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미국 건국 초 대통령들이 감추어 두었다는 보물을 찾아 나서는 모험 액션극 ‘내셔널 트레져’(National Treasure). 보물사냥꾼인 벤저민 프랭클린 게이츠(니콜라스 게이지 분)가 미 독립선언서를 작성한 대표들이 남긴 암호를 해독하며 보물을 찾아낸다는 내용의 이 영화는 곳곳에 흥미진진한 단서들을 깔아 놔 관객들로 하여금 직접 보물을 찾아가는 듯한 착각마저 들게 한다.

일각에선 베스트셀러인 ‘다빈치 코드’를 연상시킨다고 평가하고 있으며 한 네티즌은 “인디아나존스가 도시를 배경으로 보물을 찾는다면 ‘내셔널 트레져’ 되지 않을까”라고 리뷰를 달기도 했다. 그러나 재미에만 빠져있기엔 이 영화는 왠지 수상하다.

국보 지키려고 3대 걸친 꿈 포기하는 ‘수상한’ 애국심

 

▶미국의 독립선언서를 '지키기 위해 훔치고' 있는 주인공 벤저민 프랭클린 게이츠
(니콜라스 케이지 분). 

미국은 다양한 민족과 인종이 모여 사는 ‘집합체’임에도 불구하고 9.11테러 등 자국에 위협이 가해질 때는 놀랄 만한 단결력을 발휘해왔다. 심지어 미국에 위협이 되는 모든 국가와 단체들을 무조건 공격할 수 있는 법적 장치인 국토안전법이 제정돼 미국시민뿐만 아니라 세계인의 인권과 자유를 위협할 때도 이에 대해 함구하는 대단한 ‘애국심’을 발휘하기도 했다.

이라크 전쟁을 일으킨 부시 대통령의 재선이 미국인들의 놀라운 ‘자국 중심주의’를 입증해 준다. 도대체 위기가 닥치면 앞뒤 볼 것 없이 똘똘 뭉치는 비정상적인 애국심의 근원은 무엇인가.

세계에서 가장 ‘자유롭고 부강한 나라 미국’이란 대외 이미지가 개개인의 자긍심에 투여돼 견고한 성을 만들고, 이 성이 다른 나라에 의해 농락당하는 것을 참지 못하는 ‘이드(정신분석 용어. 본능)’가 ‘초자아(종교적.사회적 이성)’로 확대돼 미국인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문제는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 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헐리우드의 무수한 영화들이 이를 조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영웅주의가 돋보이는 대표적인 영화 ‘진주만’과 ‘인디펜더스 데이’, 심지어 환경문제로 인한 대재앙을 예고한 영화 ‘딥 임팩트’와 ‘투모로우’까지 위급 상황시 미국정부를 중심으로 똘똘 뭉치는 미국인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이라크 전쟁 등으로 미 정체성이 흔들리기 시작할 때 출시된 ‘네셔널 트레져’는 ‘애국심’을 노골적으로 강조한다.

 

▶독립선언서 도난의혹을 제보했으나 FBI가 믿지 않자 방안을 궁리중인 벤저민.

주인공 벤저민 프랭클린 게이츠는 할아버지로부터 미 대통령들이 감추어 두었다는 보물에 관한 얘기를 듣고 보물탐험가가 된다. 벤저민의 집안은 보물과 관련된 정보를 알고 있는 유일한 집안으로 3대째 미치광이라는 손가락질을 받으며 보물찾기에 몰입해 왔다.

아버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보물찾기에 나선 벤저민은 결국 빙하 속에 가라앉은 배 ‘샬롯’을 찾아내고 그 곳에서 발견한 ‘단서’를 통해 보물지도가 미 독립선언서 뒤편에 그려져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러나 주인공 벤저민은 보물을 찾기 위해 독립선언서를 훔쳐야 한다는 사실에 낙담하고, 3대에 걸친 보물찾기 꿈을 그 자리에서 포기한다. 미국의 국보인 독립선언서를 훔칠 수 없다는 아주 ‘도덕적’인 이유 때문이다. 결국 실망감을 느낀 동료 ‘이안’이 총부리를 들이대자 화약에 불을 붙이고 극적으로 탈출한다.

한 술 더 떠 벤저민은 독립선언서를 훔치려는 ‘이안’으로부터 독립선언서를 지키기 위해 FBI를 찾아다니며 곧 독립선언서가 도난당할 것이라고 제보하지만 정부가 믿어주지 않자 직접 독립선언서 ‘보호’에 나선다.

영화를 보는 미국인은 어떨지 모르겠다. 그러나 영화를 보는 한국인, 어리둥절하다. 흥미진진한 보물찾기를 보려 들어온 관객들은 벤저민의 엉뚱한 행동에 당황한다. ‘혹 독립선언서 보호하기’에서 영화가 마무리되는 것이 아닐까...’ 슬슬 본전 생각이 나기 시작한다.

물론 보물찾기는 여차저차 해서 진행된다. 미국의 역사를 실타래 풀 듯 하나하나 풀어가며 ‘자유의 땅’을 건설한 미국 선조들의 정신을 되새기며 주인공은 매번 감격에 젖어 감탄사를 연발한다.

도대체 이 인간 왜 이럴까. 알고 보니 주인공의 이름이 1782년 초 파리에서 영국과 평화협상을 진행해 ‘파리의 조약’으로 알려진 강화조약을 맺고 영국의 식민지였던 아메리카 13개 주의 독립과 자치 지배권을 얻어낸 미국 대표 ‘벤저민 프랭클린’의 이름과 동일하다.

주인공 ‘벤저민 프랭클린 게이츠’는 영화 시작부터 ‘미국 역사의 수호자’로 내정되어 있었던 것이다. ‘미국 역사의 수호자’ 벤저민은 보물을 찾은 뒤 독립선언서를 고대로 돌려주는 것은 물론, 보물의 0.5%만 갖고 나머지를 모두 정부에 기증한다.

전쟁위기가 짙어질수록 영화 속에서도 점점 짙어져 가는 ‘애국심’의 표상. 미국과 세계인의 의식을 교정하려는 이 움직임이 수상하다.

영화 속 ‘기독교’에서 미 제국주의를 읽다

‘내셔널 트레져’에는 기독교적 상징이 무수히 등장한다. 보물이 발견 된 곳도 교회며 교회 밑 동굴까지 이어지는 200년 묵은 나무계단은 나선형으로 이어져 있는데 마치 미로처럼 얽혀있다. 기독교에서 미로는 진정한 믿음의 길을 가리키는 상징이며 원(나선형)은 흔히 신의 상징으로 이용된다.

주인공이 고난 끝에 찾아온 종착지는 결국 ‘믿음의 길’과 신이 있는 곳이다. 나선형 계단을 돌아 내려간 동굴 벽에는 ‘호루스(하늘을 다스리는 이집트의 신)의 눈’으로 가장 잘 알려진 상징이 그려져 있다. 타원형 외눈박이 형태의 이 상징은 이교도 문화에서는 태양신의 상징으로 여겨지지만 기독교 도상학에서는 ‘아버지 신’을 나타낸다.

 

▶보물이 있는 곳으로 가기 위해 기독교 상징이 농후한 나선형 계단을 돌아가고 있는
일행.

‘애국심’을 강조해 온 이 영화, 희망의 종착지로 왜 하필 기독교를 선택했을까. 다소 무리한 연결일 수 있지만 필자는 마지막 장면을 보며 문득 ‘애국심’으로 충만하고 극단적인 기독교 윤리관으로 세계를 ‘선과 악’으로 가르는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이 떠올랐다. 물론, 기독교 국가인 미국 영화에서 ‘신의 품’을 마지막 종착지로 삼는 것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기독교, 수상하다. 비밀의 방문을 열기 전, 아까 언급한 ‘호루스의 눈’을 다시 한번 살펴보자.

영국의 심리학자 ‘데이비드 폰태너(David fontana)’ 박사는 자신의 저서에서 종교의 조직적인 수출이 시작된 서기 4세기, 기독교가 로마의 공식 종교로 채택된 뒤 개종작업을 시작하면서 토착신앙들을 근절시키기 어렵게 되자 쉽게 기독교화 할 수 있는 상징들을 흡수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한다.

크리스마스, 부활절 등 기독교 달력상의 축제일은 이도교의 축제일과 일치했으며 성탄절 장작, 크리스마스 트리 또한 기독교 이전 전통에서 빌려온 것이란 게 폰태너 박사의 설명이다. ‘호루스의 눈’도 마찬가지다.

영화를 제작한 존 터틀타웁 감독은 무슨 생각에선지 ‘호루스의 눈’을 보물로 한 발자국 더 가까이 가는 문에 배치해 놨다. 기독교면서도 기독교가 아닌 것. 영화 속 기독교는 우리가 알고 있는 기독교와는 좀 다르다. 알쏭달쏭함을 풀기 위해 비밀의 방문을 열어보자.

예술의 전당 대강당만한 동굴 안에는 번쩍이는 금붙이들과 이집트 등 세계 각 국의 유물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다. 약탈문화재임이 틀림없는 이 유물들이 모두 ‘기독교’ 유일신의 품안에 있는 것이다. 마치 서기 4세기, 기독교가 개종작업을 하면서 이교도를 무차별 탄압한 뒤 흡수해버린 것처럼 제국주의의 산물들이, 세계가 모두 미국의 정신이자 부시 미대통령의 정신인 ‘기독교’ 안에 있는 것이다. 바로 미국식 ‘기독교’다.

오싹해진다. 부시 미 대통령의 ‘기독교 정신’을 집대성한 듯한 비밀의 방. ‘애국심’으로 똘똘 뭉친 주인공만이 열 수 있었던 ‘희망’의 종착지인 이 방. 그 방에 놓여진 세계의 약탈 유물들. 도대체 미국은 무슨 생각으로 이 영화를 만들었단 말인가. 또, 개봉 이후 전국 3,017개 극장으로부터 첫 주 주말 3일 동안 3,514만 불의 수입을 기록, 1위에 오를 때까지 미국인은 이 영화를 무의식 속에서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었단 말인가.

중동의 석유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이라크 전쟁을 일으키고 ‘악’을 징벌하기 위해 또 다시 북한과의 전쟁을 기획하고 있다는 지탄을 받고 있는 미국은 영화를 통해, 문화를 통해 자신들의 제국주의 정책을 정당화시키기 위한 작업을 차근차근 진행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미국의 ‘무의식’ 등 모든 것이 집대성된 ‘내셔널 트레져’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상당히 ‘미국적인’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만들고 있다. 이 영화 정말 수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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