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은 잊어라

2021년 새해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미국의 새 대통령 조 바이든을 설득할 수 있을까? 지난해는 잊어버려라. 코로나 팬데믹이 지배한 2020년에는 설사 북측이 남측이나 미국이 차린 협상 테이블에 나오고 싶어도 나올 수가 없었다. 코로나19가 창궐했고 북측은 국경을 폐쇄하지 않았는가. 코로나19는 단순히 의학적 역병만이 아니라 국가·국민 간 이동과 소통을 막는 글로벌 ‘가자지구 분리장벽’이었다.

남측이나 북측도 애증으로 점철됐을 트럼프를 잊어버려라. 아직 ‘선거 부정’이라며 불복하고 있지만 트럼프는 지난해 미 대선에서 패했다. 정치적 생명이 끝났다. 그는 퇴장할 것이다. 특히, 북측은 트럼프와의 세 차례 정상회담의 여운이 남아있을 수 있다. 아쉽지만 잊어버리자. 남측도 지난해 남북관계의 상징이 된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라는 악몽을 잊어버리자. 그러나 교훈만은 잊지 말자.

이제 2021년이 온다. 새해에는 1월 초순 북한에서 8차 당대회가 개최되고, 미국에서는 1월 20일 바이든 새 행정부가 출범한다. 그리고 올해는 문재인 정부가 뭔가를 해볼 수 있는 사실상 마지막 해다. 그나마 다행인 건 지난해 말부터 코로나19 백신이 개발돼 접종이 시작됐다는 점이다. 다시 국가 간 이동이 재개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새해 초는 북측의 시간

북측은 지난달 29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22차 정치국회의를 열고 제8차 당대회를 올해 1월 초순에 개최하기로 결정했다. 초순이라 하면 한 달의 초하루부터 초열흘까지의 사이이니, 1월 1일부터 10일 사이가 된다. 최근 호사가들 사이에서 벌써 2일, 4일, 8일 당대회 개최설이 나오던 터다. 그리고 8차 당대회에 이어 1월말에는 최고인민회의 제14기 4차 회의가 예정돼 있다. 연초부터 ‘북측의 시간’이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북측 ‘최고지도기관’인 노동당 대회가 예년처럼 보통 사나흘 동안 열린다면 이 기간에 세계의 이목이 집중될 것이다. 통상 새해 1월 1일에 나왔던 신년사도 아직 나오지 않고 있기에 8차 당대회 총화보고와 결정서가 올해 신년사로 대체될 공산이 크다.

8차 당대회의 기조는 예측할 수 있다. 북측은 지난해 신년사가 된 당중앙위 제7기 5차 전원회의(2019년 12월 28일-31일) 결정문에서 당시 정세를 ‘(북측의) 자력갱생과 (미국 등 국제사회의) 제재와의 대결’로 규정하고 그리고 그 기간이 ‘장기성’을 띨 것으로 내다보면서, 이 같은 정세 타파를 위해 ‘자력갱생의 힘으로 정면돌파전’을 벌일 것을 천명한 바 있다. 한마디로 ‘정면돌파전’으로 표현되는 1년여 전의 선언은 그대로 강령적 지침이 되었고 2020년 내내 북측의 대내외 입장을 상징했다. 1년여가 지난 지금도 상황이 별로 달라진 게 없다. 따라서 북측도 ‘정면돌파전’을 바꿀 이유가 없다. 8차 당대회 기조도 이 같은 흐름을 반영할 것으로 보인다.

그럼 8차 당대회에서는 무엇이 다뤄질 것인가? 김정은 위원장이 지난해 8월 19일 열린 당중앙위 제7기 제6차 전원회의에서 “당 제8차 대회에서는 올해의 사업정형과 함께 총결기간 당중앙위원회의 사업을 총화하고 다음해의 사업방향을 포함한 새로운 국가경제발전 5개년 계획을 제시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듯이, 8차 당대회에서는 기간 사업총화와 향후 사업방향이 정리되면서 특히 ‘국가경제발전 5개년 계획’이 제시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당대회에서 북측 내부문제가 주되게 다뤄지겠지만, 예년처럼 남측이나 미국을 향한 대외 메시지도 당연히 발신할 것이다. 대략 5년 후에 있을 제9차 당대회를 예상한다면 이번 8차 당대회의 결정문은 북측이 5년간 지키고 살아야 할 강령적 지침이자 식량고가 될 것이기에 그 관심이 클 수밖에 없다.

대북 정책을 빨리 세워라, 바이든 미국 행정부

바이든 대통령의 취임을 앞두고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정책과 관련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 답습 여부, ABT(Anything but Trump) 등이 논란이 되고 있다. 2001년 부시 대통령 집권 직후 부시 행정부가 펼친 클린턴 행정부의 정책을 모두 뒤엎는다는 의미의 ABC(Anything but Clinton) 정책처럼 바이든 행정부가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정책을 전면 부정할 것이라는 우려다.

오바마 대통령의 ‘전략적 인내’가 실패한 정책이라는 건 이미 평가가 나 있다. 바이든 당선자가 같은 당 전임 대통령이었고 또 오바마 대통령 시절 부통령이었다고 해서 오바마의 대북정책을 그대로 답습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정치적 반대자였던 트럼프의 대북정책을 전부 버려서도 안 된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과 세 번 만났다. 이 축적이 무시되어선 안 된다.

이런 논란의 와중에 대북 전문가들 사이에서 대체로 일치하는 견해는 대북정책을 빨리 내와야 한다는 것이다. 통상 미국에서 새 행정부가 들어서면 외교안보라인을 꾸리고, 또 여기에서 정책을 논의 확정하는 기간까지 합쳐 5-6개월로 잡는데 너무 길다는 것이다. ‘김정은-트럼프’ 정상회담이 세 번이나 성사됐고 또 합의문도 있는 판에 새롭게 뭘 모색하며 시간을 끌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주목하는 건 바이든 당선자가 대선 후보 시절에 외교 문제 및 대북 문제와 관련해 밝힌 두 가지 메시지다. 하나는 바이든 후보가 “핵 능력 축소에 동의한다는 조건에서 김정은 위원장을 만날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비록 조건이 붙긴 했지만 김 위원장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김 위원장을 최초이자 세 번이나 만난 트럼프의 대북방향과 크게 어긋나지 않으며, 따라서 트럼프의 대북정책을 완전히 버리겠다는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다른 하나는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에 반대해 ‘동맹 복원’을 표방한 것이다.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에 녹아난 국제기구와 국가들이 많다. 미국은 파리기후변화협약에서 탈퇴했고 중국과 무역전쟁을 일으켜 역내 안정을 해쳤으며, 또한 이란과의 핵합의에서 탈퇴했으며 한국과는 방위비 분담금 협상에서 갈등을 빚고 있다. 바이든 당선자의 동맹 중시가 어디까지 적용될지는 모르지만 남측에는 동맹관계를 중시하는 바이든이기에 한반도 문제 해결과 관련해 향후 역할에 여지가 생긴 것만은 분명하다.

문재인 대통령, 바이든을 설득해야

2021년은 문재인 정부가 일할 수 있는 사실상 마지막 해다. 지난해 남북관계 경색국면에다 검찰 개혁과 부동산 문제가 꼬이면서 지지율 하락을 면치 못하다가 올해 들어 임기 말까지 더해 레임덕 현상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모든 최고지도자가 겪는 레임덕이지만 민족문제에 있어서는 레임덕이 있을 수 없고 있어서도 안 된다. 민족문제의 성과는 차기 지도자가 누구든 이어갈 수 있게 해야 한다.

2019년 2월 ‘하노이 노딜’ 이후 북측이 남측에 보낸 눈초리에서 연상되듯 김정은 위원장은 문 대통령에게 서운한 게 많은 듯하다. 다만 문 대통령에게는 제멋대로 행세한 트럼프 대통령이 곧 퇴장한다는 게 위안이라면 위안일 수 있겠다. 여기에다 바이든 당선자는 앞에서도 밝혔듯이 ‘동맹 중시’를 표방했다. 여기에서 문 대통령이 움직일 여지가 생겼다.

문 대통령은 바이든을 설득할 수 있는가? 오늘날 정상 간 대화에서 설득의 전범으로 나오는 ‘김대중-부시’ 간의 일화처럼 말이다. 2002년 2월 한미 정상회담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젖 먹던 힘까지 다해’ 부시 대통령을 설득해, 2000년에 북한을 ‘악의 축’으로까지 지칭한 부시가 도라산역 연설에서 “우리는 북한을 침공할 의사가 없다”면서 “북한과 대화, 인도적 대북 지원도 계속하겠다”고 밝힌 것처럼.

설득의 내용은 바이든에게 조속한 대북정책을 마련하고, 북한문제를 우선순위에 두고 대북협상에 나서라는 것이다. 그리고 협상의 내용은 북한과 미국이 유일무이하게 합의한 2018년 6.12 싱가포르공동성명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 합의문 내용대로 북미 간 ‘새로운 관계 수립’을 위해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대 비핵화’를 향한 대화에 나서라고 설득하는 것이다.

아직 시간은 있다. 1년이면 충분하다. 문 대통령은 바이든을 설득할 채비를 갖춰라.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정책을 북미 싱가포르성명에서 출발하게끔 설득하는 것이 동맹의 역할이자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재가동하는 일이자 그리고 민족공조의 단초를 여는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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