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년만에 ‘국회프락치사건’이 다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국회프락치사건’은 1949년 이승만과 그의 정치적 기반이었던 친일전력 경찰이, 반민특위에 의한 친일파 척결 노력을 좌절시킨 데서 한발 더 나아가 친일파 청산을 주도했던 노일환 의원 등 제헌국회의 소장파 의원들을 제거하기 위해 일으킨 정치공작이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로부터 55년이 지났건만 상황은 별로 다르지 않은 듯싶다. 프락치로 엮으려 하는 세력은 제헌국회의 소장 개혁파를 제거했던 친일파들의 후예인 한나라당이고, 프락치로 몰린 쪽은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하는 쪽인 까닭이다.

프락치 소동을 일으킨 쪽이 정치적으로 위기에 몰려있다는 점도 유사하고, 국가보안법에 의지하여 생존을 도모한다는 점도 유사하다.

8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있었던 주성영 의원 등의 발언은 면책특권만 아니라면 명백한 명예훼손에 해당한다. 사실관계 확인에 따라 허위사실 유포나 날조에도 해당할 수 있다.

주성영 의원은 “이철우 의원이 1992년 조선노동당에 입당해 당원부호 ‘대둔산820호’를 부여받았으며, 지금도 암약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 의원에 따르면 조선노동당원이면 간첩이며, 이철우 의원이 조선노동당원이라는 증거는 92년 ‘민해전’사건으로 유죄판결을 받았다는 것이다.

즉, 쟁점은 이 의원이 92년 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원이었냐는 것이다. 그러나 열린우리당 정성호 의원이 공개한 2심 판결문에는 중부지역당이라는 단어 자체가 아예 나오지 않고, 다만 ‘민족해방애국전선’(민해전)이라는 단체에 가입했고, 이적표현물을 소지 또는 내국인에 전달했다는 사실만 적시되어 있다.

판결문에 따르면 이철우 의원의 유죄사실은 시중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도서목록을 한국내 사회단체 활동가에게 넘긴 것뿐이다. 국가보안법 사건의 전형이라 할 수 있는 조직으로 묶었다가 증거가 부족해 그가 보관하던 이적표현물 몇 개로 엮은 케이스인 것이다.

나아가 이철우 의원 등은 민해전이라는 단체 자체가 공안기관에 의해 조작된 사건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이 의원의 민해전 가입여부와 이 의원이 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원인지 여부는 직접적인 상관관계가 없기도 하다.

이러한 점을 의식한 듯 한나라당 전여옥 의원은 "민해전이 곧 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과 동일한 조직이라고 본다”는 입장을 밝히고, 그 내용이 “1심판결문에 들어있다는 말을 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철우 의원은 1심판결문에도 중부지역당의 ‘중’자도 없다고 반박하고 있으며, 2-3일내로 법원으로부터 1심판결문을 발급받으면 공개하겠다는 입장이다.

사건의 경과를 보건대 ‘어마어마한 간첩암약 폭로’는 한바탕 해프닝으로 끝날 공산이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한나라당은 국가보안법 폐지에 반대하는 여론을 결집하고 폐지론자들에 대해 색깔을 덧씌우는 등 정치적 효과는 충분히 거두었다.

55년 전과 달리 프락치로 몰렸음에도 완전히 제거되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 자위하기에는 뒷맛이 씁쓸하다. 민주노동당 심상정 의원의 말처럼 “국가보안법이 있는 한 제2, 제3의 ‘이철우’는 계속 양산될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국가보안법을 조속히 폐지하는 것만이 지난 이틀간 국회를 뒤집어 놓고 정국을 뒤흔든 이 ‘미친 바람’을 잠재울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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