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식(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1. 민족문제의 현재성

▶『21세기 우리민족이야기』, 통일뉴스, 2004.4.
21세기 들어 민족문제는 여기저기서 박해(?)를 받고 있다. 주권국가의 약화와 국경의 해체 및 세계적 차원의 지구화가 진행되면서 민족단위로 구성된 민족국가는 과거에 비해 그 의미와 영향력이 훨씬 약화된 것이 사실이다. 탈주권, 탈국경, 탈국가의 경향성 속에서 과연 민족이라는 개념이 무슨 변혁적 의미가 있는가라는 근본적 회의가 제기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이다.

변화된 시대 환경에 의해 전대미문의 박해를 받고 있는 민족개념, 민족문제는 한국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주로 서구에서 공부를 하고 온 학자들에 의해 주장되는 민족주의 무용론은 이른바 ‘상상의 공동체’로서 민족주의를 규정하고 이는 실제 존재하지도 않는 허구적 개념인 바, 많은 국민들을 묶어놓는 구속의 틀일 뿐이라고 힐난하고 있다. 특히 서구 민족주의의 발흥이 결국은 극악한 제국주의나 파시즘으로 전락한 역사를 들어 민족주의는 오히려 ‘근대화의 반동적 프로젝트’였다면서 우리에게도 이 개념은 폐기되거나 축소되어야 함을 공공연하게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가? 21세기를 살고 있는 이 땅에서 과연 민족주의와 민족문제는 버려야 할 과거의 유물인가? 아직 답은 명확치 않다. 다만 이 땅의 현실은 여전히 분단과 통일의 문제가 현재진행형으로 남아 있고 이와 관련하여 민족주의와 민족문제는 우리 삶과 미래에 직접적인 연관을 맺고 있음이 분명하다.

민족이 갈려 서로를 적대하고 미워하면서 분단이 공고화된 과정은 그 자체로 민족 자주성의 훼손이자 실종과정이었고 대립하는 반쪽을 미워하기 위해 다른 국가와 손잡고 냉전체제를 형성한 것 자체가 민족주의의 미완성이었던 것이다. 아직도 이산가족의 아픔이 남아 있고 북녘 동포를 만나면 자연스레 민족애가 발현되는 정서가 존재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완의 민족주의와 자주성의 훼손이라는 분단의 결과물이 온존하고 있는 한, 여전히 우리에게 민족문제는 해결해야 할 과제이며 그로 인해 역사발전의 정당성과 긍정성을 가지는 영역일 수밖에 없다. 분단극복과 민족자주성의 회복을 거치지 않는 한 근대의 민족주의와 이에 기초한 민족국가의 형성은 아직도 과제로 남는 것이고 따라서 민족의 문제는 적어도 한반도에서 변혁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 된다.

이와 관련하여 김남식 선생은 북한의 민족관을 설명하면서 서구의 부르조아적 민족관도 아니며 동시에 스탈린이 정식화한 계급우선의 민족관과 구별되는 것이라 규정하고 자본주의 도래와 결부시켜 민족형성을 논하지 않고 자주성을 위한 투쟁의 과정에서 ‘언어와 혈통’의 공통성에 기초한 공고한 집단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민족주의에 대해서도 ‘민족의 이익을 옹호한다는 의미에서 발생한 사상정신’이라면서 부르조아 민족주의와 달리 긍정적인 애국애족 사상으로 보고 있다고 김남식 선생은 설명하고 있다. 이는 분명 우리 사회에 횡행하고 있는 탈민족주의 경향에 대한 명확한 반대의 입장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리고 자주성을 생명으로 하고 있다는 민족개념 역시 지금 시기 분단을 극복하고 민족의 통일을 이루는 것이 민족 자주성의 회복이라는 저자의 논지와 일맥상통하고 있다.

2. 내재적 접근의 유효성

민족이 아직은 유효하고 아울러 민족의 자주성을 이루기 위한 통일이 변혁의 과제로 남는다면 이 과제는 당연히 북한에 대한 올바른 이해로부터 출발할 수밖에 없다. 통일의 한쪽 주체이자 같이 살아야 할 통일의 구성원으로서 북한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분단을 해소하고 통일을 준비하는 데 필수불가결한 작업이다.

그러나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 사회에서 북한을 안다는 것은 이미 덧씌워진 이미지에 따라 분단세력이 설정해 놓은 부정과 왜곡의 틀에 갇힌 채 단순한 ‘북한 그리기’에 머물러 있었다. 머리에 뿔이 난 북한주민이 오히려 당연한 것으로 받아 들였던 무차별적인 반공교육이 기존의 북한 그리기의 산물이었음은 따라서 당연한 일이었다. 다행히 1980년대 후반부터 탈냉전의 국제정세와 통일역량의 강화라는 대내외적 조건에 의해 ‘북한바로알기 운동’이 진행되었고 이를 통해 우리는 조금씩 기존의 북한 그리기가 얼마나 허황된 자의성에 기초했는지 인식하게 되었다. 물론 이 시기 김남식 선생의 역할이 일가를 이루었음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

당시 북한바로알기의 과정에서 이른바 ‘내재적 접근법’이 북한연구방법론의 핵심으로 등장했는 바, 냉전의 색안경을 낀 외부의 시각이 아니라 북한 스스로 설명하는 그들의 가치와 설명논리에 따라 북을 이해해야 한다는 내재적 접근법은 국외자의 반대로서의 내부적 시각만이 아니라 북에 대한 온갖 선험적 인식의 반대로서의 ‘경험적(immanent) 인식’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에 따른다면 내재적 접근법은 일부의 오해와 달리 단지 반북이 친북으로 대체되어야 한다는 가치개입적 방법론이 아니라 객관적 실체와 동떨어진 반북과 친북 모두를 선험적인 것으로 반대하며 있는 그대로의 북을 봐야 한다는 가장 경험적인 접근법이 된다.

북한바로알기 운동이 과거의 북한그리기에서 보다 객관적인 북한에 접근하는 것이었지만 이후 사회주의권 붕괴와 탈북자 증가 그리고 일부 남한에서의 반북 경향이 재연되면서 불과 몇 년 만에 우리의 북한인식은 또 다시 부정적 측면에 집중되었다. 냉전시대의 반북이 잠깐 동안의 북한바로알기를 거친 후 곧바로 탈냉전 시대의 ‘재반북’으로 바뀌어 버린 것이다. 그리고 이는 결과적으로 반북의 정당성을 재확인해준 꼴이 되었다.

북을 맹목적으로 찬양하고 사실을 왜곡하면서까지 긍정적 평가를 하는 것은 분명 또 하나의 편향이다. 그러나 반세기 이상 지속되어 온 반북 우위의 북한 인식을 감안할 때 지금 시기 북한에 대한 긍정적 이해는 나름의 유의미성을 갖는다. 근거없는 반북적 대북관이 우리 사회에 미친 부정적 영향을 감안할 때 아직은 경험적 인식으로서의 내재적 접근은 시대적 유효성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수십년 동안 북한의 현실을 부정과 왜곡으로 난도질했던 만큼 지금은 여전히 북한의 현실에 대한 긍정과 이해의 눈길이 필요한 때다. 북한을 무조건 수용하지 않되 이해해야 하며(not accept, but understand), 찬양하지 않되 인정해야 하는(not admire, but admit) 객관적이고 통일지향적인 ‘북한보기’가 아직도 유효함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이다.

그리고 김남식 선생은 이 책 1부 '21세기 김정일 시대의 북한'에서 북한의 모든 영역을 바로 이러한 통일지향적 관점에서 反反北的 시각으로 설명하고 분석하고 있다. 그가 쓰고 있는 김정일의 사상론과 수령론, 북한의 사회주의론과 강성대국론 등은 지금 작동하고 있는 현실로서의 북한체제를 이해하는 데 유효한 접근법의 하나로 자리매김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 책에서 북한의 논리와 설명을 무비판적으로 전달하는 것에 대해서는 독자가 여과해서 이해해야 할 부분이 존재하기도 하지만 한평생을 분단의 멍에 속에 살아오면서 남은 여생을 민족통일과 자주성 회복에 기여하고자 하는 노학자의 바람을 감안한다면 그것은 옥(玉)의 티일 뿐이다.

3. 21세기 우리민족 이야기

분단의 역사를 개인사적 체험으로 온몸에 겪었던 김남식 선생이 어찌 보면 진부해 보이기도 하는 민족, 북한, 통일 문제에 집착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일제치하를 겪고 해방을 맞으면서 자주적 통일국가 수립에 적극 참여한 김남식 선생은 분단과 전쟁의 한복판에서 민족통일과 자주정부 구현에 힘을 쏟았다.

이후 분단의 상처를 직접 겪은 김남식 선생은 개인적 우여곡절에도 불구하고 통일과 자주화에 대한 확신을 하루도 포기하지 않았으며 그가 있는 현장에서 그가 알고 있는 모든 지식과 경험을 통해 남북한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귀중한 저작과 논문을 제출할 수 있었다.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들어 지금 또 다시 북한을 이야기하고 통일을 언급하면서 결국에는 민족문제에 천착할 수밖에 없음은 그가 살아온 인생역정의 자연스런 결과일 것이다. 20세기에 시작된 민족분단의 고통이 지금에도 지속되고 있고 여전히 민족통일과 자주화의 목표가 미완의 과제로 남아 있기에 우리에게 민족은 21세기에도 현재성을 갖고 있고 올바른 북한 이해 역시 지금에도 유효성을 갖는다. 김남식 선생의 책 제목이 ‘21세기 우리민족 이야기’임은 따라서 이상한 것이 아니라 당연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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