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수(민화협 정책실장, 통일뉴스 편집위원)



탈냉전 이후 전세계에서 미국의 유일패권이 관철되고 있다. 또 미국의 패권에 대한 저항도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세계평화운동단체들은 대인지뢰금지협약 가입을 미루고 있으며, 18세 이하 소년병의 징집 반대에 동의하지 않으며, 포괄적 핵실험금지 협약을 비준하지 않고, NMD-TMD와 같은 미사일방어계획을 추진하여 세계를 다시 군비경쟁의 수렁으로 몰아 넣는 미국의 군사정책을 세계평화를 위협하는 요소로 진단한다.

한국에서도 주한미군범죄 근절, 한미행정협정 개정, 매향리 국제사격장 폐쇄 등 미국의 패권적인 지위에 대한 저항이 거세지고 있다. 주한미군이 한반도에서 성역과 같은 지위를 보장받아온 것은 종속적인 한미군사관계에서 비롯된다. 한미상호방위조약으로 종속적인 한미군사관계가 제도화되었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은 공산주의의 위협에 대항하는 것을 목적으로 1953년 10월 1일 조인되어, 1954년 11월 17일 비준 발효되었다. 이 조약에 대한 전통적인 평가는 미국의 대한 방위공약을 강화하는 의미를 지닌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로 한국군의 대미의존은 구조화되었고, 이 조약의 영향으로 한국전쟁 중에 미군에 이양된 한국군대에 대한 작전통제권이 휴전 이후에도 여전히 미군이 장악하여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1953년에 체결한 한미상호방위조약을 모태로서 1954년 한미합의 의사록, 1966년 한미 주둔국 지위협정(SOFA), 1991년 한미 전시지원협정이 체결되어 한미사적 불평등성은 법적으로 보장되기에 이른다. 자주적인 평화통일과 바람직한 한미관계를 위해서 이와 같은 불평등한 한미군사관계는 재검토되어야 할 때가 되었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은 불평등한 한미군사관계를 제도화하고 있는 출발점이다. 따라서 한미간의 불평등은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재검토를 통해서 궁극적으로 해소될 수 있다. 리영희는 `새는 좌우로 난다`라는 저서에서 "한국전쟁 휴전성립(1953년)부터 오늘날까지 40년간은 `한미상호방위조약 체제하의 대미 군사기지국가` 시기라고 말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1989년 이후부터는 한국이 미국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율성을 회복하는 시기이지만 "양국관계의 고차적 구조는 아직도 한미상호방위조약의 불평등적 기조 위에서 운영되는 현실에는 변함이 없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제 변화를 위한 조건이 무르익고 있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은 남북관계의 개선, 북미관계의 개선이라는 최근의 정세에 맞게 손질해야 한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손질해야 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할 당시의 공산주의의 위협이 현저히 약화되었다. 한국은 이미 중국, 러시아와 국교를 수립하였다. 남과 북은 정상회담을 통해서 평화적인 통일을 약속했고 이를 실천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북한이 자본주의 연구원을 설립하고 사회복지제도가 잘 갖추어진 스웨덴식 모델을 추구하고 있다는 소식도 전해진다. 통상적으로 동맹을 설정할 당시의 목표가 달성되었거나, 공동의 위협이 필요하지 않을 경우 동맹은 해체의 길을 걷게 된다.

둘째, 한미상호방위조약의 한 당사자인 미국이 북한과 대화를 시도하고 있다. 한미동맹의 공동의 위협이라고 할 수 있는 북한도 미국과 관계 개선의 의지를 밝히고 있다. 북미관계가 더 진전된다면 한미동맹의 한 축인 미국은 현재와 같이 북한의 위협을 전제로 한 한미동맹에 대해서 회의를 가지게 될 것이다.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따르면 미국은 자국의 국가이익에 따라서 일방적인 군사조치를 취할 수 있다. 이미 미국은 한국과 충분한 협의없이 1971년에 주한 미 7사단 철수하기도 했다. 북미관계가 진전되어 미국이 북한을 더 이상 적대시하지 않게 된다면 한국의 의지와 상관없이 한미동맹에 변화가 생기는 것은 불가피하다. 이런 상황에 대비할 때가 되었다.

셋째, 국가이익을 보호할 새로운 안보수단을 모색해야할 때이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의미는 점점 퇴색하고 있다. 동맹을 결성할 당시의 위협이 존재하더라도 다른 수단으로 국가이익을 보호할 수 있을 경우 동맹의 가치는 약화되는 것이 국제정치의 현실이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은 전통적인 안보개념에서 벗어나서 남북의 공동안보를 비롯한 다양한 안보수단을 모색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한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은 대미종속적인 안보구조를 21세기까지 연장시키는 부정적인 효과를 가져오고 있다.

넷째, 북미관계 증진으로 주한미군의 지위가 변경되는 것에 대비해야 한다. 북미관계가 증진되면 한미상호방위조약의 개정이나 폐지는 불가피하게 된다. 조약 전문에서는 "외부로부터의 무력공격에 대해 자신을 방위하기 위해 공통의 결의를 선언할 것을 희망한다"고 밝히고 있다. 조약체결 시점이 1953년인 점을 고려한다면 외부로부터의 무력공격에는 북한도 포함된다. 그런데 북한과 미국이 관계 개선을 하게 될 경우 주한미군의 성격에도 큰 변화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주한미군이 평화유지군으로 지위를 변경하여 주둔하게 된다고 하더라도 평화유지군은 중립적인 성격을 지녀야 하므로 주한미군의 주둔 근거인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손질해야 하는 것이다.

다섯째, 21세기에 바람직한 한미관계를 정립해 나가기 위해서라도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손질해야 한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은 한국전쟁 당시에 이승만의 휴전반대와 북진통일을 무마하기 위해서 만들어졌다는 점이 조약체결의 무시할 수 없는 배경이다. 지금은 조약체결 당시에 비해서 괄목할만하게 한국의 국가역량이 성장했고, 한국내에서 북진통일을 주장하는 세력의 영향력이 현저하게 축소된 상황이다.

미국의 랜드연구소와 한국의 국방연구원이 1993년부터 2년간 공동연구한 `21세기 한미안보협력방안`에 따르면 앞으로 21세기에 접근해감에 따라 한미 양국 사이에 상충되는 안보이익과 목표가 점차 증대될 것이라고 한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했을 당시와는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21세기의 바람직한 한미관계를 위해서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재검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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