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랑 / 주권자전국회의 공동대표, 21세기 민족주의포럼 대표
 

연재를 다시 시작하며

58년 개띠 노동자 이야기를 다시 하려고 합니다. 잠시 쉰다는 것이 1년을 넘겨 버렸습니다. 그 동안 우리의 주인공 신돌석씨도 많은 일을 겪었습니다. 세상은 많이 변한 것 같은데 어찌 보면 완강하게 버티며 변하지 않는 것 같기도 합니다. 변한 것은 무엇이고, 변하지 않은 것은 무엇인지, 그보다도 변해야 할 것은 무엇이고, 변하지 말아야 할 것은 무엇인지를 소소한 일상을 통해 그려 보고자 합니다. 통일뉴스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응원과 질책을 부탁드립니다. / 필자

 

▲ [삽화-백소(白笑)]

노무현이 대통령에 당선된 뒤 형은 별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노무현 당선에 신돌석씨는 많은 기대를 하였으나, 상황이 이상하게 꼬여간다는 느낌을 받았다. 대통령에 취임하기도 전에 한나라당이 대북송금특검법을 발의하고, 민주당의 불참 속에 통과시키는 일이 발생하였다. 신돌석씨는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면서 거부권을 행사할 줄 알았다. 하지만 노무현은 대북송금특검을 받아들였고, 615 남북정상회담을 열렬히 지지하던 사람들에게는 충격적인 일이었다.

신돌석씨 주변에서는 노무현 정권의 한계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물론 한나라당의 특검 연장 시도에 노무현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여 연장은 막았다는 것을 보면 당시에는 고육지책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는 것에 대해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의석수도 적은 상태에서 대통령이 되었다고 그것을 무조건 거부하기도 어려운 실정이었다는 말도 한다. 하지만 신돌석씨 생각에는 현실론이라는 것이 제도정치권에서는 너무 쉽게 영향을 미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다.

이어서 이라크 파병 문제가 나왔다. 역시 마찬가지였다. 미국과 협조하면서 나갈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어쩔 수 없다는 것이었다. 신돌석씨는 이럴 때마다 앞장서지는 못해도 반대운동에 참여하곤 했었다. 그리고 이전에 패기만만하고 시류에 영합하는 것에 대해 질타를 하던 노무현의 모습은 어디를 갔는가 하는 생각을 하였다. 자신이 현실 정치를 너무 몰라서 그러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가져보기도 했다. 하지만 어쨌든 답답한 것은 숨길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뜻밖의 일이 터졌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이었다. 신돌석씨의 생각을 일거에 다시 노무현에 대한 옹호로 바뀌게 만든 대사건이었다. 이때도 기억하기에 형은 자기가 찍은 대통령이 탄핵되었는데도 별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이때 지수와 지훈이가 모두 대학생이었다. 종로 일대에서 벌어진 탄핵반대시위에서 지수, 지훈이를 만나는 일이 자주 있었다. 이 조카 둘은 선거권이 있기 전부터 노무현을 지지하더니 탄핵 반대에서도 앞장서서 싸웠다.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이 기각되고, 그 전에 있던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이 압승을 하였다. 지수 지훈이는 말할 것도 없고 신돌석씨도 기분이 좋았다. 진보정당인 민주노동당이 지역구 두 석에 비례대표 8석을 얻어서 모두 10석을 차지하였다. 44년 만의 진보정당 의회 진출이라고 하면서 진보세력 모두가 기뻐하는 듯하였다. 신돌석씨는 이때 정말 세상이 제대로 갈 거라고 믿었다. 열린우리당이 수구세력을 무력화시키는 데 앞장서고, 민주노동당이 성장해서 제1야당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희망도 불과 1-2년 사이에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인기는 곤두박질쳤고, 민주노동당도 내분이 심화되더니 분당이 되고 말았다. 이명박과 박근혜가 등장하였는데, 민주세력에서는 이만한 인기 있는 후보가 없었다. 결국 대선에서 참패하였다. 형이 달라지기 시작한 것은 이때쯤이었다. 형은 박근혜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명박에 대해서는 아주 호감을 갖고 있었다.

형은 이명박이 이전 독재세력들과는 달리 참신한 아이디어를 통해 우리나라 경제를 한 차원 끌어올릴 거라고 하였다. 그는 실용주의자이기 때문에 보수 진보, 독재 민주 따질 것 없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아닌 것 같은데 사실 이때는 명쾌하게 뭐라고 하기가 쉽지 않았다. 신돌석씨 공장에서도 갑자기 이명박은 괜찮을 거라는 의견들이 고개를 들었다. 무엇 때문일까? 어쩌다가 민심이 이렇게 변해 버린 것일까?

당시 한나라당의 경선에서 이명박과 박근혜는 뒤에 자신들에게 덫이 될 내용들을 마구 쏟아내서 상대를 공격하였다. 이명박의 BBK, 다스 실소유주 문제, 박근혜의 최태민 관계, 청와대 금고 돈 등이 이때 나왔다. 당장 이기면 대통령이 된다는 생각에 그들은 신나게 떠들었고, 국민들은 무관심한 듯하면서 머릿속에 새겨 넣었다. 그리고 이명박은 사상 최대의 표차로 여당 후보 정동영을 누르고 정권을 되찾았다.

신돌석씨도 이명박이 실용주의자라는 말에 대해 별로 반박할 말이 없었다. 그는 군 출신도 아니고, 독재자의 딸도 아니다. 이회창 같은 대법관 출신도 아니고, 기업인으로 성공한 사람이다. 그렇게 나라를 이끌면 되지 않는가? 헷갈리는 대목이었다. 화는 무지하게 나고 이 나라가 돈 있는 놈들을 위한 나라로 갈 거라는, 아니 원래 그랬지만 이제 좀 안 그러나 했더니 노골적으로 그렇게 되리라는 생각은 있었지만, 무어라고 비판을 해야 할지 머리가 복잡했다.

이명박이 실용주의자가 아니라 어찌 보면 민주진영보다 훨씬 더 이념 지향적이라는 것은 이후 금세 드러났다. 그 과정에서 노무현에 대한 치졸할 정도의 정치보복이 시작되었다. 어쩌다 형을 만나면 그 이야기부터 꺼냈다. 배 고픈 놈들이 권력이 주어지면 더 챙긴다는 것이다. 형은 논두렁에 시계를 버렸다는 검찰의 말을 인용하면서 국민을 바보로 아냐고 흥분하기까지 했다. 이전과는 달리 신돌석씨도 맞섰다. 그런 엉터리 같은 수사 발표를 믿냐고 했다.

만나기만 하면 그렇게 공박을 하다가 노무현 대통령이 부엉이바위에서 몸을 던진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하였다. 한동안 형을 만나지 않다가 두어 달 뒤에 만났다. 형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신돌석씨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 그냥 다른 이야기만 했다. 그리고는 헤어질 무렵 형이 한마디 했다. 아무래도 이건 좀 너무 한 거지? 누가 너무했다는 건지를 몰라서 대답을 못했다. 이건 명패를 던진 정도가 아니고, 죽게 만든 거잖아? 같이 살면 뭐가 안 되나? 그제서야 무슨 말인지 알았다. 신돌석씨는 그러게요 라는 말만 하고 일어섰다.

▲ [삽화-백소(白笑)]

그 뒤 옛날처럼 정치 이야기를 하지 않던 형이 언젠가부터 노무현한테 미안하다는 말을 자꾸 했다. 그게 언제인지는 정확하지 않다. 박근혜가 대통령이던 시절인 것 같다. 봉하마을에 한번 가고 싶다는 말도 했다. 그냥 그러려니 했다. 그러다가 촛불시위로 박근혜가 탄핵된 뒤에는 더욱 그런 말이 잦아졌다. 이명박이 구속될 때는 내가 왜 저런 놈을 지지했을까 라는 말도 했다.

박근혜도 탄핵된 뒤 구속되고, 이명박도 구속되어 세상은 다시 노무현이 탄핵을 이겨내고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이 선거에서 좋은 결과가 나왔던 2004년으로 돌아가는 듯하였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었다. 수구세력은 이전보다는 약화되었지만 여전히 호시탐탐 재기를 노리고 있는데, 그 동안 생겼던 민주진영 내의 갈등은 더욱 첨예화되었다. 신돌석씨는 그것을 가족들 사이에서 절감하였다.

서초동에서 대규모 촛불시위가 있었을 때 신돌석씨는 지수와 지훈이를 거기서 만났다. 이제 30대 후반이 되어서 지수는 아이 둘의 엄마이고, 지훈이는 아직 혼자 살고 있는데, 여전히 친노, 이제는 친문이 되어 많은 활동을 하는 것 같았다. 신돌석씨는 이전 노무현 탄핵 반대 시위나 박근혜 탄핵 촉구 촛불시위 때 얘들을 만난 것을 생각하며 굉장히 반가웠다. 끝나고 술 한잔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도 했다.

그런데 뭔가 옛날 같지 않다는 것이 느껴졌다. 이전에는 거의 전폭적인 신뢰를 하고 따르던 이들이 이제는 신돌석씨의 견해에 비판도 적지 않게 하였다. 이들은 조국 전 법무장관 같은 경우 무조건 억울하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다른 시각도 있을 수 있다고 하면 그런 것이 문제라고 하였다. 억울하게 당한 것이냐 아니냐 견해를 밝혀야 하고, 그것을 통해 옳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냐 아니냐가 판단된다는 것이다.

작은 아빠니까 적나라하게는 말하지 않았지만 결국 신돌석씨 같은 생각은 기회주의라고 말하고 싶은 듯하였다. 조카들만이 아니라 신돌석씨 가족에서도 심한 분열이 나타났다. 아내는 별로 말은 안 해도 민주당 지지 이외에는 다 소용없는 일이라고 했고, 힘찬이도 자기 사촌들과는 달리 활동은 안 해도 비슷한 생각을 가졌다. 그런데 아름이는 달랐다. 아름이는 자기 사촌 같은 사람들을 조국기 부대라고 불렀다. 서초동의 대규모 촛불시위에 대해서도 냉소적이었다.

신돌석씨로서는 정말 난감하고 안타까운 일들이 작년 가을 이후로 계속되었다. 신돌석씨는 이전에도 그랬지만 특히 최근에는 여기저기서 강연을 많이 들었다. 뭔가 많이 헷갈리기 때문이었다. 얼마 전 들은 강연 중에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에 대한 것이 신돌석씨의 생각을 많이 트이게 해주었다. 피케티가 말한 ‘세습중산층’에 대한 것을 중심으로 설명하는 것이었다. 그 강연을 듣고 나니 최근 복잡하게 보이는 문제가 많이 이해가 되었다.

강연자는 불평등이 심화되는 것은 우리나라만의 현상은 아니라고 하였다. 미국, 영국은 물론 유럽 대륙도 그러한데 거기서 우리가 눈 여겨봐야 할 것이 최상위층의 것을 나눠 갖는 세습중산층이 형성되었다는 것이었다. 우리나라에도 그런 층이 형성되었고, 건물주가 되어 자식에게 넘겨주려는 행태, 강남 등의 아파트 가격이 치솟는 문제, 스카이 캐슬 같은 데서 볼 수 있는 일류대학 의대를 향한 치열한 경쟁, 최상위권 이과생들의 의대 집중 현상 등 이 모든 것이 다 세습중산층의 기득권을 지키고 거기서 밀려나지 않으려는 아귀다툼에서 비롯된다는 것이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의사들의 집단행동도 그렇게 볼 수 있다고 하였다. 의사는 전문인이라는 측면도 있지만 이제 우리 사회에서는 최상위층 바로 밑을 차지하고 있는 하나의 계급으로 보아도 무방하다는 것이다. 그런 것을 이른바 586이 변심해서 그런 것처럼 말하는 것은 제대로 공부도 안 하고 남 탓만 하는 한심한 풍조라고 그는 말하였다. 물론 정치권에 들어가서 주류를 형성한 이른바 586이 세습중산층에 포함되고, 이에 대해 아무런 경각심을 못 가진 채 각개약진하다 조국 사태 같은 것을 만들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신돌석씨는 그의 생각에 상당히 동의하였다. 하지만 신돌석씨 주변에는 조국을 비롯한 이른바 586이 위선적이라고 공격하는 이들과, 조국을 지키기 위해 수구세력과 싸워야 한다는 사람들로 나뉘어 있었다. 수구세력을 궤멸시키면서도 진보세력이 전진해 나가는 2004년 같은 상황은 올 수 없는 것일까? 어째서 수구세력이 여전히 시퍼렇게 살아 있는데 이런 분열의 양태가 나타나고 있는 것인까?

신돌석씨는 이런 분열에 씁쓸할 때면 노무현 탄핵 때를 생각하곤 했다. 그때 불렀던 ‘너흰 아니야’는 그 후에도 시위에서 여러 차례 부른 적이 있었다. 정말 신돌석씨가 하고 싶은 말을 후련하게 해주는 노래라고 생각되었다. 당시에도 대북송금특검이나 이라크파병 등 때문에 노무현에 대한 기대가 많이 줄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수구세력 너희들은 나라를 걱정할 자격이 없다는 것이었다.

▲ [삽화-백소(白笑)]

열차가 들어왔다. 차 안에서는 되도록 말을 하지 말라고 했지만 형이 자리를 옮기자고 해서 가족석으로 갔다. 빈 좌석인 모양이었다. 도중에 좌석 임자가 탈지도 모르지만 일단 그 자리에 앉아서 마주 보면서 조그맣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려 올 때와는 달리 여기저기서 소근대는 사람들도 적잖게 있었다. 비는 잦아들면서 조금씩 내렸다. 중부지방에 다시 많이 오는 것 같았다.

형이 다음에는 5.18묘지에 가잔다. 자기는 얼마 전까지도 5.18은 전라도 사람이 한 거라는 생각만 했다는 것이다. 그 사람들한테도 죄송하다는 말을 해야겠다고 하였다. 국립묘지로 번듯하게 된 데보다는 구묘역에 가서 참배해야겠다고 한다. 그래서 두 묘역이 연결되어 있다고 했더니 그럼 두 군데 다 가면 되겠다고 했다. 신돌석씨는 봉하마을은 처음이지만 5.18묘지는 몇 번 가본 적 있으므로 자기가 안내하겠다고 했다.

그러다가 형이 볼펜을 꺼내서 내민다. 네가 활동하는 단체 후원하게 계좌번호라도 알려달란다. 신돌석씨는 좀 당황했다. 형은 이번 선거 전까지 진보정당 어디에 가입해야겠다고 생각했단다. 그런데 자기 동네에서 보니 정의당과 진보당이 뭐가 다른지 솔직히 모르겠다고 한다. 두 당 실무자들이 유세를 할 때 물어봤는데 시원한 대답을 못하더란다. 그래서 이제는 정당 가입은 접었다고 한다. 그 대신 동생이 가입한 단체가 있으면 후원이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했단다.

신돌석씨는 너무나 마음이 벅차서 대답을 못했다. 그리고 평소에 후원을 받으려고 지갑에 넣고 다니던 후원회원 가입 카드를 꺼내서 형에게 주었다.

“여기 쓰시고 사진 찍어서 주시면 됩니다. 형님 정말 고맙습니다.”

“고맙긴. 너희들이 하는 일이 잘 돼서 하나가 돼야 나한테도 좋은 거지.”

형이 잔잔하게 웃으며 창 밖으로 눈을 돌렸다. 얼마쯤 그러다가 형이 다시 말을 꺼냈다.

“그런데 말이다 돌석아, 미통당 아니 지금은 국민의 힘이냐 국민의 짐이냐, 아무튼 거기 쓸어버리고, 민주당이 제1당이 되고 정의당과 진보당이 합쳐서 제1야당이 되면 안 되냐?”

형이 말했다. 신돌석씨는 이게 바로 민중의 진정한 바람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리고 정확한 판단이다. 하지만 여전히 그것이 어려운 일로 되어 있다. 미통당보다 민주당을 더 공격하는 사람들이 진보진영 속에 적지 않고, 정의당과 진보당이 합친다는 일은 아무리 봐도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왜 그러냐고 형 같은 사람이 물어 보면 사실 할 말이 없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여전히 반수구전선은 필요하다. 어찌 보면 더 필요한지도 모른다. 거리에 나가 보면 노무현 탄핵 때만 해도 소규모였던 이들이 이제 수적으로 진보세력을 압도할 정도로 광장에 나온다. 인터넷 때문에 노무현한테 정권을 빼앗겼다고 수구세력들이 한탄했었는데 지금은 훨씬 더 많은 유튜브를 통해 가짜 뉴스를 퍼뜨리고, 정권에 대한 증오심을 부추긴다. 미국을 두둔하는 것은 그렇다 쳐도 요즘은 아예 대놓고 일본 편을 든다.

누군가 말했었지. 지배세력은 권력을 빼앗기면 열 배의 강한 힘으로 저항한다고 했다. 딱 맞는 이야기 같다. 어쨌든 반수구세력의 전선은 유지 강화되어야 한다는 것이 신돌석씨가 여전히 갖고 있는 생각이었다. 하나로 뭉쳐서 반수구세력 전선을 강하게 유지하고, 그런 가운데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면서 진보세력이 강화되는 일은 없는 것일까? 2004년 총선 뒤의 광경이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처럼 차창을 스쳐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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