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설날 연휴의 최대 화제거리는 무엇이었을까? 고향에서 오랜만에 만난 식구 친지들과 주로 나눈 얘기는 아마 부시 대통령의 `악의 축`(axis of evil) 발언과 그에 따른 한반도에서의 전쟁 가능성이었지 않나 싶다. 보다 정확하게는 부시가 그렇게 말한 의도가 무엇이냐일 것이다. 여느때 같으면 대선이나 경제문제로 이야기꽃을 피웠을텐데 다소 걱정스럽게 미국과 부시에 관한 얘기를 나눴다는 것 자체가 무언가 변화의 조짐이다.

◆ 사실 부시는 말버릇부터 못되먹었다. 한반도와 관련된 그의 몇 가지 언사만 봐도 그렇다. 지난해 3월 김대중 대통령이 워싱턴을 방문했을 때 한미정상회담에서 부시는 "김정일은 못 믿을 사람"이라고 하는가 하면, 김 대통령더러 외교상 큰 실례가 되는 "this man"이라고 말해 구설수에 오른 적이 있다. 또한 `아프간 전쟁` 승리를 목전에 두고 "아프간 다음은 북한"이라 하고는 그 여세를 몰아 "2002년은 전쟁의 해가 될 것"이라고 기염을 토했다. 그 못되먹은 수사의 절정이 지난달 연두교서에서 한 "악의 축"이다.

◆ 여기서 많은 사람들이 정작 궁금해하는 것은 부시가 `악의 축`이란 말을 무슨 `의도`로 했을까보다는 과연 이 말의 뜻이나 제대로 알고 했을까 이다. 이처럼 부시에게 물음을 갖기에 앞서 황당함이 드는 이유는 얼마전 부시가 TV를 보면서 어린애들이 즐겨먹는 프레첼인가 하는 과자를 먹다가 목에 걸려 졸도해 얼굴에 상처를 입었다는 광경이 연상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째든 부시의 이 발언이 나오자 북한의 일거수일투족을 면밀히 추적하고 있는 북한 전문가들조차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고 뉴욕 타임스가 보도했다고 한다.

◆ 마침 연합뉴스에 의하면 북한 노동신문은 14일 `미국이야말로 악의 제국이다`라는 제목의 보도물에서 부시가 북한과 이란, 이라크를 `악의 축`이라고 지칭한데 대해 조목조목 반박했다고 평양방송이 보도했다는 것이다. 즉 노동신문은 ▲북한에 대한 `악의 축` 규정은 백악관 보좌진이 작성한 국정연설 초안에는 없었는데 `부시가 백악관 탁상 머리에서 제 나름대로 고안해 낸 것`이며 ▲따라서 `부시의 `악의 축`론은 아무런 이론적 근거와 자료적 증거도 없는 독설`이며 ▲결국 부시는 `논리적 사고력과 식견이 없고 무식하며 이론적 전개 능력이 빈곤한 정객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 부시에 대한 이러한 평을 보니, 문득 우리나라 반독재 민주화투쟁에서의 김대중(DJ)과 김영삼(YS), 특히 YS에 대한 당시 기자들의 입방아가 떠오른다. 전두환과 노태우 시절, 정치9단인 양김의 정치적 언사는 하도 고단수여서 일반 사람들은 물론 주변 가신들조차 그 의도를 모르거나 해석이 분분했다고 한다. 그래도 수가 깊은 DJ의 말은 논리적이어서 정보부나 정치전문가가 깊이 따지고 들면 결국엔 그 의도가 무엇인지 대강 알 수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YS의 경우는 정보부 할아버지라 해도 도무지 그 말의 뜻을 알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이유인즉 YS의 말은 비논리적일 뿐만 아니라 아무런 생각없이 툭 던졌기 때문에 사실은 YS 자신도 모른다는 것이다.

◆ 부시가 이 경우가 아닌가 싶다. 그래도 민주화투쟁 과정에서의 YS의 발언은 애교로 봐주거나 애써 좋은 의미를 갖다붙일 수가 있었다. 그러나 부시의 말은 한반도 정세가 전쟁과 평화 사이를 왔다갔다하게 하고, 우리 민족의 존망과 직결된다. 아무런 의미없이 툭 던진 말로 7천만 겨레가 긴장과 전쟁의 공포에 빠질 수 있다. 못되먹은 부시다. 더 나아가 못되먹은 말이라도 이대로 끝나면 그나마 다행이다. 무식한 사람이 말만으로라도 끝나면 좋은데 약속을 지키겠다며 굳이 행동까지 하려 한다면 그건 정말로 문제다. 생사람을 잡기 마련이다. 그러기에 19일 서울에 오는 부시가 이번에는 또 어떤 말을 할까 궁금하기에 앞서 조바심이 든다. 몇 년전 `재봉틀` 발언으로 곤욕을 치른 문인 출신 의원이 있었다. 그 발언은 못되먹은 말을 일삼는 부시에게 딱 들어맞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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