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철 (서울대 사회학과 박사과정수료)


▶김정일의 통일전략
저자: 김명철 출판사: 살림터


역사적인 6.15 공동선언을 계기로 남과 북의 화해와 협력의 분위기가 드높아지고 있다. 20세기의 전반기를 식민지로 보내고, 그 후반기를 다시 외세의 개입으로 인한 분단으로 고통받았던 우리 민족으로 보자면, 21세기는 반드시 통일과 자주의 새 세기여야 함은 필연이자, 우리가 반드시 성취해야 할 민족사적 과업이겠다. 뒤돌아보면, 지난 50년간은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을 성취하기 위한 우리 민족의 총력전의 세월이자, 수많은 사람들이 온 몸으로 통일을 부르짖으며 이 땅에서 산화해간 아픔과 고통에 정면으로 마주했던 세월이었다. 그러기에 우리는 지난 세월을 감히 통일의 역사로 불러도 달리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이제, 6.15 공동선언을 계기로 우리는 민족의 자주와 통일을 향한 거보(巨步)를 내 딛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시점에서 지난 세월보다도 더한 열정과 함께 냉철한 이성의 지혜를 가져야 한다. 42.195km를 뛰어야 할 마라톤에 비유한다면 이제 우리는 겨우 반환점에 다다른 것에 불과하다. 여전히, 주변 강대국들의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은 사라지지 않고 있으며, 우리 내부의 기득권 세력과 냉전 세력의 발호도 안심할 수 없는 지경에 있다. 눈을 크게 뜨고 현실의 복잡하고 다난(多難)한 문제들을 슬기롭게 헤쳐나갈 수 있어야 하겠다.

6.15 공동 선언을 계기로 북한 및 통일관련 서적들이 출판 러쉬를 이루고 있다. 여전히 냉전 문화의 포로에 사로잡혀 꺼져가는 촛불을 살려보려고 바둥대는 보수세력의 심정을 표현한 책도 있으며, 자주와 통일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던져주는 책들도 나오고 있다. 이런 가운데서 평양회담의 북측 주인공인 김정일에 대한 여러 가지의 책들도 출판되어 세인의 관심을 끌고 있다. 대표적으로 정창현의 『곁에서 본 김정일』이나, 이주철의 『김정일의 생각읽기』, 그리고 서대숙 선생의 『현대 북한의 지도자』등이 특히 우리의 관심을 끌고 있다. 여기에 통일문제와 관련하여 북한의 전략을 소개하고 김정일의 통일관을 담고 있는 책이 출판되었다. 그것이 바로 이 서평에서 소개할 김명철 선생(윤영무 옮김)의 『김정일의 통일전략』이다. 이 책은 김명철 선생이 지난 1998년 출간한 『김정일 조선통일의 날』의 속편으로서 1998년의 책이 그러했던 것처럼 많은 논쟁점들을 담고 있는 반면에, 북한의 현실과 미국, 일본 등과의 관계, 논란이 되고 있는 북한 핵, 미사일, 서해교전 등의 소재를 통해 김정일의 전쟁관과 미국에 대한 북한의 태도 등을 논하고 있다. 이 책은 그간 우리 사회에서 출간된 책과는 사뭇 그 분위기가 다르다. 책에 전반적으로 흐르는 분위기는 북의 완벽한 방위태세에 대한 낙관, 북한의 위력에 대한 확신, 철저한 반미, 남한의 무능력과 결과적인 북한의 승리이다. 남측 입장으로서는 상당히 당혹스러우며 거북하기 이를 데 없다. 그러나 이 책이 김정일의 통일전략에 대한 일단의 엿보기라도 가능하게 한다면 그것대로 의미가 있을 것이다. 저자인 김명철 선생은 일본에서 출생한 재일동포로서 언론계에 몸담았다가, 현재는 한반도의 정치정세와 군사문제 전문가로서 활동하고 있다. 미국에 많은 친구들을 두고 있으며, 특히 보수계 인사들과 교분을 쌓고 있다고 한다.

『김정일의 통일전략』은 한편의 무협지를 연상시킨다. 시베리아의 `큰 곰`으로 상징되는 러시아의 무능력과 아메리카 사자에 대한 공포, 이제 잠에서 깨어난 듯이 보이는 대륙의 `용`으로 상징되는 중국의 도전, 그러나 추위와 배고픔속에서도 `자주`를 자양분으로 하여 꿋꿋하게 들판을 어슬렁거리는 `외로운 이리` 북한의 매서운 눈빛이 교차하는 냉혹한 전쟁터가 이 책의 주무대이다. 김명철 선생에 따르면 김정일은 단 한번 아버지의 뜻을 거역했다고 한다. 그것은 국방력의 강화에 대한 그의 신념이다. 그리고 결국 그의 고집이 북한을 온몸에 가시를 세운 `고슴도치`에서 이제는 날개를 가진 `전갈`로 전변시켰으며 미국을 일거에 날려버릴 수 있는 핵과 미사일로 무장시켰다고 한다. 여기서 우리는 북한이 이미 핵과 미사일로 무장하고 있다는 그의 주저 없는 주장에 당혹감을 감출 수가 없다. 그 동안 국제사회가 그토록 막아왔던 핵과 미사일을 이미 북한이 보유했다? 이 책이 처음으로 던지고 있는 쟁점 중의 하나이다. 또한, 이 책은 전체적으로 북한의 미사일 능력과 육, 해, 공군의 능력을 미군과의 대결에도 승리할 수 있는 수준으로 높여놓고 있다. 과연 그럴까?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두 번째의 쟁점이라고 할 수 있다.
김명철 선생은 한국전 이후 북과 미국의 대결은 모두 북의 승리로 끝났다고 단언한다. 그에 의하면, 1968년 푸에블로호 나포사건, 69년의 EC121기 격추사건, 76년의 판문점 포플러나무 벌채사건(도끼만행사건), 그리고 94년의 핵위기 모두가 결과적으로 북한의 승리로 끝났다고 주장한다. 역사적으로 보자면, 즉, 이라크에 대한 폭격, 리비아 폭격, 유고 공습, 수단 화약공장 폭격, 그레나다 침공, 파나마 침공, 소말리아 내전 개입, 이란-이라크 전쟁의 배후조정 등 일련의 사건에 비교해서 북한에 대한 미국의 태도는 어떤 측면에서는 김명철 선생의 표현대로 미국이 결코 승리하지 못했고, 소극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반대로 생각한다면, 북한이 유독 미국에 대해서만은 한번도 물러서지 않고 대결해왔다는 것도 알 수 있다.
다음으로 이책은 남한을 한반도 통일이나 북한과의 대결에서 아무런 힘도 없으며, 민족 정통성도 가지지 못한 옛 `만주 괴뢰국`으로 비유하고 있다. 만주국이 일본이 세운 꼭두각시 국가였던 것과 마찬가지로 남한도 미국의 꼭두각시에 불과하며, 따라서 한반도의 통일은 북한과 미국의 문제이며, 그것도 군사문제를 본질로 하고 있는 `자주`를 담보로 한 첨예한 민족의 생존투쟁이 된다. 마치, 김일성 주석의 소위 `갓끈전술`을 연상시키는 그의 주장은 남한사회의 미래가 미국이라는 핵심축에 의해 지탱되고 있음을 암시한다. 따라서, 통일은 남한과의 문제가 아니라 미국과의 문제로 된다. 그리고, 미국과의 대결을 위해서는 북한을 미국과의 전쟁에 최후의 승리를 이룰 수 있는 `전갈의 전시체제`로 만들어야 했던 것이다. 그러기에, 이 책 전반에 흐르는 반미는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하며, 북한의 전시체제도 이 지점에서 이해될 수 있다. 곧, 미국과의 철저한 투쟁만이 통일을 성취할 수 있는 것이다.
김명철 선생은 김정일의 군사전략에 대해 `힘에는 힘으로`라는 고전적인 정식을 대입한다. 그러나, 결코 힘을 적과 동일한 방식으로 취하지는 않는다. 즉, 미국과의 군비경쟁은 가능하지도 않지만, 김정일이 취하지도 않는다는 의미다. 오히려, 미국의 약점을 철저히 물어뜯는 `이리의 철칙`을 따른다. 그것이 바로 미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핵과 미사일이다. 또한, `말의 폭력전`을 통해 적의 기세를 제압하고 적으로 하여금 싸울 의지를 잃게 만드는 전술을 구사한다. 손자가 `싸우지 않고 이기는 장수가 가장 강한 장수`라고 했던 것처럼 김정일 역시 싸우지 않고 적을 굴복시킨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처럼 적을 굴복시키는 과정이 바로 현재의 북미간의 협상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책은 김정일이 국가주석식을 승계하지 않은 이유를 밝히고 있다. 즉, 북한이라는 연방 통일 국가의 지방 정부의 수장이 아니라 통일 국가의 지도자가 되고자 하기 때문에 국가주석식을 승계하지 않았다고 한다. 따라서, 앞으로 연방 통일 국가의 지도자는 김정일이며, 결국에는 민족의 지도자로 등극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하는 것이다. 아니, 그렇게 되는 것이 필연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김명철 선생의 주장에 따르면, 김정일의 통일전략은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북한은 철저한 군사체제를 갖춰 놓았으며, 미 본토까지도 공격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북한은 지금까지 단 한번도 반미의 기치를 내린적이 없으며, 한반도의 통일은 미국과의 군사적 대결에서 승리할 때만이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직접적인 군사적 충돌은 원하지 않고 있으며, 싸우지 않고도 이길 수 있는 방도로서 철저한 힘의 구축과 말의 폭력전, 정치적 협상을 통해 통일을 성취하려고 한다.
김명철 선생의 이러한 주장은 여러면에서 우리를 당혹하게 한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에 대한 보유 여부도 그러하지만, 군사력으로서도 미국을 제압할 수 있다는 그의 입장도 그렇다. 또한, 북한의 철저한 반미는 이해할 수 있지만, 남한을 독자적인 생존능력이 없는 완전히 무기력한 국가체제로서 상정하는 것도 이해하기 힘들다. 얼마전, 한호석 소장 역시 이러한 류의 글들을 인터넷을 통해 발표한 적이 있다. 아마도 한호석 소장이 고백한 것처럼 그 역시도 김명철 선생의 주장에 동의하고, 그의 입장을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책은 전체적으로 몇가지 점에서 문제를 안고 있다. 그것은 첫째로 확실하지 않은 정보에 기초하여 북한의 군사적 능력을 확신하고 있다는 것이며, 이는 곧바로 미국의 보수세력들의 주장과도 그대로 닮아있다. 미국의 보수세력이 북한의 위협을 근거로 자신들의 주장을 옹호하고 여러 가지 군사적 조치를 정당화하려고 하는 반면에, 김명철 선생은 북한의 군사적 능력을 근거로 북한의 승리를 확신하고 있다는 것만이 다를 뿐이다. 둘째로, 북한의 반미가 군사문제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다는 주장에도 재검토가 요구된다. 즉, 북한의 경우 철저한 반미의 원칙 속에서도 시기별로 사안별로 그 태도 여하는 상당히 유연하게 대처하고 있으며, 더욱이 90년대 들어와서 그 변화된 모습은 확연히 드러나고 있다. 북한이 자체의 튼튼한 국방력을 갖춰놓았기 때문에 미국과의 협상이 가능했다는 것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미국내의 문제, 주변4강과의 문제(특히, 중국의 입장), 남한과의 문제 등이 이 못지 않게 중요하게 작용했다는 점을 무시하고 있다. 북한 한 인사의 표현처럼, 중국이 있음으로 하여 한반도에서 미국의 섣부른 전쟁은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쉽게 가능한 것도 아니다. 세 째로, 남한의 위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이번 평양회담을 통해서 드러났듯이, 평양회담은 미국을 비껴서 남과 북의 독자적인 판단에 따라 결정되었으며, 또한 역사적인 성과를 만들어 내었다. 평양회담의 결과 미국이 당황한 모습을 감추지 못했던 것이 그의 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또한, 회담 결과 남과 북의 민족주의적 열기가 고조되고 이를 미국이 가장 경계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남한이 미국의 영향력 하에 있기는 하지만, 어느 정도는 독자적으로 행동하고 결정할 수 있는 여지가 존재한다는 의미이다. 미국의 개입을 막아내면 남한의 역량이 결정적으로 약화되는 것은 여전히 사실이지만, 문제는 남한 국민들의 선택과 의사결정이 그처럼 허약하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마지막으로, 김정일의 싸우지 않고도 승리하는 전략은, 다시말하면, 미국과의 협상을 통해 성과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은 현재의 정치 협상에 대해 적절한 비유일 수 있지만, 김명철 선생이 주장하고 있듯이 그것이 일방적으로 북한의 입장으로만 전개되고 있지도 않으며(제네바 합의의 실행과정을 상기해 보라), 미국이 일방적으로 양보하고 있지도 않다. 정치협상은 국가 대 국가의 내부 정치력의 시험대라고 할 수 있다. 고전적인 협상론에 따르면, 소국은 대국에 대한 정치협상에서 총력을 기울이는 경향이 있으며, 대국은 그렇지 못하는 경향이 강하다. 따라서 소국이 항상 대국과의 정치협상에서 일방적으로 밀리지만은 않는다. 90년대 북한의 상황은 김정일의 표현처럼 2,000만의 운명을 걱정해야 될 정도로 사면초가였으며, 미국과의 정치협상은 2,000만 아니 나아가 7,000만 겨레의 운명과도 직결되는 문제였다. 따라서 북한으로서는 모든 정치역량을 미국과의 정치협상에 우선할 수 밖에 없었다. 이러한 상황을 염두에 두지 않고 북-미간의 정치협상을 일방적으로 북한 의지(의도)의 실현으로 이해하는 것은 물위에 떠있는 오리의 우아한 자태만을 감상한 결과가 아닌가 한다. 물론, 그동안의 북한의 정치협상력은 세인을 모두 놀라게 했으며, 이를 뒷받침하는 북한의 단합된 힘은 충분히 인정해야 할 것이다.

김명철 선생의 책은 음모이론을 연상시킨다. 현상의 이면에는 항상 거대한 세력 혹은 구조의 음모가 존재한다는 음모이론을 연상시킨다. 또한 전략적 분석에서 놓치기 쉬운 전술의 부재를 연상시킨다. 전략을 실현시키는 전술의 능동적 작용에 의해 사건이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제대로 알 수 없는 전략의 직접적인 작용에 의해 모든 사건이 벌어지고, 해결되는 것 말이다. 김명철 선생의 주장에 대해 80년대 초반 잠깐 학생운동 진영에 등장했다가 사라진 `반제직투론`의 조급성과 주의주의적 시각을 연상시키는 것은 무리한 비교일까? 김명철 선생의 책에서는 의지의 완전무결성이 존재한다. 의지를 통해 세상사가 변화하고 북한의 오늘이 있었다는 것이 김명철 선생의 시각인 듯 하다. 그러나, 필자는 다르게 생각한다. 의지를 지닌 인간의 능동적인 현실 개입이 있었기에 북한의 오늘이 있었으며, 그것도 여러번의 시행착오와 이론의 수정과 실천을 통해 검증되어서 오늘이 있었다. 그러기에, 선우현의 『우리시대의 북한철학』은 `북한의 주체철학`을 가르켜 개방되어 있되, 외연을 점점 더 넓혀가는 철학이며, 아직도 완성중에 있는 철학이라고 하지 않았겠는가?

아무튼, 김명철 선생의 책은 북한과 통일을 고민하는 사람들이라면 한번쯤은 읽어볼만한 책이다. 선생의 주장에 동의하든, 그렇지 않든간에 여러 가지 풍부한 정보를 접할 수 있으며, 파격적인 주장에도 한번쯤은 귀 기울여보는 것이 여러모로 유익하다. 또한, 이 책을 읽고 자신의 북한관, 통일관과 비교하여 자신은 어떤 기준으로 북한과 통일문제를 바라보고, 접하고 있는지를 성찰해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올해는 우리가 일본 제국주의자들로부터 해방된 지 55돌이 되는 해이다. 55년은 우리 민족 년 5,000년, 적게 잡아 통일된 한민족 1,000년의 역사에 비하면 일시적이며 과도적인 기간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역사의 시간은 일정한 속도로 흐르는 것이 아니다. 과거 100년의 세월이 지금의 1년과 비교되는 오늘날의 시점에서 55년은 어쩌면 지난 1,000년의 우리 민족사보다도 더 긴 시간일 수 있다. 다행스럽게도 21세기 첫 해에 우리는 55년의 분단의 세월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는 이정표를 마련하였다. 20세기의 분열이 마감되고, 21세기의 통일 시대를 열어 젖힐 민족사의 중요한 시점에 와 있는 것이다. 민족이 함께 기뻐하고, 춤추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그 여정에 통일뉴스가 창간되어 민족대단합에 보탬이 되기를 창간축하의 인사로 드린다.
▶필자: 정영철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박사과정 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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