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을 하야시킨 ‘워터케이트’ 특종기자 밥 우드워드의 신간 《격노》(Rage)가 연일 화제입니다. 책이 발간되기도 전에 일부 내용이 언론에 소개되면서 관심을 끌더니 책이 나오자 더 집중 조명을 받고 있습니다. 《격노》가 우리의 관심을 끄는 이유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이에 오간 친서 내용이 공개돼 있기 때문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때 ‘러브레터’라고 언급한 바 있는 바로 그 김 위원장의 친서 말입니다. 이들 친서는 두 사람 브로맨스의 상징이기도 했습니다.

우드워드는 두 정상 간에 오간 친서 27통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으며, 지난해 12월부터 지난 7월까지 트럼프 대통령과의 18차례에 걸쳐 9시간 동안 녹음까지 하며 진행된 인터뷰를 토대로 책을 썼다고 합니다. 앞에서도 밝혔지만 우리의 관심은 두 정상 사이에 오간 친서의 내용입니다. 물론 책에 나온 친서가 두 정상이 주고받은 편지의 전부인지 일부인지, 또 진짜인지 가짜인지, 나아가 트럼프 대통령의 인터뷰 발언에 대해서도 팩트인지 검증해야겠지만, 신용할만한 기자가 트럼프 대통령 동의하에 인터뷰 내용도 녹음했다고 하니 일단 인정하고 몇 가지 사안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먼저, 2017년 8월 한반도 위기설입니다. 북미가 전쟁 일보 직전까지 갔던 위기의 순간이었지요. 당시 북한이 ICBM급 ‘화성-14형’을 두 차례 시험 발사하자, 트럼프 대통령의 ‘화염과 분노’ 발언과 북한의 ‘괌도 포위사격’ 발언이 맞부딪친 것입니다. 이와 관련 우드워드가 “북한과 전쟁이 가까웠던 것으로 안다”고 하자 트럼프가 “맞다.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보다 더 가까웠다. 누구보다 김정은이 더 잘 알고 있다”고 답했다는 것입니다. 어쨌든 그 절체절명의 순간이 아무 일 없이 지나간 건 다행입니다.

다음은 주한미군철수 문제입니다. 이는 아주 민감한 문제입니다. 김정은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회담이나 서신에서 주한미군을 문제 삼지 않았는데, 오히려 트럼프가 주한미군철수를 원했다는 것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주한미군과 관련 “우리가 한국을 북한으로부터 보호한다. 그리고 한국은 텔레비전과 선박 등을 만들어 부를 쌓는다”며 “그들은 많은 돈을 벌고, 우리는 그들을 지키는 데 100억 달러를 쓴다. 우리는 호구다”라고 발언했습니다. 핵심은 김 위원장이 주한미군 문제를 꺼내지 않았기에 철수를 원하지 않는 것이라는 식으로 해석을 다는데 이는 무리입니다. 북한에서 주한미군철수는 북미관계 정상화에서 거의 마지막 단계의 사안입니다. 전략적으로 이를 초반부터 꺼내지 않았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또한 양국 사이에 늘 현안인 한미 연합군사훈련 문제가 있습니다. 김 위원장은 작년 8월 5일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낸 친서에서 “도발적인 연합군사훈련이 주요 이슈를 논의할 우리 두 나라의 실무협상에 앞서서 취소 또는 연기될 것으로 믿었다”며 “한반도 남쪽에서 벌어지는 연합군사훈련은 누구를 상대로 하는 것이며, 누구를 저지하려는 것이며, 누구를 패배시키고 공격하려는 의도인가”라고 반문했습니다. 그때는 ‘하노이 노딜’ 이후 넉 달 만인 6월 말에 판문점에서 두 정상이 다시 회동하며 대화의 불씨를 살려, 2-3주 내 북미 실무협상을 갖기로 합의했으나 지지부진하던 때입니다. 북미 실무협상이 성사돼야 하는데 그해 8월 한미 군사훈련이 취소되지 않자 강한 불만을 표출한 것입니다. 결국 7월 중순경에 열렸어야 할 북미 실무협상이 10월 초순에 열렸으나 이미 대화의 모멘텀이 식은지라 결렬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사실상 북미 간 마지막 대화의 끈이 끊어지면서 천추의 한이 된 셈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김정은 위원장에 대한 평가도 의미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8년 6월 싱가포르 정상회담에서 김 위원장을 처음 만났을 때 김 위원장이 ‘영리함 그 이상’이라는 점을 발견해 놀랐다고 말했습니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김 위원장이 “교활하고(cunning), 술수가 뛰어나고(crafty), 매우 영리하다(very smart)”면서 “그리고 알다시피 매우 거칠다(tough)”고 평가했다고 합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평가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비교적 마키아벨리즘에 부합하는 지도자인 셈입니다.

이 책이 발간되자 트럼프 대통령이 책제목 그대로 ‘격노’했다고 합니다. 코로나19의 치명적 위협을 알고도 은폐했다는 등 곤경에 처할 내용이 많으니 격노할 만도 하지만 이는 무의미합니다. 앞서 우드워드가 2018년 9월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 1년을 담은 책 《공포: 백악관 안의 트럼프》(Fear: Trump in the White House)를 발간해 트럼프 대통령의 ‘공포스러운’ 행위와 의사결정들을 폭로하자, 그가 직접 나서 우드워드를 겨냥해 ‘거짓말쟁이’라며 서로 격렬히 진실공방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트럼프 대통령이 인터뷰도 자청하고 친서도 공개해, 신간 《격노》가 나오는데 일등공신이었으니 자업자득인 것입니다.

진정으로 ‘격노’할 사람은 김정은 위원장이 아닌가 합니다. 두 정상 간에 주고받은 친서 27통이 허락 없이 공개된 점, 그리고 팩트체크가 필요하지만 장성택의 죽음과 관련해 참수된 그의 시신을 전시했다는 내용 등은 북한 측으로서는 매우 불쾌할 것입니다. 게다가,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의 환심을 사기 위해 친서에서 ‘각하’(His Excellency) 등 여러 친밀하고 과장된 표현을 많이 썼다고 하는데, 우드워드는 이를 두고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의 아첨에 마음이 사로잡혔다”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북한 ‘최고 존엄’을 아첨꾼으로 묘사한 것입니다. 이 정도라면 앞으로 김 위원장의 ‘격노’가 표출될 만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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