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장관,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다"

 

김선일씨 피살사건으로 도마에 오른 외교통상부에서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12일 오전 9시경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은 직원 전체가 모인 가운데 조회를 갖고 "외교부가 전례없는 위기상황이고 절체절명의 위기이다"며 "국민의 신뢰가 바닥에 떨어져 거듭나지 않으면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다"고 말한 것으로 신봉길 대변인이 전했다.

반 장관은 국민들이 '증류수와 같은 완전무결함'을 요구하고 있다며 "조직의 기본을 바로 잡는데 최역점을 두고 업무처리 절차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공복의식, 친절성과 적극성을 가지지 않으면 안되겠다"고 말했다.

따라서 "외교부도 이제는 중요한 민원부서의 하나라고 인식해야 한다"며 "국민들의 불만사항을 접수하는 사이버신고처를 설치해 철저히 모니터하는 방안"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뿐만아니라 "앞으로 직원 개인에게 문제가 발생할 때 엄중히 처리해 인정에 이끌려 사건을 은폐하거나 축소하는 일이 절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 장관은 "최근 불행한 사건들이 외교부의 역량을 키우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는 바람도 밝혔다.

이같은 장관의 위기의식은 대체로 타당한 것으로 보이며, 외교통상부가 정말로 거듭나는 계기가 되길 바랄 뿐이다.

'미국에 대한 관점의 변화' 필요

그러나 과연 외교통상부가 환골탈태해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날 수 있을지에 대해선 아직까지는 의문이다.

반기문 장관은 올초 1월 17일 취임과 함께 조직 내부혁신을 주창했고, 태스크포스팀까지 구성해 운영하는 등 의욕을 보여왔다.

그러나 주한미군 재배치와 이라크 파병 등 굵직한 현안들에서 계속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는' 사건들이 연이어 터져나왔다.

단순히 조직재편을 통한 효율성 제고나 복무자세의 변화와 절차적 투명성을 높여 '민원부서'로 탈바꿈한다고 해결될 수 없는 문제가 내재돼 있다고 진단해야 옳을 것이다.

그 해답은 외교부 스스로 찾아야 할 일이겠지만 기자가 외교통상부를 출입하며 느낀 두 가지 점을 참고삼아 지적해 두고자 한다.

첫째는 미국에 대한 관점의 변화가 요구되고 있다.

그간 우리 외교에서 미국이 차지한 비중이나 한미관계에서의 불평등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누구나 알 것이다. 그러나 이미 시대는 많이 바뀌었고, 국민들의 대미관도 현격히 변화했다.

참여정부에 거는 국민들의 기대중 상당부분은 변화된 제반 여건과 국민들의 의식 수준에 맞춰서 좀더 평등한 새로운 한미관계를 구축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 이런 요구에 입각해 외교통상부는 철저히 우리 나라, 우리 국민의 입장에 서서 미국의 정책을 파악하고 대응해 나가야 하는 것이다.

흔히 '미국통'으로 불리는 소수의 엘리트 관료들은 우리 국민의 목소리나 요구보다는 미국의 정책이나 의도를 이해하는데 능력이 출중하고, 여기에서 벗어나면 한미동맹이 위태로워져 국익에 손해가 된다는 사고방식에 익숙하다.

또한 미국이라는 나라와 미국의 특정 정권의 정책을 혼돈하고 마치 부시 행정부의 정책이나 이해관계를 미국의 영원한 입장인 듯 착각하고 있다.

가끔 브리핑 중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는 외교부 관리들의 답변을 듣고 있노라면 한국 관리가 아니라 미국 관리이거나 한.미에 양다리 걸치고 있는 관리가 답하는 듯이 들릴 경우가 많다.

'전문성의 늪'에서 벗어나야

둘째, 전문성의 오류에 빠져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사실 외교만큼 전문성을 요하는 일도 드물 것이다. 따라서 이런 일을 몇 년, 수 십년 하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복잡한 외교사안에 대해서만큼은 자신보다 더 정확하게 판단할 사람은 없다는 생각을 갖기 쉽다.

흔히 시민사회단체들이 어렵사리 외교부 관리들을 만나 면담하는 장면을 보면 시민사회단체 간부들은 정부의 정책에 대해서 비판하고 시정을 요구하는 입장에 서고, 외교부 관리들은 자신들이 더 많은 정보에 입각해서 나름의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설명하곤 한다.

뿐만 아니라 전문성이 조금 떨어지는 부분에 대해서 정보를 주는 우월적 위치에서 마치 가르치듯 설득하려 한다.

물론 시민사회단체들이 부족한 정보와 전문성으로 인해 부분적으로 오해하거나 잘못된 견해를 가질 수도 있겠지만 이들이 요구하는 것은 대체로 미세한 전문성에 관한 것들이 아니다.

국민의 입장에서 사심없이 제기된 비판에 대해서는 아무리 전문가라 하더라도 귀기울이고 진지한 토론과 협의를 해야 마땅한 것이다.

스스로 '전문성의 늪'에 빠져있으면, 어떤 소중한 충고와 비판도 모두 가르침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만다는 사실을 외교부 관리들이 깨닫는 것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병을 고치려면 진단을 제대로 해서 병명을 바로 알아야 하듯, 외교통상부가 새로이 거듭나기 위해서는 문제가 무엇인지부터 진지하게 고민해 보아야 할 것이다.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