말해주고 싶다. “핏줄이에요. 민족이고 내 동포예요”

“남측 사람들 입맛이 일본 사람들 닮아 가는 것 같아”

남북공동만찬에 올라온 듯도 보도 못한 음식. 샥스핀, 제비집 찜은 보수언론들에게 국민들의 세금으로 북측 인사들에게 호화판 잔치를 제공한다는 빌미를 제공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 7월 16일 정동영 통일부 장관의 김정일 국방위원장 예방 때 오찬자리에서 곰발바닥 통찜이 식탁에 올랐듯이 귀한 손님을 정성을 다해 대접하고자 하는 마음은 남북 모두 매한가지가 아닌가.

아무튼, ‘8.15민족대축전’ 기간 중 딱 한번 북측 대표단과 함께 워커힐 호텔 비스타 홀에서 식사할 기회가 있었는데, 정성은 둘째치고 음식 맛을 너무 남측 사람들에게 맞춘 것이 아닌가하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불고기는 너무 달고 소세지는 너무 짰다. 배가 몹시 고팠음에도 불구하고 같이 식사를 했던 기자들도 반찬에 손이 잘 가지 않던지 김치와 장아찌, 된장국만을 먹곤 했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다 최영남 평양 고려호텔 총 지배인을 만나 “음식이 너무 달죠”라고 말을 건넸더니 최 지배인은 “기자선생한테도 음식이 이렇게 다니 북측 대표단은 오죽하겠습니까”라고 고개를 절래절래 흔든다.

함께 취재했던 인터넷 매체 기자가 옆에서 “북측 대표단이 남측 사람들의 입맛이 일본사람들 입맛으로 변하고 있다고 아쉬워했다”라고 귀띔해 준다.

호텔이야 워낙 외부 손님들을 많이 맞다 보니 이른바 ‘국제규격’에 맞춰 음식을 할 수밖에 없었겠지만 점점 왜색으로, 또는 서구화되어가고 남측 사람들의 입맛을 꼬집은 북측 대표단의 한 마디가 마음에 오래도록 씁쓸하게 남았다.

여자축구대표팀 김봉일 감독과의 만남

 

▶북측여자축구선수단.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김철수기자]

17일 오전, 태양이 집어삼킬 듯 내리쬐던 날 남.북.해외 대표단은 행주산성을 오르며 땀을 한 바가지 쏟아야만 했다. 더위는 매일 뙤악볕 밑에서 훈련을 하는 북측축구팀이라고 해서 비켜 가지는 않았다.

그중 북측축구대표팀 김봉일 감독은 유난히 더위를 탔던 것으로 기억된다. 운동하는 분이 웬 더위를 그리 많이 타냐는 질문에 “원래 시원한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람보다 밖에서 운동하는 사람들이 땀도 많이 흘린다”며 딴청을 피운다.

감독이라고 하면 경기 중 인상을 팍팍 쓰며 선수들을 지시하는 모습이 먼저 떠오르지만 김봉일 감독을 생각하면 덥다고 선수들과 가위바위보를 해서 지는 사람이 부채질하기 놀이를 하며 오누이처럼 어울리던 해맑은 모습이 떠오른다.

장난스럽게 부채질하는 시늉만 하던 여자축구선수에게 “야, 야 너 정말~!”하며 애교 있게 으름장을 놓던 김봉일 감독. 김 감독은 80년대 북측축구대표팀에서 선수생활을 하면서 ‘문지기(골키퍼)’를 맡았었다.

“아니, 국가대표 선수였어요?”
“그럼 남쪽에서는 축구선수 아닌 사람이 감독도 맡나요?”

질문을 던져놓고도 ‘참, 바보 같은 질문이군’하고 자책하는 동안 김봉일 감독은 맘 상했다는 듯 샐쭉하니 돌아앉는다.

“우와~국가대표! 무슨 경기요? 기록사진 보면 찾을 수 있겠네요” 감탄사를 최대한 동원하며 다시 말을 걸자 이번에는 얼굴이 발그레해져 웃기만 한다.

“이번에는 누가 이기냐, 누가 지냐, 누가 골을 많이 넣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었으며 북과 남 민족이 마음이 합쳐진 경기”를 뛰었다는 김봉일 감독은 보라색 색안경을 쓴 멋쟁이 차림으로 삼성카메라를 들고 다니던 김창규 감독과 함께 기자의 취재수첩에 ‘오라비 같은 북측 사람들’로 기록됐다.

8월, '남북 모두가 통일로 쏙! 빠져든 달'

 

▶손맞잡은 6.15공동위 위원장. (왼쪽부터 남측 백낙청, 북 안경호, 해외 곽동의. 문동환)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권우성기자]

8월 2일부터 전국을 순회하며 통일의 열기를 전한 ‘백두한라민족통일대행진단’을 동행취재하며 예상외로 뜨거운 지역 주민들의 열기에 한번 놀랐더랬다. 그리고 통일을 기원하는 남.북.해외의 온 민족이 모인 ‘8.15민족대축전’개.폐막식에서 한반도기를 들고 모여든 많은 인파에 다시 한번 놀랐다.

경찰서가 경기장 정문 앞에 세워놓은 ‘태극기. 인공기 반입을 금지합니다’는 팻말은 무용지물이 됐고 전국에서 몰려든 인파가 한반도기를 들고 ‘조국통일’을 외치는 동안 노인들은 북측 사람들의 모습에서 고향을 보며 눈시울이 젖어들었다.

“경기에서는 북남 22명의 선수들이 뛰었지만 전 경기를 온 민족과 함께 달린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북측여자축구대표단 주장 리금숙(27세)선수의 말처럼 온 민족이 넘어지면 일으켜 세우고 입을 모아 ‘우리민족끼리’를 외치는 화합의 장으로 쏙! 빠져들었다.

북측 대표단은 소감을 묻는 말에 모두들 ‘통일은 됐어!’라고 말했다. 통일연대 한상렬 상임대표의장의 말처럼 ‘남북이 만나 뜨겁게 회합.통신하고 서로를 고무 찬양한’ 8월. 꿈결같은 8.15민족대축전이 막을 내린 지금 ‘통일은 됐어’라는 의미를 다시 한번 곰씹어 본다.

독자여러분, “통일, 정말 됐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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