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북자 대담 모습
좌로부터 김창수(민화협 정책실장), 정성희(민주노동당 사무부총장), 이옥순(전국연합 대외협력위원장), 김익흥(통일뉴스 취재부장)


1948년 남북 제정당 사회단체 연석회의 이후 최초로 남쪽의 정당 사회단체 인사들이 북의 초청을 받아 방북했습니다. 지난 10월 10일 북한 노동당 창건 55돌 기념행사에 초청을 받아 방북했던 인사들을 모시고, 6.15 남북공동선언 이후 달라진 북쪽의 생생한 모습과 이에 대한 남쪽의 인식변화 그리고 향후 남북관계의 발전을 위한 모색을 주제로 대담을 마련했습니다.

대담자들은 그간 진보적인 정당과 단체에서 활동하면서 북쪽에 대해 상대적으로 편견 없이 있는 그대로를 읽어내려는 균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분들입니다.

대담자들은 이구동성으로 북쪽은 6.15 공동선언 이후 근본적으로 변화했으며, 보다 많은 사람들이 직접 북을 방문해 이러한 변화를 느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민간교류가 대폭 확대되어 남북 칠천만 민족이 서로 동질성을 확인하고 이질적 요소를 존중할 때, 남북 정부당국자들간의 대화도 정상적인 궤도에 올라설 수 있고, 또한 이것이 민족의 숙원인 통일로 가는 바람직한 과정이 될 것임은 자명한 사실입니다.

앞으로 남북이 자유로이 왕래하고 `통일뉴스`도 직접 방북취재할 기회가 와서 독자들에게 생생한 기록을 전하게 될 수 있으리라 기대해 봅니다. <편집자 주 designtimesp=14699>


참석자 김창수(민화협 정책실장)
이옥순(전국연합 대외협력위원장)
정성희(민주노동당 사무부총장)
사 회 김익흥(통일뉴스 취재부장)

사 진 조성현(통일뉴스 사진부 기자)
정 리 김명숙(통일뉴스 취재부 기자)

일 시 2000년 11월 28일
장 소 민주노동당사


◇ 김익흥 : 지난 10월 북한 노동당 창건 55돌 기념행사에 초청을 받아 북을 방문하셨습니다. 정당, 사회단체, 개별인사가 초청을 받아서 북을 방문한 것은 1948년 남북제정당사회단체 연석회의 이후 처음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번 방북이 가지는 의미와 성과를 어떻게 정리할 수 있을까요? 가장 융숭한 대접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민주노동당을 대표하신 정성희 사무부총장께서 먼저 말씀을 풀어주시죠.

◆ 정성희 : 민주노동당이 환대 받았다는 소문이 나 송구스럽습니다. 사실입니다. 순안공항에 내리는 순간부터 의전과 예우 등 특별한 대접을 받았는데 정당 대표로는 처음으로 방북했다는 점과 민주노동당이 이남에서 노동자의 이해와 요구를 대변하는 진보정당이라는 이유에서 환대를 받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52년만에 자주교류의 큰 디딤돌

1948년 4월 남북 제정당사회단체 연석회의가 있었는데 당시 정세는 단독 단선정부 수립으로 분단영구화 길목에서 그 당시 김구, 김규식 선생 등 수 많은 애국자와 단체들이 모란극장에서 연석회의를 하며 통일정부수립 결의를 다졌습니다. 지금은 그때와 정세가 다른 측면이 있지요. 52년만에 처음으로 남쪽 사회, 정당대표가 평양을 방문했는데 지금은 6.15 남북공동선언 이후 남북관계가 호전되고 북미관계가 정상화되는 상황에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역사적인 6.15 남북정상회담, 남북장관급회담 등은 모두 정부당국자간 회담으로 이루어졌죠. 7천만 겨레의 의사를 집약시키고 통일의 의지를 다져나가는데 있어서는 당국뿐 아니라 남북 제 정당 사회단체 개별인사 등 통일의 의사를 대변할 수 있는 분들이 정책적으로 북측의 제 정당 사회단체와 교류해서 통일 의지를 고취시키고 교류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명목상의 이유는 북한 노동당 창건 55돌 행사에 참관하는 것이었지만 실제로는 남쪽의 제 정당 사회단체가 52년만에 한 자리에 모여, 민간의 자주적 교류의 문을 열고 부문간 자주교류의 내용과 폭을 확대하기 위한 디딤돌을 놓았다는 측면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 김창수 : 저는 민화협 대표자격으로 방북한 것은 아니지만 민화협의 입장에서 보면 그간 북쪽은 남쪽 민화협에 대해 6.15공동선언 이전까지는 관변단체로 치부해 대화할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6.15선언 이후에는 남북 민화협이 연대해서 6.15선언을 실천하는데 앞장서자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초청을 주관한 북측 사람들이 민화협 관계자들이어서 자연스럽게 구체적으로 남북 민화협이 6.15선언을 실천하는데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해 제안을 주고받았습니다.

방북의 의미를 살펴보면 세 가지로 얘기 할 수 있겠는데, 첫째로 노동당행사에 참여함으로써 북을 집약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죠. 올 신년 북한의 공동사설을 보면 노동당 창건 55돌 기념행사를 대축전으로 맞이하자는 내용이 있었고, 그만큼 북에서는 많은 노력을 기울여 북한이 가진 모든 사회적 역량을 집중해 준비한 행사를 봤기 때문에 짧은 시간에 보았어도 북한의 사회를 집약적으로 볼 수 있었던 기회였고 북한의 변화를 잘 이해할 수 있었다는 점이고, 둘째로는 모든 일반적 사회단체가 가서 남북정당사회단체들 사이에 자주적 교류를 추진해 나갈 수 있는 하나의 출발점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는 우리가 방북을 한 게 식량을 지원하기 위해 방북한 것도 아니고 노동당 창건 행사에 참여했다는 자체의 의미가 상당히 큽니다. 북한 사람들을 접촉만 해도 간첩이 돼서 수 십 년 간 감옥생활을 했는데 우리는 노동당 창건 행사에 다녀온 것입니다. 남쪽에서 통일운동을 하고 민주화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그래서 가장 중요한 정치적 행사에 남쪽의 운동가들이 다녀왔다는 것 그 자체가 정치적인 큰 의미죠.

◆ 이옥순 : 몸이 아팠었는데 북쪽에서 관심을 가져 줘 너무 고마웠습니다. 밤에도 안내원이 몇시간씩 다리를 주무르는 등 각별히 신경을 써 줬습니다. 국보법이 존재하는 현 상황에서 고려 민항기를 타고 북한을 방문한 것이 무척 감격스러웠고, 이번 방북은 정부 대 정부차원이 아닌 민간차원의 통일운동의 물꼬를 트는 중요한 기회였습니다.

◇ 김익흥 : 초청을 받은 단체와 개인들이 `가냐 안가냐`, `북측의 의도가 뭐냐` 하며 고민도 많이 했고 논란도 많았습니다. 그때의 상황과 심정은 어떠했습니까?

◆ 정성희 : 그때 상황을 말씀 드리면 총 32개 단체와 개별인사를 포함해서 많은 사람이 초청을 받았는데, 문제는 10월 10일 노동당 창건 55돌 기념행사에 참가하는 것이기 때문에 한나라당이나 조선일보로 대표되는 반통일 수구세력이 시비를 많이 걸었던 점입니다. 통일전선전략에 말려드는 것이다, 정치적 색채가 짙다라는 식으로... 국회의원들도 만나고 장관들도 만나는 상태에서 우리를 보내는 것은 틀리지 않지요. 그런데 김대중 정부가 흔들려 처음엔 불허 방침을 내렸습니다.

초청 대상자 모두가 함께 가지 못한 것은 아쉬워

▶정성희 (민주노동당 사무부총장)

그러다가 조건부 허용을 했는데 정치행사에 참여하면 안된다. 한총련, 범민련 일부단체와 단병호, 권영길 같은 인사는 안된다는 식으로 조건을 달아서 보내준다고 했죠. 그런 과정에서 일부 시민단체들이 고민이 많았죠. 통일의 열정은 있지만 통일운동에 직접 끼여들지는 못해 왔던 단체가 예민한 정세 속에서 가야 될까? 아니면 이번에 쉬었다 교류가 확대될 때 가는 게 좋지 않을까? 고민과 갈등이 많았죠. 처음에는 소극적이었습니다. 전국연합, 경실련 통일협회, 민주노동당 등 13개 단체가 `강한 의지를 가지고 가야겠다. 55돌 행사는 단순한 기념행사가 아니라 이북 동포한테는 큰 명절이기 때문에 명절에 오고 가는 거야 민족 전래의 전통 미풍양식 아니냐? 가는데 큰 문제가 없다. 오히려 갔다오면 사회·제정당이 처음으로 자주 교류의 물꼬를 트는 것으로 역사적으로 큰 의미가 있다` 이렇게 해서 시민단체들도 설득을 해서 나중에 가는 것으로 결정했습니다. 그런데 초청 받은 시민단체가 전부 가지는 못했죠. 그 점에서 아쉬움이 있지요.

수구세력의 봉쇄나 발목 걸기는 늘 있어 왔고 앞으로도 있을 것이란 의미에서 정부도 이런 수구세력의 눈치를 보지 말고 소신껏 남북화해협력 정책을 펴야 할 것이고 특히 시민단체들은 시민들의 요구와 이익을 대변하는 단체로서 북한에 가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국민의 이익, 시민의 이익이 통일의 문제와 따로 나눠서 생각할 수 없는 문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앞으로 적극적으로 교류에 나서야 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 김창수 : 노동당 행사가 북에서는 잔치라고 하지만 조선노동당이 남측 사회에서 갖는 정치적인 무게 때문에 시민단체들이 자유롭게 행동하기가 어려운 게 사실이었습니다. 실제로 시민단체에서 많은 고민을 했는데 저는 특별히 어떻게 하면 가도 괜찮다는 논리를 만들 것인가가 고민되었습니다. 그리고 북쪽을 다녀와도 아무런 문제가 없고 남쪽에서 국보법에 구속되는 사람들이 북한 노동당 행사에 다녀와도 남북관계에 아무런 문제가 없고, 또 남쪽 체제를 유지시키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들을 많이 했습니다.

가도 괜찮다는 논리를 어떻게 찾을까 궁리하던 끝에 실제로 북에 많은 변화가 일고 조명록 차수의 방미가 예정되어 있었고 우리가 평양에 가는 것과 날짜가 겹쳤죠. 그래서 저는 조 차수의 방미는 북미관계의 커다란 변화를 예고하는데 그 방미 결과를 모르는 상태에서 평양을 다녀오는 게 혹시나 남한의 보수여론에 정치적으로 휘말리지 않을까 염려할지는 모르지만, 우리가 갔다오면 북미관계가 긍정적으로 변화할 것이기 때문에 그런 것을 염려하지 않은 상황이 될 것으로 내다보았습니다. 정세가 이렇게 변화하고 있는데 민간단체들이 적극적으로 정세 변화에 참여하는 게 필요하다는 논리를 만들어 냈고요. 그러니까 남북교류해야 한다, 이런 결과를 만드는 게 필요하다는 판단 때문에 다녀와야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 이옥순 : 전국연합은 강하게 가야한다고 주장했고 또 어떻게든 갈 계획을 갖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당시 네 분이 북경을 경유해 가려다 다시 돌아왔습니다. 포기할 수 없는 원칙을 세우고 어떻게 대동단결해 방북할 것인가가 관건이라고 보았습니다.

◇ 김익흥 : 우리 속담에 `백문이불여일견`이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실제로 6.15 이전과 이후가 변했습니까? 이번 방북 후 북한사회의 변화에 대해 정리를 해 본다면?

◆ 김창수 : 한마디로 조직화된 사회입니다. 북한에서는 `일심단결`이라는 용어를 많이 사용하는데 실지로 노동당 행사를 지켜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보지 않은 상태에서는 획일이라든가 강제동원이라든가 이런 연상을 할지 모르겠습니다만, 가서 느낀 것은 한마디로 사람들이 돈을 준다고 한 것도 아니고 누가 시켜서 되는 것도 아니고 저것이야말로 전체적으로 조직화된 것에 기초해서 나오는 자발성이라 보았고, 또 그런 것을 북한 사회에서는 일심단결로 생각하겠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북쪽은 일심단결로 조직화된 사회

▶당창건 55돌 기념 매스게임
10월 12일 평양 5.1경기장에서 15만명이 관람하고 10만명이 참가한 매스게임 모습. [출처:시사저널, 11월 9일]

우리가 피상적으로 외부에서 느꼈거나 바라 봤던 혹은 직접 보면서 일심단결된 모습을 보았기 때문에, 저 사회는 한쪽에서 뭐라고 한다고 해서 그 사회가 나가고자 하는 것을 바꾼다거나 변경한다거나 하지는 않을 겁니다. 일치단결된 힘으로 자기네가 하고픈 지향을 찾아나갈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 이옥순 : 백 명도 한 명처럼, 만 명도 한 명처럼 움직이는 힘이 대단합니다. 또한 지도자를 흠모하는 마음이 대단한데 우리 시각으로 보면 1인 독재고 지나치다고 느껴질텐데 북쪽사람들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예전 북한에 대한 정보는 상층에서 오고 갔던 제한된 정보로 지나치게 왜곡되어 있고 실지로 보니까 다른 각도로 보이고 지난 수년간 식량사정 어려웠던 시기를 `고난의 행군`으로 부르며 극복한 것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저는 처음 갔기 때문에 보고 느낀 것을 그대로 말하는데 어쩌면 북한을 찬양하는 듯한 모습으로 비춰질까 우려됩니다.

◆ 정성희 : 북녘 동포들의 얼굴 표정이 너무도 밝아요. 밝고 명랑하고. 경제사정도 호전되고 무엇보다 고난의 행군 시기에 `밥 단련 많이 했습니다`, `쌀 단련 많이 했습니다` 등 어려움을 단련의 기회로 삼고 낙관주의에 젖어서 즐겁게 돕고 사는 분위기를 느꼈지요. 예를 들면 이런 구호가 있습니다. `오늘을 위한 오늘을 살지 말고 내일을 위한 오늘을 살자.` 지금 당장 어렵고 하더라도 경제적으로 잘 살 뿐 아니라 사상적으로 정치적으로 강국이라는 자부심이 대단합니다. 앞으로 잘 살고 부강한 나라가 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희망, 기대 등 부푼 모습이 얼굴에 나타나 있습니다. 또 한가지 예를 들면 백만 군중 횃불시위 전 이른바 야회(夜會)라고 하는데, 밤에 춤을 추는데 춤출 때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데 놀기도 하고 앉아서 담소를 나누는데 지극히 자연스럽고 재밌고 즐겁게 행사에 참여하는 모습 속에서 북한이 변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한마디만 더하면 우리가 북한을 전체주의니 독재니 얘기하는데 저는 전체주의와 집단주의와의 차이가 무엇인가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전체주의 하면 히틀러나 나찌, 파시즘을 생각하는데 소수의 이익을 위해서 강압적 수단을 동원하는 게 전체주의일 것이고, 집단주의사회는 다수나 전체의 이익을 위해서 자발성에 기초해 조직되어 있는 사회가 아닌가 나름대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북한을 전체주의로 몰아 부쳐 북한 사회를 설명할 수 있겠는가? 얼굴 표정이 밝고 명랑하고 자발적이고 그러면서 굉장히 조직되어 있는 게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북한이 소수 몇 사람을 위해서 움직이는가? 그건 아니다. 그렇다면 북한은 전체주의 사회가 아니고 집단주의 사회가 아닌가 하는 결론이 내려집니다.

◇ 김익흥 : 정말로 6.15 남북공동선언 이후 북한이 변화했을까요? 통일 정책이란 측면에선 변화했을 수 있겠지만 북한의 태도는 일관했던 것은 아닐까요? 북한의 변화를 말하는 것은 남쪽의 일방적인 시각은 아닌가요?

◆ 김창수 : 북쪽 주민들의 남쪽 사람들에 대한 시선이 굉장히 따뜻해졌습니다. 과거에는 남북이 터놓고 얘기하는 분위기가 아니었는데 6.15공동선언 이후 터놓고 얘기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졌습니다. 동포애 때문에 남쪽 동포에게 잘해주는 그런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6.15 남북공동선언 이전에는 남쪽 사람들이 미국을 앞세우고 있었기 때문에 남쪽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제는 그런 감정이 없어요. 실제로 주체사상탑을 다녀오는 길에 사람들을 만나 남쪽에서 왔다고 인사를 하면 반갑게 인사하고 사진을 찍어달라고 하면 선선히 응해주는 등, 가는 곳마다 손을 흔들어 주고 따뜻하게 대해줬습니다.

과거엔 좋지 않은 감정 내비쳐, 이번에 따뜻한 시선

▶김창수 (민화협 정책실장)

북한은 통일이라는 게 매우 중요한데 6.15공동선언 이후에 정말 통일이라는 것이 이루어질 수 있는 가능성으로 그들에게 다가섰기 때문에, 남쪽 사람들과 함께 통일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들을 하고 따뜻한 시선을 보내 주었습니다. 그런데 남쪽은 북쪽 사람들에게 그렇게 따뜻한 눈빛을 보내봤는가 반문하고 싶을 정도입니다. 그래서 과거와 달라졌다고 생각하고, 물론 제가 만난 사람들이 제한적이었기는 하지만 통제는 없었고 야시장을 다녀온 사람도 있었습니다. 실제로 변화했다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 김익흥 : 북측이 방북단을 정치적으로 이용할 것이라는 일각의 견해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북측에서는 방북단의 소식을 전하지 않아서 오히려 북에서의 방북단 활동이 남측에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 김창수 : 마중을 나온 사람이 북한 범민련 사무처장이었습니다. 그분이 했던 첫마디가 "서로 부담 없이 합시다. 잔치집에 놀러 왔으니 잔치구경 잘하고 가시라"였습니다. 그런데 남쪽에서 통일운동하는 사람들이 주체사상탑이나 금수산 기념궁전을 한 번 보고 싶은 욕심이 생겨 말을 했더니 "여러분들은 현재 여야가 팽팽하게 대치한 가운데 방북했다. 그리고 앞으로도 또 와야 하기 때문에 서로 부담 없이 편하게 하자"고 말해 남쪽으로부터 정치적으로 이용했다는 식의 비난을 살 그래서 남북관계에 악영향을 주는 일은 안된다는 판단을 했으리라 생각됩니다. 여러 부분에 굉장히 배려를 많이 했고 깊게 생각해서 처신했다고 생각합니다. 금수산 기념궁전 등은 방문하지 하지 않고 상황에 맞춰 애국열사릉을 둘러보는 등 비정치적으로 보이는 일정으로 대신했습니다.

◆ 정성희 : 작년 남북노동자 축구대회로 방북했을 때 15만 인파가 나와 환영을 했는데 사실 노동당 창건 기념식 초청 방문이 작년 노동자 축구대회보다 더 큰 역사적 의미를 갖는데 이번에도 사실은 30만쯤이 나와야 정상적인데 왜 그러지 않았는가? 이는 북한이 정책적으로 크게 보도하면 서방의 언론이나 남쪽의 언론에게 전해지고 `그것 봐라, 북한이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않느냐` 등 빌미를 줄까봐 지극히 축소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민간자주교류의 활성화를 위해 5박 6일 동안에도 언론에 보도를 하지 않고 돌아올 때 간략하게 보도하는 등, 6.15공동선언 이후 조성된 정세를 소중히 생각하고 발전시켜야 하기 때문에 여기에 어떤 하자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더 주목할 것은 그러한 정치적 고려가 모든 부분에 세밀하게 관철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 김익흥 : 노동당 창건 55돌 기념행사를 참관한 느낌은 어땠습니까? 또한 이번 행사를 통해 북에서 보여주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그리고 북측 주민들은 노동당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 정성희 : 모든 행사가 백 만이 하고 육십 만이 하고 십 만이 집단체조를 하고 있지만 한 사람 같이 하는데, 규모의 장대성을 떠나 일상 시기에 단결력, 조직력, 생각의 일치 등이 되어 있지 않고서는 훈련을 많이 했다고 될 것 같지 않아요.

우리가 공연 전문가들과 함께 가지 않았습니까? 함께 간 민예총의 박인배 기획실장 등 전문가가 볼 때도 돈으로 환산하면 300억 이상이 드는데, 이 행사는 돈으로 환산하기 어려울 정도로 연출력도 뛰어나고 규모의 거대성도 대단하다고 합디다. 아마 그런 요소는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단결력, 조직력, 생각의 일치가 뒷받침한 것 같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집단체조가 인상에 깊었습니다. 집단체조는 예술공연을 겸한 것이었는데요, 전력난 해소과정을 보여주는 체조에서 인간 풍차를 만드는데 자신들이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했는가를 보여주려고 했고 매우 감동스러웠습니다.

또 글자로 `내게 그 어떤 변화도 바라지 말라`고 쓰면 아래쪽에서는 미사일 쏘는 장면을 연출하는 등 외세에 의해 내가 변하지 않는다는 뜻을 내포하는 느낌을 받았고... 이렇듯 북한의 지난 55년의 과정을 백만 군중시위의 구호에서도 육십만 청년학생 횃불시위에서도 보여주고, 집단체조 예술공연 등에서도 수많은 우여곡절을 거치면서 어떻게 극복했는가를 보여주려고 했던 것 같아 상당히 인상깊었습니다.

◆ 김창수 : 어떻게 그런 것들이 가능했는가? 입을 다물 수 없는 장면이었어요. 횃불 시위가 있기로 한 날 비가 와서 연기가 됐어요. 그런데 다시 하기로 했는데 그 많은 인원이 다 모여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게 하도 신기해 물어봤죠, "누구한테 연락 받고 다 모였어요?" 했더니 북쪽 분이 "그거는 여기 와서 살지 않으면 모릅니다"하고 답하더군요. 우리 사회는 모두 조직화되어 있다, 모두가 조직원이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대답해 대단하다고 느꼈습니다. 그런 조직의 한가운데는 노동당이 존재하고 북에서는 노동당을 어머니 당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어렴풋이 알겠더라고요.

남쪽에서는 당이 제 기능을 못하니까 선군정치를 하는 것 아니냐 이런 소리를 많이 하는데 단적으로 노동당 창건 55돌 기념행사에 군이 앞장 서 대대적으로 참여한 그 자체만으로도 당이 제 기능을 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고, 당 행사에 군대가 열병식을 하는 것을 볼 때 당과 군의 관계가 정상적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노동당은 어머니 당

◆ 정성희 : 북한 사람들은 노동당을 정말로 어머니 당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이 어머니가 자식들에게 어떠한 태도로 사랑하는가? 넉넉한 품으로 의식주를 해결해 주고 국방 등 모든 문제에 있어 당이 해결해 주고 있어 믿고 따른다는 것이죠.

안내원 말로는 남한이나 외국인들은 도저히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예를 들면 그 어려울 때 한번도 빠지지 않고 어린 학생들에게 콩우유를 주었대요. 그러면 어린 학생들이 볼 때, 우리 아버지는 날 굶길 수도 있는데 장군님은 매일 우유를 준다. 그래서 아이들이 집에 있기를 싫어하고 학교에 가고 싶어 한데요.

당이 의식주를 해결해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태도도 중요한 거지요. 예를 들어서 당원에게 어머니인 노동당이 특별한 계급으로 목에 힘주고 자식(당원)을 대한다면 이런 어머니는 빵점이다. 북한에서는 어머니(노동당)가 희생하고 헌신하는 사람으로 인식되어 있다. 이런 것은 한 두 번 다녀와서도 이해가 잘 안 되는 것이지요. 체험하지 않고서는 정말 이해하기 힘들 겁니다. 이런 것은 어떤 교육에 의해서 지도자를 존경해야 한다 그런 것이 아니고 생활적으로 결합돼서 나타나는 거라고 봅니다.

◆ 이옥순 : 과거에 우유가 충분치 못해 어린이들에게 몇 살 때까지 우유를 먹일 것인가라는 문제가 있었을 때 김일성 주석은 어린이가 스스로 알아서 어린 동생을 위해 양보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질 때까지 우유를 공급하라고 결정했답니다. 체험하지 않은 우리의 사고로는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죠.

제가 암으로 아파서 병원에 갈 일이 있었는데 저를 위해 암전문 의사가 조직되어 있었습니다. 군민이 일치하는 느낌을 받았어요. 남한과 달리 모든 의료에 대한 것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었고요. 집 문제도 식구 수에 따라 배당이 이루어진다고 하고요 제대 군인도 당에서 일자리를 배치해 주는 등 당이 모든 걸 해결해 주는 구조였어요. 동네 상점도 마을 인원수에 맞게 꼭 필요한 것 전달할 수 있는 가게로 적절하게 배치되어 있고요. 이렇게 필요한 걸 다해 주는 당인데 북한 사람들의 입장에 본다면 어찌 섬기지 않겠어요

북한 사람들은 모든 것이 다 당 조직을 통해 이루어지니까 주택문제, 직장문제 등 내가 필요한 것을 당이 다 해결해 준다는 생각을 하는 것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계속해서 방북자 대담(2) - 김창수, 이옥순, 정성희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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