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가극단 금강 20주년을 기념해 `고구려 뮤지컬 수천`이 2차 공연에 들어갔다.
 [사진 제공 - 가극단 금강]

"누가 위대한 대지 위에 경계를 그어 놓았단 말인가? 대지의 경계를 허물고 고구려의 하늘을 지키자!"

`고구려 뮤지컬 수천(守天)`이 가극단 금강(www.silk-river.co.kr ) 창립 10주년을 기념해 다시 무대에 올려졌다. 지난 2001년 5월 17일 애석하게 세상을 떠난 고 문호근 선생을 기억하는 의미를 더해.

23일 오후 7시 30분 예술의 전당 토월극장에서 올 1월 첫 선을 보였던 수천이 재공연에 들어가 천 오백년의 역사를 넘나드는 장쾌한 대륙풍의 서사시를 통해 오늘의 분단 현실에 새로운 시야를 제시했다.

주인공 장하독과 수천이 남편과 부인으로서 고구려 시대 호태왕(광개토대왕)의 명을 받아 서요하 따싱안링(대흥안령)을 지키며 살게 되고, 고려시대 장하독은 딸 수천을 몽골장수에게 빼앗겨 수천이 몽골의 피가 섞인 아기를 낳아 데려오지만 아기를 받아들이고 호태왕과이 약속을 지킨다. 일제시대 어머니 수천과 함께 살고있는 젊은 청년 장하독은 따싱안링을 떠나고 싶어하지만 일본 토벌대에 쫒기는 독립군을 만나게 되고...

▶고구려에서 일제시대까지 천 오백년을 오가며 장하독과 수천을 통해 시간과 공간의
경계를 뛰어넘는 뮤지컬 `수천`. [사진 제공 - 가극단 금강]

천 오백년의 역사를 오가며, 때론 부부로, 때론 부녀로, 때론 모자로 대륙에서의 역사를 살아가는 장하독과 수천을 통해 광활한 대지를 호령하던 고구려를 출발점으로 분단의 시발이 된 일제시대까지를 하나로 꿰뚫어 놓은 수천.

수천의 마지막 장면은 오늘의 분단을 극명하게 내보임으로써, `대지 위의 경계`가 없던 고구려를 통해 경계를 허물고 고구려의 하늘을 지켜야 한다는 통일 메시지를 강력하게 전달한다.

남자 주인공 장하독 역을 훌륭히 소화해낸 송순규(30)씨는 "좁은 사관이 아니라 호방한 대륙의 기질을 배워야 할 점"이라며 "분단된 한반도에서, 자기 것만 찾으려는 세상에서, 넓은 마음으로 세상을 살려는 자세를 많이 배웠다"고 말했다.

▶호태왕(광개토대왕)의 장쾌한 고구려 정신이 수천의 기저
에 흐르고 있다. [사진 제공 - 가극단 금강]

이해학 자주평화통일민족회의 상임의장은 "고구려인들의 인고와 기백이 경계를 넘어서는 소통정신 즉 해방정신이 우리를 감동시킨다"며 "통쾌한 맛을 자긍심 속에서 가질 수 있다"고 평했다.

"감동적이어서 울었다"는 김보연(33)씨는 "민족적 자부심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며 "수천의 아이를 받아들며 장하덕이 `네가 장하덕이다`하는 장면이 모든 걸 함축하는 듯해 가장 인상적이었다"고 말하고 "서양의 뮤지컬을 따라가려고만 하지 않고 우리 가극의 명맥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이 느껴져 가슴이 뭉클했다"는 소감을 밝혔다.

한편 이날 공연의 첫 무대는 특별히 가극단 금강의 창립 대표인 고 문호근 선생 2주기를 기려 고인이 생전에 낭독한 문익환 목사의 시 `꿈을 비는 마음`이 장식했다.

수천 공연은 오는 28일까지 평일에는 7시 30분, 토.일요일에는 4시와 7시에 예술의 전당 토월극장에서 열리며 티켓 예매 전화는 1588-7890, 1588-1555.


<미니인터뷰> "우리는 왜 성서가 없는가?"- 연출자 김정환 


수천의 연출자 김정환.
대표적인 386세대 문화예술 운동가로 고 문호근 선생의 뒤를 이어 가극단 금강의 대표를 맡고 있는 그를 공연을 전후해 만나 보았다.

▶연출자 김정환.
[사진 - 통일뉴스 왕준영기자]
□ 1차 공연 때와 다른 점은?
1차 공연 때는 호태왕의 이야기를 통해서 했다면 이번 공연에는 역사속에 박제화된 이야기가 아니라 친근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수천을 통해 자기의 것으로 느끼도록 하는데 중점을 뒀다.

□ 재공연 첫 무대를 마친 소감은?
첫 공연 치고 관객들과 호흡이 많이 된 것 같다.
원작이 `대륙의 꿈`이라는 시극이었는데 이제 시극에서 음악극으로 어느 정도 꼴을 갖췄다.
이번에 노래 두 곡을 추가했고, 장화덕이 부른 `그대와 함께 남으리라`는 수천의 테마곡도 생겼다.

□ 멀티 스크린을 통한 무대 효과가 독특해 보인다.
눈이 내리고 안개가 낀 모습 등을 조명과 영상효과로 보여주는 것이다.
원래 북쪽에서 오래전에 사용해왔는데 요즘은 보편화되었다.

□ 고구려와 민족을 강조한 것 같다.
국수주의적인 것이 아니라 성경에서 보는 것처럼 자기의 모국어로 자기의 서사적 얘기를 갖는 민족은 힘이 세다. 왜 우리는 성서가 없는가? 우리가 먼저 근사하게 우리의 이야기를 가지고 분단의 족쇄, 통일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이스라엘은 애굽을 탈출하여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갔지만 우리는 거꾸로 호태왕을 통해 정신적으로 한반도를 넘어서 우리의 신화의 이야기를 통해 긴 세월을 썩 뛰어넘는 것이다.
특히 최근 이라크 전쟁과 북핵이 불거진 상황에서 평화의 문제를 함께 다루려 했다.

 

고 문호근 선생 2주기 기념 출판기념회 열려

한편 공연이 열리기 전 오후 5시 30분, 예술의 전당 `휘가로 그릴`에서는 `문호근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주최한 고 문호근 선생의 문집 `하나가 된다는 것은` 출판기념회가 배우 명계남씨의 사회로 열렸다.

▶23일 고 문호근 선생 2주기를 기념해 고인의 문집 `하나가 된다는 것은`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사진 - 통일뉴스 왕준영기자]

고 문익환 목사의 장남이자 연출자인 문호근 선생 2주기를 기념해 열린 이날 출판기념회에서 이건용 `문호근을 생각하는 사람들` 공동대표는 "와주셔서 감사하다. 여기 모인 사람들의 면면을 보면 음악가, 연극인, 시인, 정치인, 통일운동가, 문화운동가, 국악인 등이 망라돼 있다"며 "문호근 선생이 얼마나 좌충우돌로 살아온 것인지 보여준다"고 인사했다.


고 문호근 문집, `하나 된다는 것은`

▶[사진 - 통일뉴스 왕준영기자]

`감옥에 계신 문익환 목사에게 아들 문호근 선생이 보낸 편지 모음`이라는 부제로 고인의 2주기를 맞아 사계절 출판사에서 출간된 `하나가 된다는 것은`.
1987년부터 1993년까지 감옥을 제집 드나들 듯 오간 부친에게 쓴 편지글 하나 하나에는 고인의 일상과 따스한 생각들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북한 음악인들과 대화하던 자리에서 제가 우스갯소리 비슷하게 "남북교류의 총연출이 필요하다"고 한 일이 있는데, 연출producing 작업 최고의 구상이 아니겠습니까?
좀 엉뚱해서 과대망상 같을지도 모르지만, 예컨대 8월을 전 민족적 지역주의 청산의 대축제로 발전시켜 나가겠다는 구상을 누군가가 내오고, 그 것을 꾸준히 현실화시켜 나갈 수 있다고 보는 거지요. (1992년 6월 7일 편지글 중)

이건웅 대표는 "작년에 친구들이 공연을 했는데 올해는 후배들이 책과 공연물을 만들었다"며 "각 곳을 변화시키는 삶을 살아온 문호근 선생의 삶을 생각하며 우리 삶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기 바란다"는 취지로 고인을 추모했다.

 

유가족을 대표해 고 문호근 선생의 동생 배우 문성근씨는 감사의 인사를 한 뒤 "사람이 사람답게 만드는 세상을 위해서는 사시가 아니라 눈을 똑바로 떠야 한다"며 "특히 요즘 가슴이 많이 아프지만 역사는 차근차근 전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고 문호근 선생의 동생 문성근
[사진 - 통일뉴스 왕준영기자]

문성근씨는 "민과 관이 할 일이 따로 있다"며 "힘들고 어려운 때 문재린 목사님의 `모든 것이 합동하여 유익하게 될 것이다`라는 말씀을 떠올린다"며 "가족들의 부족함을 꾸짖어 주고 이끌어 주면 고맙겠다"고 인사했다.

고인의 어머니이자 고 문익환 목사의 미망인인 박용길 장로는 "아쉬움이 남지만 주위에서 잊지 않고 생각해 주니까 고맙다"며 "같이 일하던 분들과 후배들이 아들 몫까지 해낼 것이라고 믿고 위로를 받는다"고 아픈 마음을 달랬다.

미망인 정은숙씨는 "93년도 금강을 만드는 과정이 너무 힘들었다"며 "너무 바탕없이 정열만 가지고 모든 걸 힘들게 해왔다"고 회고하고 "10년째 후배들이 마찬가지로 어려운 상황에서 공연하는 것에 감사하고 했던 일들이 역시 보람있고 역사에서 누군가 해야할 일 했구나 싶지만 아득바득한 모습이 가엾다"며 "지금 생각하면 너무 힘든 세월만 살다갔다"고 안타까워했다.

▶고 문익환 목사의 미망인이자 고 문호근 선생의 어머니인 박용길 장로가 출판기념회에
참석했다. [사진 - 통일뉴스 왕준영기자]

이날 출판기념회에는 시인 원창연과 연출가 김정환씨가 고인의 문집 일부를 낭독하기도 했으며, 김용태 민예총 부이사장과 고인의 고등학교 동창 김정인씨가 인사말을 하기도 했다.

참가자들은 출판기념식을 마치고 간단한 음식을 나눈뒤 `고구려 뮤지컬 수천`을 관람했다.

고 문호근 선생은 문익환 목사의 장남으로 1946년에 태어나 한국음악극연구소와 가극단 금강을 창단했고 민주화 운동을 위한 각종 공연을 연출했으며, 1998년 예술의 전당 예술감독을 맡아 활동하다 2001년 5월 17일 54세의 아까운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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