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범진 / 남북경협활성화추진위원회 정책위원장
 

지옥 앞에 무저갱(無低坑: 깊이를 알 수 없는 구멍)이 있다던가? 2008년 금강산관광 중단, 2010년 ‘5·24조치’로 개성공업지구를 제외한 남북경협 중단, 그리고 2016년 2월 개성공업지구 철수로 남북 사이의 모든 경제협력 사업이 중단되었다. 

그 사이 우리 사회에서는 대통령이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으로 바뀌고,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뒤에는 통일부장관도 조명균, 김연철, 이인영으로 교체되었다.

그러나 바뀌지 않은 현실이 하나 있다. 중단된 남북경협의 재개 전망과 끝없이 추락하고 있는 경제협력기업들의 삶이다. 코로나19 사태로 온 사회가 전혀 경험해보지 못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경협기업들은 코로나19보다 더한 사태를 10년이 넘도록 겪고 있어도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다.

필자는 개성공업지구에 입주가 예정되어 있던 경협사업자다. 

LH공사로부터 토지를 분양받고 입주를 예정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명박정부의 통일부장관 발표문(‘천안함 사태 관련 대북조치 발표문’, 이하 ‘5·24’조치) 하나로 사업이 중단되었고, 벌써 10년이 넘게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 경협기업들이 입은 피해에 대한 조사와 이의 보상을 위한 노력을 지속적으로 전개하였고, 국회 문턱도 수없이 드나들었다. 정부는 마지못해 몇 차례의 특별대출(보상이 아니라 원금과 이자를 상환해야 하는 대출!)을 시행했지만, 규모와 형평성에서 기업들의 요구와는 현격한 차이를 보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정부의 지원은 시혜가 아니다. 과거 정부의 잘못된 조치로 피해를 입은 데 대한 정당한 보상이다. 그 무슨 적폐 청산도 아니며, 잘못에 대한 시정조치일 뿐이다. 경협기업들이 입은 피해를 법률로써 인정하고, 그 손실을 보장하는 근본적인 해결에 나서야 하는데 어디에도 그러한 움직임은 없다.

필자가 ‘5·24조치’로 인한 피해구제에 나서지 않는 정부를 상대로 손실보상을 청구했을 때, 대법원의 판결 내용은 첫째, “‘5·24조치’는 적법한 조치이며, 기업이 입은 피해는 특별한 희생이 아니다”, 둘째, “보상에 관한 근거 법률이 없는 이상 헌법 제23조 제3항에 의하여 직접 손실보상청구권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적시하고 정부 측의 손을 들어줬다. 

사법농단의 주범인 양승태가 대법원장으로 재임하던 시기에 내려진 2015년 6월 대법원의 판결은 당시 정부에 부담되는 어떤 판결도 내린 바가 없다는 점에서 신뢰하기 어렵다. 

하지만 대한민국헌법은 제23조 제3항에 “공공필요에 의한 재산권의 수용·사용 또는 제한 및 그에 대한 보상은 법률로써 하되, 정당한 보상을 지급하여야 한다.”고 분명히 명시하고 있다. 

대법원의 판결은 앞뒤가 모순되는 판결을 하나의 판결문 안에 다 담고 있는 것이다. 

즉, 경협을 중단시켜 재산권의 행사를 제한한 ‘5·24조치’는 법률이 아닌 장관의 담화에 불과해 헌법에서 규정한 법률로서의 요건을 구비하지 못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정당하다고 판결하고, 사후적으로라도 보상지급을 법률로써 의무화하도록 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는 점을 오히려 피해기업에 대한 구제에 나서지 않아도 된다는 점으로 판시하여 결론을 호도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명백한 사법농단 대법원의 적폐판결이다.

2015년의 대법원 판결 이후 2016년 2월 박근혜 정부는 개성공업지구 전면 철수 결정을 내린다. 

필자는 2016년 2월 헌법재판소에 “천안함사태 관련 정부의 대북조치 발표문으로 인해 발생한 손실에 대한 보상법률을 제정하지 않은 입법부작위”에 대한 위헌 판단을 구하는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침해된 권리는 재산권으로서 헌법 제23조 제1항 “모든 국민의 재산권은 보장된다. 그 내용과 한계는 법률로 정한다.”이다.

이는 2008년의 금강산관광 중단, 2010년의 ‘5·24조치’로 인한 중단, 2016년 개성공업지구 철수로 중단된 모든 피해기업에도 공통으로 해당되는 내용이다. 이전 정부이든 현재의 문재인 정부이든 어느 정부도 법률로써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하거나 피해보상에 나서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해보고자 필자는 여러 남북경협기업들과 공동으로 비용을 마련하고, 변호사와 교수 등 관련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경협기업들의 피해보상과 관련된 법률을 직접 만들어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국회의원들에게 제안한 바 있다. 국정감사장에 증인으로 출석하여 발언도 했지만 해당 법률은 제도화되지 못하고 지난 국회에서 폐기되었다.

곧 정기국회가 다가온다. 이번 가을에도 경협기업들은 자신들의 피해를 조금이라도 줄여보고자, 아니 하루의 삶이라도 더 연명해보고자 의원사무실을 두드릴 것이다. 

그러나 언제까지 이렇게 정부의 시혜(절대 시혜가 아니지만!)에 기대야 할 것인가? 당연히 정부는 정부입법으로  잘못된 정책으로 사업이 중단돼 피해를 입은 기업들에 대한 손실보상에 나서야 할 것이고, 그 전에 4년이 넘도록 이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고 있는 헌법재판소는 위헌 판결을 내려야 한다. 

기업의 정상적인 경영활동이 아닌 경영외적인 사유로 특히 남북 당국에 의한 조치로 경협기업들이 피해를 입었을 때 이에 대한 정당한 보상과 적절한 구제책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남북경협 정상화나 활성화는 공염불에 불과하다. 

아무리 명분이 좋고, 설사 통일의 전령사라고 추앙받더라도 어느 누가 이런 상황에서 정상적인 경제협력 사업에 나설 수 있을 것인가? 멈춰선 시간이 너무 길다. 심장도 멈췄을 때 골든 타임이라는 것이 있다. 이제 문재인 정부와 헌법재판소는 답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모두 공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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