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국제관계와 한반도
[저자] 정세진 [출판사] 한울아카데미
미국만큼 자기예외적 오류에 빠진 나라도 없을 게다. `악의 축`들을 인권의 성찬 위에 올려놓고 정의의 심판을 다짐하는 나라. 반면 주둔지에서 자행하는 망나니 미군병사들의 인권유린에는 거만한 묵인을 강요하는 나라. 그래서 미국의 일방주의에 묵묵히 고개를 숙여야만 하는 약소국들이 뒤돌아 하는 불평이 `깡패론`이다.

그러나 끓는 분노의 한편으로 우리의 `제 목소리` 내기를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지금 미국의 일방주의와 오만함을 거친 육두문자로 속시원하게 두들겨 패주고 싶어하는 목소리가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미국의 주먹이 `든든한 안보`라고 믿는 국민의 신념도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

문제는 이 두 목소리 모두 우리의 분노와 안보에 대한 근본적인 치유책을 제공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방법과 대안 부재의 구호가 우리의 분노를 대신해 줄 수 없듯이 묵종의 동맹을 안보라고 맹신하는 것도 문제인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린 과거의 이분법적 시각에 천착해 미국을 바라보는데서 새롭게 우리 시각의 논리와 지향점을 모색해야할 필요를 느끼게 된다.

<동아시아 국제관계와 한반도-새로운 평화 모색>(한울아카데미, 2002)의 저자 정세진 교수는 말한다. `자아준거적 맥락에서 탈냉전이 어떤 지표와 지향점을 가지고 있는지 우선 파악해야 한다`고 말이다. 그 속에서 미국은 과연 우리와 어떠한 연관관계를 맺고 있는가. 다소 상투적인 한미관계에 대한 논법이 전개될만한 서두일지 모른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건 데 이 이상의 절실함도 없어 보인다. 우리를 둘러싼 국제현실을 우리 정부나 우리 시민사회의 의지와 목표, 그리고 노력과는 무관한 것으로 보는 소극성과 식민성을 무슨 말로 둘러댈 수 있겠는가?

지금까지 비릿한 외국 이론에 빗대어 한반도를 보는데 익숙해 있던 우리 학자들을 보자. 우리의 바램과 현실을 담아내기 보다는 `힘`의 한반도 규율을 마치 우리가 인내해야할 당연한 것들로 논파해 오지 않았는가.

이쯤에서 이 책 근저에 흐르는 `우리의 관점`이라는 것이 단순히 `렌즈 바꿔끼기`가 아닌 우리 발상의 근본적 전환을 염두에 둔 것임을 눈치채게 된다. 그래서 그런지 이 책은 이론적 현란함을 자랑하려는 의욕에 치여 외국 참고문헌 각주 달기에 바쁜 기존의 책들과는 다르다.

가령 그는 MD망의 편입이 "한국 국민의 동의 없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한국 내의 정치적 전제 조건으로서 미국 측에 인식시키는 것을 `우리의 큰 원칙`으로 생각해 봄직"하다는 논법을 편다. 이른바 한미동맹관계의 틀 내에서도 향후 질적 변화를 잉태할 수 있는 나름의 `제 목소리` 내기를 시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저 미국의 일방성에 무조건 함몰되기보다는 그 자체의 관성 내에서 우리가 간과해 왔던 `변형 가능성`을 생각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정 교수의 주장은 한미관계에 대한 현실적인 접근과 함께 우리 대응과 접근시각의 다양화를 요구한다.

또 한편으로 9.11테러 이후 강화되고 있는 미국의 일방주의와 이것의 한번도적 함의는 물론이고 미국 내 주류 이데올로기의 투영으로서 `중국위협론`의 허상과 속셈을 논하면서 저자는 냉철한 비판의 끈의 놓지 않는다. 우리가 아닌 `외부`가 규정하고 재단하는 일방적 틀을 통해 사유함으로써 오는 오류에 대한 경고가 그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미국의 군산복합체 등이 과장시키고 있는 `북한위협론`이나 부시 정부 들어 탄력을 받고 있는 MD문제 등 외부가 규정하고 주도하는 우리의 현실을 우리의 공정한 평가잣대와 대응책을 통해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차세대전투기(FX)사업문제에서 다시 한번 드러난 복잡한 국내외 역학관계를 분석하면서 이번 논란을 `국방정책 일반에 대한 국민적 동의절차가 보다 질적으로 심화되어야 함을 강력히 시사한 것`으로 평가한다. 이는 곧 `관성적인 한미관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한국 사회 일반의 역량과 직결되는 문제`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밖에 이 책은 동아시아 국제관계에서 미국의 정책이 갖는 외연과 내포에서부터 주한미군 문제, MD문제, 미국의 대북정책 결정구조, 한반도 군축문제, 남한의 통일, 외교정책, FX사업문제 등 촘촘하게 우리의 일상과 관련된 된 주요 사안들을 차분히 분석해 내고 있다.

또 이 책의 후반부에서는 북한 체제이행 문제를 사회주의적 색깔의 탈색 문제로 보고 이에 따른 주요한 정치사회적 변화 양상을 심도있게 조망하고 있다. 이를 통해 현재 북한의 어려움이 글로벌 시대의 대내외적 환경 속에서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를 전망하고 있다.

최근 들어 뿐만 아니라 늘 일방적 묵종과 굴레에 쌓여 있는 한미관계의 틀은 그 시민사회의 성장만큼 고통스럽기 그지없다. 관성적 한미관계의 문제점을 국가차원의 정책변화로 일거에 뒤바꾸어 놓기를 바라는 기대의 저변에 우리 사회를 옭아매고 있는 정서적 굴종과 분노의 이중성을 직시해 보자. 한미관계의 변화는 `우리의 관점`을 요구한다. 바로 이런 문제의식에서 수많은 논의 단초를 바로 이 책으로부터 우린 읽어 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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