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미 대통령의 방한을 전후해 반미의 무풍지대라는 한국에서도 반미의 바람이 불었다. 그 바람은 아주 넓게 불지는 않았지만 비교적 뜨거운 편이었다. 반미의 미풍(微風)조차 잘 불지 않던 한국땅에서 반미의 열풍(熱風)이 분 것이다.

우리 국민의 반미감정은 지난달 말 부시의 `악의 축` 발언에 의해 촉발되었고, 부시의 방한이 가까워지자 분위기가 고조됐으며 그리고 부시 이한(離韓)후 꺼질 듯한 반미의 불씨가 의외의 곳에서 되살아났다. 미국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에서의 한국 선수와 미국 선수간의 쇼트트랙 판정시비가 반미감정을 극대화시켰다. 반미대상 태풍의 핵인 부시가 한국을 떠났지만 곧바로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에서 반미의 후폭풍이 불어온 것이다.

이에 대해 혹자는 스포츠와 외교는 별개의 것이라면서, 동계올림픽에서의 판정시비가 반미감정으로 흐르는 것을 못마땅해 하지만 이는 뭘 몰라도 한참 모르는 소리다. 부시방한반대 시위와 쇼트트랙 판정에 대한 항의는 외교와 스포츠라는 영역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하나의 `반미`에 대한 두 가지 형태의 `감정` 표출인 것이다.

최근 우리 국민의 미국에 대한 감정은 상할 대로 상해 있었다. 한미간의 숱한 불평등조약은 차치하더라도 이전을 약속한 용산미군기지에다 아파트를 건립하겠다는 것이나 F15 전투기를 팔아먹겠다는 것 등에 국민의 감정이 상해 있었던 것은 사실이고, 또한 졸지에 한반도에 긴장과 전쟁분위기를 몰고온 부시의 `악의 축` 발언에 대해서도 국민들의 60%가 적절치 못한 것으로 보고 있었다. 이러던 참에 부시 방한에 때맞춰 대학생들이 세종로 이순신 장군상 위에 올라가 성조기를 불태우거나 또 삼성동 미 상공회의소를 기습점거 했어도 이에 비교적 관대했던 것이다.

이처럼 감정이 상할 대로 상해 있었지만 그렇다고 행동하기는 어려운 판에 동계올림픽에서의 판정시비가 반미감정 폭발의 빌미를 제공해 준 것이다. 특히 서버를 다운시킬 정도의 엄청난 수의 네티즌들의 성난 공격은 일정 부분 부시 방한때 미처 행동으로 하지 못한 것에 대한 때늦은 감정이입으로 해석될 수 있다.

따라서 쇼트트랙 판정시비에 대한 국민과 네티즌들의 격렬한 항의는 단순히 스포츠 차원에 한정되거나 그릇된 판정에 대한 불만 정도로 치부해서는 안되며 9.11테러사태 이후 미국과 부시의 막가파식 행태에 대한 일종의 반감으로 봐야 한다.

사실 이번 부시의 방한 국면에서 최대의 `이슈 포인트`는 `부시의 방한 그 자체`나 `부시의 거친 입에서 튀어나올 말`이 아닌 또 `정부의 부시 달래기`도 아닌, 부시의 방한에 대한 국민의 일련의 의식의 흐름 즉 반미정서였다.

이렇게 볼 때 이번 부시 방한을 한마디로 결산하자면 미국이 `반미의 바람`을 회피하기 위해 잠시 또는 어쩔 수 없이 `햇볕정책`을 지지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즉 미국은 북한에 대한 이른바 `압살정책`보다는 한국의 `반미감정` 무마가 더 시급했던 것이다.

학생들의 이른바 반미 `선도투쟁`과 이에 대한 국민들의 암묵적 지지가 모든 걸 무릎 꿇게 만든 것이다. 국민의 반미감정이 부시를 유순하게 만들었고 정부로 하여금 부시 달래기의 명분을 줬고 또 야당조차 딴소리 못하게 만들었고 언론조차 모양새 좋은 한미정상회담으로 꾸미기에 바빴다.

정부 당국자의 분석대로 부시는 `악의 축`이나 `F15 전투기 강매` 등 `한국민의 관심사와 현안 등을 철저하게 사전점검해 부정적인 이슈에 대해선 언급을 하지 않기로 방침을 세운 것` 같았으며, 김대중 대통령은 1965년 당시 반일데모가 한일수교협상에서 한국정부의 입지를 넓혀준다는 점에 착안해 반미정서에 기댄 것으로 보인다.

정작 놀라운 것은 야당이다. 북한과 관련된 일에는 트집잡기와 발목잡기에 명수인 한나라당조차 `한미간의 대북인식과 정책방향이 이번 한미정상회담을 통해 좁혀진 것에 대해 긍정 평가한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한나라당조차 무언가에 놀란 게, 아니 눌린 게 틀림없다.

어쨌든 한미정상회담의 결과는 북한과의 전쟁반대, 햇볕정책지지, 한미동맹관계 재확인 등으로 나타났다. 부시는 북한에 대한 반감을 여전히 갖고 있었지만 `악의 축` 이상의 표현을 자제하려 했으며 그리하여 한반도의 긴장과 전쟁분위기가 평화상태로 반전된 것은 순전히 우리 국민의 반미정서 덕택이다.

반미의 위력이 유감없이 드러난 것이다. 이로써 한국땅에서도 때로 반미가 필요함을, 보다 정확하게는 정당한 반미, 국민정서에 맞는 반미가 필요함을 보여주었다. 그것은 국익에도 도움이 되고 민족의 이익에도 부합된다. 반미는 이제 단순히 미국반대 차원을 넘어 6.15공동선언의 정신인 민족공조의 다른 표현으로서 한반도 평화를 보장하고 민족통일로 가는 하나의 길임을 보여주었다.

더군다나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에서의 쇼트트랙 판정시비에서 보여지듯 이제는 한국에서도 반미가 인화성(引火性)이 강한 물질임이 확인됐다. 굳이 외교나 정치운동이 아니더라도 스포츠나 문화를 통해서도 반미의 불씨가 타오를 수 있음이 증명된 것이다. 그것은 곧 특정 시기 소수 운동권의 반미투쟁 차원이 아니라 언제고 다수 국민대중의 반미정서와 반미감정이 폭발할 수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반미의 무풍지대인 한국땅에서 반미의 바람이 불고 있는 것을 미국은 어떻게 보고 있을까. 미국의 대한반도정책과 대북정책의 변화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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