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 민(한국정치연구회 연구원)


`낯선 사람들`이 쏟아내는 `낯선 말`들의 잔치

▶『북한 정체성의 두 얼굴』
서보혁 지음/책세상/서울, 2003
요즘 북한관련 학술회의와 토론회의 향연이 넘쳐나고 있다. 이 지대한 관심과 양적인 담론의 포만감을 누가 뭐라 하랴. 쉽사리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 다급한 안보 현안들을 접하고 있는 현실에서 긍정적이고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과연 그럴까? 줏대를 못 찾고 설왕설래하는 것은 언론이나 정부만이 아닌 것 같다. 지긋한 분석의 맛은 없고 불확실한 정보에 일희일비하는 저널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토론, 그리고 단발적 예측으로 가득 찬 말들이 고급한 말로 포장되어 공허한 울림만을 주는 학술회의가 비일비재하다.

여기에 회의는 흐지부지 시간에 쫓겨 토론다운 토론 없이 허무하게 끝났는데 이어지는 만찬은 풍성하게 마무리하는 역설을 목격하는 것은 어떤가. 또 끝나면 부랴부랴 토론비 챙겨가기에 바쁜 우리 저명한 전문가분들, 교수분들의 뒷모습은 왜이리 초라하고 경망해 보이는가. 그래도 이 정도의 풍경은 봐 줄만하다.

문제는 `낯선 사람들`이다. 얼굴보지 않고 말만 들으면 미국사람인 줄 착각할 만한 사람들이 버젓이 북한정권이나 정부 정책을 훈계하고 있는 모습이다. 수구언론들의 상업적 보수논법을 학술적 용어로 치장하는 것을 뭐라고 할 수 있으랴. 또 미국의 국제정치학 시장으로부터 학문적 수혜를 받은 이들이 한미동맹을 십계명으로 주장한 들 뭐가 이상하랴. 미국인 전문가나 정책자들의 언급은 심각한 `우려`로 운운하며 호들갑 떨면서 국민의 걱정이나 기대는 뭔가 잘 모르는 소시민적 근심으로 취급하는 오만함이 있으면 또 어떠랴.

문제는 이들의 `정체성`이다. 하나는 이들이 북한 문제를 무엇으로 정의하고 있는가 이며, 또 다른 하나는 그들이 갖는 학문적 `정체성`이 어디에 기대고 있는가 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정작 북한 내부를 모르거나 알려고 하지 않으면서 북한 문제 전문가로 행세한다는 점이고, 또 다른 공통점은 이들이 우리 국민의 정체성을 대변하지 못 하거나 `국익`의 논법 속에서 여론을 왜곡하기 일쑤라는 점이다.

이들에게 혹 북한 문제는 당사자가 아닌 타자의 입장에서 본 북미관계의 현실주의 시각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은 아닐까? 더 나아가 북한은 단지 이들에게 미국보다 못한 타자로서의 이질적 대상은 아닐까? 이들 `낯선 사람들`이 쏟아내는 `낯선 말`들의 잔치, 이것이 바로 우리 학술회의 향연의 본 모습이고 북한연구의 현주소는 아닐까 싶다.

이 책의 강점은 북한의 `정체성`을 `역사성`있게 추구하는 것

그래서 이 책 『북한 정체성의 두 얼굴』(서보혁 지음/책세상/서울, 2003)은 우리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하다. 저자는 말한다. 이 책은 "북한 문제를 대상화하고 전략적으로 접근하는 태도의 빈틈을 메우기 위해 씌어졌다"고 말이다. 저자의 이 완곡함에 덧붙여지는 말은 바로 북한의 행동을 이끄는 가치관과 행위 규범을 모르고 합리적인 대북 정책과 이를 위한 여론 형성이 가능하겠느냐 이다.

이처럼 상식적인 말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이 상식이 좀처럼 현실에서 실천되지 않았다는데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정책이나 정략의 모략적 어투에 익숙한 우리에게 저자의 이 상식은 오히려 신선함을 준다. 잠시 그 상식 속으로 들어가 보자.

"북한을 둘러싼 혼란은 북한이 연출하고 있는 복잡한 현상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남북한 상호 이질적 체제에서 비롯되는 다른 가치관과 북한에 대한 고정관념도 `북한적 현상`에 대한 객관적 이해를 가로막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일반인들은 물론이고 북한 연구자들도 북한에 대한 편향된 시각(단순한 호기심 대상, 객관적 관찰 대상)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북한에 대한 자신의 인식과 판단이 틀릴 수도 있다는 상대주의적 관점과, 북한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합리적 존재라고 가정하고 이해하는 자세가 필요하다."(11-12쪽)

바로 이 상식의 준거를 찾아가는 저자의 행보는 북한의 `정체성`으로 모아진다. 우리가 비정상성이나 비합리성으로 보는 북한의 행위, 그 이면에서 그들 행위를 추동하는 본질은 무엇인가? 그것의 본질을 저자는 `정체성`으로 본다. 이 정체성이야말로 그들의 행위 규범이자 체제 정향을 구성하는 핵심이며 그들이 지닌 문화의 응축인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정체성`을 바라보는 문화적 접근의 설명을 저자는 단순히 표피적으로 드러나는 체제 속성의 추출로 조합하지 않는다. 오히려 북한 체제 형성 및 전개과정의 면면한 흐름을 통해 거시적이고 통시적으로 이해하려는 긴 호흡의 `역사성`으로 나아간다. 이 책의 강점은 여기에 있다.

바로 단순한 삽화적 이해를 넘어선 북한 역사에 내재한 `긴장성`을 찾아가는 저자의 활기찬 행보는 이 긴장을 봉합하거나 해소하려는 북한 정권의 `정체성의 정치`를 드러내는 지점에서 절정을 이루고 있다.

저자는 북한의 정체성 형성과정이 항일무장투쟁의 경험, 한국전쟁, 그리고 사회주의 경제건설이라는 역동적인 북한의 역사적 경험의 산물이자 그 경험의 내면화 과정과 다름이 아니라고 본다. 여기에 권력투쟁과 유일체제 확립의 행위자적 적극성이 주체사상으로 응집되는 과정이 결합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역사구조적 측면과 행위자적 측면의 균형성을 이끌어 내고 있다는 점에서 설명의 깊이를 더해 준다.

저자는 이 과정 속에서 형성된 정체성을 집단주의의 일종인 민족주의 정향으로, 그리고 특수주의의 하나인 주체형의 사회주의로 정의한다. 북한은 이를 `민족자주의식`, `민족대단결`, `우리민족제일주의`, `인민대중 중심의 우리식 사회주의` 등으로 표현해 왔다는 것이다. 이는 탈냉전기에 들어 김정일에 의해 `민족성`과 `주체성`이라는 테제로 정리됐고, 바로 현재 북한이 주장하는 `우리식 사회주의`는 주체성과 민족성이 구현된 애국애족적 사회주의로 정식화되었다고 저자는 본다.

북한 정체성이 갖는 `양날의 칼`

그러나 저자는 이러한 이해의 차원에서 더 나아가 이런 정체성이 지니고 있는 문제점을 지적한다. 그 하나로 민족주의적 정향이 그 출발에서 저항적 민족주의의 성격을 지니고 있었으나, 점차 제국주의로부터의 해방이라는 `밖으로부터의 자유`를 일관되게 강조하는 이면에서 `안으로부터의 자유`가 결핍된 사실을 은폐해 왔다는 점이다. 이는 저항 민족주의가 권력의 정통성 확립과 국민 통합 등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었다는 점에서 그렇다.

또 이 정체성은 대내적으로 개인과 집단, 그리고 국가의 `동일시`를, 대외적으로 외부 적대세력과 다르다는 `구별짓기` 기능을 수행함으로써 끊임없이 위협을 조작하고 과장하는 속에서 기능 해 왔다는 점이다. 또 이것이 내부 권력 정치의 불안정성을 보완하는 것과 결합되었다는 저자의 지적은 북한 정체성 재생산의 메커니즘과 담론체계가 갖는 기능적 특성을 이해하는 통찰력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주목을 끈다.

그러나 저자의 통찰력은 이러한 정체성이 탈냉전기에 어떠한 위상을 갖는가 하는 지점에 이르러 더욱 날카로움을 드러낸다. 그것은 정체성과 국가이익 사이에서 나타나는 갈등이다. 내적 통합이라는 기능적 측면이 국제적 행동규범과 갖는 상충성, 그리고 정책 결정의 경직성 등이 북한 정권을 위협할 수 있는 부메랑 효과를 일으킬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른바 이것이 북한 정체성이 갖는 `양날의 칼`인 것이다.

이러한 북한 정체성이 갖는 `양날의 칼`을 저자는 1990년대와 현재까지 진행 중인 북미관계의 긴장과 갈등의 모습을 통해 책 후반부에 꼼꼼하고 진지하게 논의하고 있다. 이는 현재의 북한 문제를 이해하는데 적절한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결론적으로 이 책은 시시각각 쏟아지는 북한 관련 소식의 홍수와 열탕과 냉탕을 오가는 여론을 표피적인 전략적 이해로부터 진지한 문화적 차원의 이해로 유도한다는 점에서 한층 성숙한 북한 이해의 시각을 제공하고 있다. 또 단기적인 변화에 오락가락 하는 전문성의 경박함에 일침을 가하듯 장기적인 북한 역사의 지속과 관성을 `정체성`으로 세심하게 바라본다는 점에서 곱씹는 되새김질의 진지함을 던져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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