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미군기지 확장반대와 한반도 평화에 대한 전국민의 의지를 유감없이 보여준 '7.10 평화대행진'이 끝났다. 이날 하이라이트는 뭐니뭐니해도 황새울 들판 논두렁을 따라 끝없이 이어진 '인간띠 잇기' 행렬이었다. 인간띠 잇기에서도 하이라이트가 있었다면?

 

그건 아마도 시위대와 경찰과 격렬한 충돌을 빚은 뒤, 잠시 양측이 가진 '소강 상태'가 아닌가 싶다. 논두렁과 도랑, 비좁은 도로가 만들어낸 지형으로 인해 경찰 병력 속에 시위대가 섞여 있었고 시위대 속에서도 경찰 병력이 섞여 있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진흙인형'이 되버린 경찰병력과 질척한 논두렁 어디엔가 신발을 꽂아놓은 '맨발의 청춘'들이 서로 한숨을 돌리는 순간이었다.

▶전투경찰과 시위대 사이에 격렬한 공방으로 쌍방은 진흙 투성이가 됐다.
[사진 - 통일뉴스 김규종기자]
물론 이 순간에도 양측이 욕설을 퍼부으며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었지만 이 모습이 전부는 아니었다. 시위대에 의해 고립당한 경찰 2명이 "실례하겠습니다"라고 길을 비켜달라고 요청하자 시위대가 길을 열어줬을 뿐만 아니라 한 여성 참가자는 손수건으로 이들의 땀을 닦아주는 모습이 목격됐다.

경찰의 과잉진압과 일부 시위대의 과잉대응으로 양측이 다수의 부상자가 발생되는 상황에서, 실신해 있는 경찰에게 다가가 시위대와 경찰 지휘관이 함께 손발을 주무르며 응급처치를 하는 모습도 보였다. 잠시의 휴식시간을 이용해 일부 참가자들은 양측의 격렬한 공방의 와중에 엉망이 돼 버린 논에 들어가 쓰러져 있는 벼를 일으켜 세우는 아름다운 장면도 있었다.

부상 경찰에게 다가가 "거봐 뭐랬어. 형들 말 잘 들으라고 했잖아"라고 대화를 건넨 시위대의 속마음은 그리 편하지 않을 것 같았다. 기자에게도 방패를 들이밀며 통행을 막은 경찰의 흥분된 얼굴이 차분한 말 한마디로 순식간에 무안한 표정으로 돌변한 순간이 있었다. 진흙이 잔뜩 묻어 있었던 이 경찰의 '묘한' 표정 변화를 당분간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부상을 입고 쓰러진 전경이 들것에 실려가자 시위대가 들것을 받아 후송을 도와주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규종기자]
이날 '7.10 평화대행진'에 이어 진행된 313차 촛불집회에서 팽성읍 도두 2리 이상렬 이장은 "많은 분들이 상처를 입고 병원에 입원했다는 뉴스를 들었다. 전경도 우리 새끼다. 학생과 단체에서 다친 사람은 우리를 위한 힘찬 싸움으로 다친 것이다. 쌍방이 좋게 할 수 있는 일을 현 정부의 일방적인 행태가 이렇게 만든 것이다. 우리끼리 싸우고 미국 개XX들은 쳐다보고 미소짓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고 개탄했다.

이날 '7.10 평화대행진'은 경찰의 곤봉과 방패, 시위대의 각목만이 난무했던 것은 아니었다. 진정 이날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생명의 땅' 황새울 들녘을 밟는 한 걸음 한 걸음마다 새겨진 한반도 평화와 전쟁반대의 의지가 아닐까 싶다. 이 의지는 시위대의 얼굴을 짓이겨놓은 경찰에게도, 각목이 방패를 넘어 경찰의 헬맷과 가슴 언저리를 언뜻언뜻 친다는 느낌을 받았던 시위대에게도 똑같을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미군기지 앞 투쟁시마다 반복되는 경찰의 과잉진압이 다분히 미국측을 의식한 것일 수는 있겠지만 더 이상 우리 젊은 청년들간의 불필요한 마찰의 원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 물론 주최측의 통제를 넘어서는 일부 시위대의 불필요한 돌출행동도 분노의 심정은 십분 이해되지만 자제되어야 한다. 보다 근원적으로 언제까지 미군의 존재로 인해 우리 내부의 갈등이 지속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진지한 물음도 필요할 것이다.

양측 간에 격렬한 공방이 오가고 수많은 부상자가 속출한 7.10평화대행진이 피상적으로는 폭력이 난무한 난장판처럼 잘못 비춰질 수 있겠지만 실제 현장을 같이 누빈 기자에게는 평화를 향한 시위대의 뜨겁고 순수한 열정과 투쟁속에서도 전경과 시위대를 넘어선 아름다운 인간애의 꽃을 발견할 수 있는 감동의 현장으로 기억될 것이다. 투쟁속에서도 꽃은 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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