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우(통일뉴스 논설위원)


▶김봉우 논설위원


벌써 시간이 많이 흘렀다. 북녘 인민무력부장과 남녘 국방장관이 제주도에서 만나 군사문제에 관한 토론을 벌인 일이 있었다. 신문보도에 따르면 그 자리에서 북녘 인민무력부장이 외세의 간섭을 받지 말고 민족의 자주적인 힘으로 통일을 이루자고 했는데 남녘 국방장관이 외국을 배격할 것이 아니라 외국과 사이좋게 지내는 것이 중요한 일이라고 응수하였다는 기사를 읽었다.

이런걸 두고 동문서답이라고 하는지 아니면 수준높은 선문답인지 모르지만, 기자가 낱말을 잘못 쓴 게 아니라면 이 토론은 시작부터 아무런 소득이나 합의점을 찾을 수 없게 되어 있었다. 토론의 핵심적인 낱말인 외세와 외국이 같은 말인지 다른 말인지도 모른 채 쓰여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 뜻을 알면서 일부러 뒤섞어 썼다해도 결과는 같다. 완전히 배치되는 두 낱말을 뒤섞어서 핵심적인 한 낱말 `외세`를 거세해 버렸기 때문이다.

외국은 우리가 아닌 다른 국가를 모두 이르는 말이면서 우리가 대등하게 대할 수 있는 국가 일반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에 비해 외세는 우리 내부에 우리 존재를 좌우할 수 있는 힘을 확보하고 있는 특별한 국가를 이르는 말이다. 아르헨티나는 외국이지만 미국은 외세이다. 말레이시아는 외국이지만 일본은 외세이다. 중국이나 러시아는 강국이고 가까이 있지만 외국이다. 우리가 외국과 나쁘게 지낼 필요는 없다. 또 그냥 외국이라면 특별히 나빠질 일도 잘 없다. 사안에 따라서 냉정한 국가이성으로 처리하면 잘 흘러가게 마련이다.

그러나 외세는 다르다. 외세는 우리를 자신의 이익에 봉사하도록 강요하고 그렇게 만들기 위해 우리의 경제, 정치, 문화, 군사 등 기타 온갖 요소에 강한 지배력을 행사해 우리를 자신들의 하인으로 만든다. 이런 외세를 몰아내지 않으면 정상적인 국가로 발전할 수가 없다. 큰 바위에 눌려있는 어린 싹이 잘 자라기 힘든 것과 같은 이치다.

요즘 매향리 국제폭격장 문제니, 한국인 매춘여성 살해사건이니, 공해물질 배출문제니, 미군기지와 전기 수돗물 공짜사용이니, 노근리 양민학살이니, 소파개정이니 해서 미군 주둔문제의 일각이 약간 드러나기는 했지만 그러나 미국문제가 미군문제에 국한된 것도 아니고 미군 주둔으로 생기는 문제도 근본적인 것은 아직 건드려 지지도 않았다.

강대국을 모시다 보면 세상 흐름이 바뀔 때 부스러기를 약간 챙기는 수도 있을지 모르지만 그것은 순전히 요행에 속한다. 한국 대통령은 절차상으로만 보면 한국 국민이 선출하지만 여러 가지 정치기제를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워싱턴에서 지명 내지 인준 받는다고 하는 게 더 정확할 것이다.

근세 제국주의 침탈이 시작된 이래 한국은 자신의 운명을 자신이 결정해 본 적이 없다. 항상 강대국들이 우리 운명을 결정하고 우리는 그런 조처를 당연하게 여기면서 감사한 마음으로 순종해 왔다. 혹시 미국이나 일본에 잘못 보이는 일이 생기지나 않을까 노심초사하면서.

외세가 우리 민족과 강토를 분단하지 않았다면 오늘 우리가 이처럼 힘들게 통일이라는 고개를 넘지 않아도 좋았을 것이다. 외세가 아니었다면 우리의 민주의식은 높은 수준에 이르렀을 것이다. 원래 우리의 인문적 인식수준은 높은 차원이었기 때문이다.

오로지 민족과 형제를 말살하는 것만을 자신의 존재이유로 삼아오다가 이제 대화가 시작되고 더구나 군사당국자 사이에 이야기가 시작되었다는 그자체는 긴 여정에서 보면 통일의 방향으로 들어선 것임은 분명하지만 그러나 외세를 외국으로 강변하면서 그 품에 안주하는 것을 당연시하는 그 행태는 진정한 통일의 여정이 얼마나 먼 것인지를 우리에게 일러주고 있다.

외세의 침탈에 휘둘리다가 주권을 빼앗기고 다시 외세의 간섭으로 분단과 군사체제에 시달려온 우리에게 통일이란 바로 자주의 실현이며 민족의식을 복원하는 도정에 다름아니다. 그 참된 출발이 바로 외세와 외국의 차이를 바로 아는 거기에서 시작될 것이다.



김봉우 논설위원 약력


민족문제연구소 소장
한민족 독도찾기 운동본부 기획위원(현)
통일뉴스 논설위원(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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