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발전위 손호철 위원이 '김형욱 사건' 중간조사 발표를 통해 '김형욱은 김재규
지시-이상열 주도로 살해됐다'는 요지를 밝히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규종기자]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국정원발전위, 위원장 오충일) 손호철 위원은 "김형욱은 김재규 당시 중정부장의 지시에 의거, 중정 주불(佛) 거점이던 이상열 주도로 파리 현지에서 살해됐다"고 26일 밝혔다. 다만, "박정희 전 대통령이 김재규 부장에게 살해 지시를 했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추가확인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이날 오전 11시, 서울 내곡동 국가정보원내 국가정보관 3층 강당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손호철 위원은 중간 조사결과 발표를 통해, 살해에 직접 참가한 이들은 "이상열 공사와 중정 직원 연수생 신현진 등과 이들이 고용한 제3국인들이다"고 설명했다.

▶국가정보원내 국가정보관 3층에서 열린 기자회견장 전경.
[사진 - 통일뉴스 김규종기자]
▶기자들이 흥미롭게 '중간보고서'를 읽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규종기자]
손 위원은 이같은 판단의 근거로 신현진 씨의 진술을 인용해, "79년 9월말 이상열 공사가 중정 연수생 신현진에게 김형욱 살해 임무를 부여하면서 김재규 부장의 지시임을 분명히 밝힌 점", "사건 후인 그해 10월 13일경 신현진이 귀국하여 김재규 부장에게 사건 처리결과를 보고하자 김 부장이 크게 칭찬, 격려한 점"을 들었다.

손위원은 또한 "10.26 당시 중정 차장보였던 김일곤 씨(가명)는, 79년 10월 1일 이상열 공사가 비밀리에 귀국하여 김재규 부장을 두 차례 만난 점을 확인"했으며, "조 아무개 당시 중정 유럽담당 과장이 사건발생 직후인 10월 18일 이상열 공사가 은밀히 귀국해 김재규 부장에게 (이 사건을) 보고하고 다음날 파리로 귀국했다는 사실을 국정원 존안문서에 진술했다"고 밝혔다.

손 위원은 중정 차원에서 김형욱 전 부장을 살해한 동기에 대해, 김형욱 씨가 77년 6월 2일 뉴욕타임즈 기자회견과 같은 달 미 하원 프레이저 청문회 등에 출석해 박정희 정부의 비리를 잇달아 폭로하고, 특히 "김경재를 통해 박정희 정부의 비리를 폭로하는 회고록 집필을 추진한 것"을 들었다.

▶김만복(왼쪽) 위원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관여 여부에 대해 "확인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사진 - 통일뉴스 김규종기자]
박정희 전 대통령의 관여 여부에 대해 김만복 위원(국정원측)은 "박 전 대통령은 김형욱의 반국가행위 처리문제는 깊이 관여했고, 민병권 무임소장관에게 미국으로 가 김형욱 회고록 출판 저지 임무를 부여했으나 직접 살해 지시를 내렸는지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손호철 위원은 살해준비 과정과 관련해 "김재규 부장은 79년 9월말 이전 이상열 공사에게 김형욱 살해를 지시한 것으로 추정되며 이상열 공사가 79년 10월 1일경 귀국시 김재규 부장에게 김형욱 살해 계획을 보고하고 소련제 소음 권총과 독침을 수령했을 것으로" 판단했다.

사체 처리 과정에 대해서는 손호철 위원은 "사건 당사자들은 프랑스 근교 숲에 낙엽이 쌓인 곳에 사체를 버렸다고 진술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김만복 위원은 "본인들은 낙엽이 많아 파 묻을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고 '치밀한 살해 계획에 비해 허술한 사체처리'라는 의문을 일축했다. "시기가 낙엽이 많았고 프랑스 근교 작은 숲은 사람이 잘 다니지 않는 곳이라 사건 당사자들은 안전하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손호철 위원은 중간 조사발표가 주로 신현진의 진술에 의존한 것을 의식해 "국정원내 존안자료와 기타 관련기관의 자료, 당시 주불 거점 요원과 국정원 지휘 계선에 있던 관련자들에 대한 면담조사 등 정황조사를 통해 확인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손 위원은 "확실시 된다"는 표현까지 써가며 발표 내용에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 다만, 사체 유기 장소와 관련해서는 "신현진이 진술을 꺼리고 있어 추가 확인이 필요하다"면서 "이후 사건가담자들로 확인된 이상열, 신현진, 이만수 등을 계속 설득해 사체 유기 장소를 확인할 계획이다"라고 밝혔다.

또한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의 유골을 수습해 유가족들에게 전달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생각"이라며, "이 사건의 완전한 진실 규명을 위해 살해지시 수령, 가담자 물색 및 모의, 권총.독침 등 사전준비, 사후 처리와 사건보고 등 사건 내용을 소상히 알고 있을 이상열 공사의 진솔한 고백을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김형욱 사건을 취재해 공개했던 시사저널 정희상 기자. [사진 - 통일뉴스 김규종기자]
특히 시사저널에 '양계장 살해' 제보를 한 전직 정보요원 이 아무개 씨와 관련해, 김만복 위원은 "국정원 출신은 맞다"고 확인했다. 다만 "시사저널 보도는 면밀히 검토했으나 이 씨를 만나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이 씨 진술의 신빙성과 관련해서는 "국정원 관여 부분은 빼고 박정희 전 대통령과 만났다는 진술 등은 신빙성이 없고 김형욱과 관련해 시중에 여러 설이 있었는데 이 사람들이 퍼뜨린 게 아닌가하는 생각도 들었다"고 말했다.

▶기자회견후 오충일(오른쪽) 위원장에게  질문공세가 쏟아졌다.
[사진 - 통일뉴스 김규종기자]
오충일 위원장은 김형욱 사건을 중간 발표하게 된데 대해 "조사진척 상황이 비교적 빠르고, 특히 김형욱 실종사건과 관련하여 최근 여러 부적절한 논란이 야기되고 국민들 사이에 또 다른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실정"을 들었다.

전반적 조사진행 상황과 관련해 "우선조사대상 7건에 대해 사건별 소위원회를 구성하여 매주 1회 사건조사 방향 및 중간 점검 등 조사활동을 진행하고 있으며, 구체적으로는 국정원 보유자료를 비롯해 국방부, 검.경찰, 국가기록원 등으로부터 관련자료를 넘겨 받아 문서 조사와 병행해 일부 면담조사도 실시중"이라고 설명했다.

기타 사건의 진척 상황과 관련해서는 부일장학회 강제헌납 사건의 경우, "기부승낙서 등 일부 문건의 진위 여부에 대해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문서감정 의뢰를 하였고", 공안사건의 경우 "북한과 연계성 여부 및 조직의 실체가 있었는지 등에 대해 다각적인 조사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안병욱(오른쪽) 위원이 KAL858기 사건 조사상황에 대해 밝히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규종기자]
국정원 발전위 간사인 안병욱 위원은 KAL858기 조사 상황에 대해서 "KAL 사건은 원체 복잡해서 지금 얘기할 수 있는 것은 없다"면서 "김현희 면담 조사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며, "내년쯤 돼야 조사 결과가 나올 것"으로 예측했다.

안 위원은 또한 부일장학회사건의 경우, "헌납 문서에 가필 흔적이 있고 필체가 세 사람의 것으로 드러나는 등 상당한 진척이 이루어지고 있다"면서 "곧 조사결과를 정리, 발표할 것"이라고 밝혔다

일부 언론에 의해 조사가 중단된 것으로 보도된 '김대중납치사건'에 대해서는 "중단되지 않았다"고 일축했다. 하지만 "일본과의 미묘한 외교적 문제가 있어 신중을 기하고 있다"고 밝혀 진실 규명에 난관이 있음을 시인했다.

국정원발전위는 지난 2월 3일 기자회견을 갖고 부일장학회 강제헌납 및 경향신문 강제매각 사건, 1.2차 인혁당 및 민청학련 사건, 동백림사건, 김대중납치사건,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 실종사건, KAL858기 폭파사건, 남한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사건 등 7건을 우선조사대상으로 선정, 발표한 바 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오충일 위원장을 비롯해, 안병욱 위원(간사), 김만복 위원(국정원측 간사), 곽한왕 위원, 이창호 위원, 문장식 위원, 손호철 위원, 박용일 위원, 한홍구 위원 등이 참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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