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우 / 전 인천대 교수

 

필자의 말

현대 사회에서 미디어는 소통의 도구이자 사회 현상을 반영하는 거울입니다. 미디어를 읽는다는 것은 거울에 비친 우리 자화상을 본다는 의미를 갖습니다. 미디어를 통해 사회를 성찰하고 뒤돌아보는 글이 되고자 합니다. 이 글은 매주 목요일에 게재됩니다.

 

홍콩 영화 중경삼림은 홍콩이 중국으로 반환되기 직전인 1994년에 제작된 영화이다. 한동안 홍콩 영화가 아시아권은 물론이고 전 세계적으로도 인기를 끌던 전성시대가 있었는데, 1980년대에 홍콩 누아르라는 장르를 개척한 오우삼 감독의 영웅본색, 첩혈쌍웅과 같은 영화는 한국에서 폭발적 인기를 끌었다. 특히 이들 홍콩 누아르 영화의 주인공 역할을 많이 했던 주윤발의 스타일은 패션 아이템이었다. 당시 한국의 수많은 남자아이들이 어울리지도 않는 바바리코트를 입고 성냥개비를 물고 다녔다.

홍콩 누아르 장르에 이어 홍콩 영화 전성시대를 이끈 것은 중경삼림의 왕가위 감독이었다. 1997년 중국 반환을 앞둔 홍콩에서는 세기말의 정서와 더불어 불안한 미래를 앞둔 암울한 분위기가 팽배했는데, 그런 분위기의 정점을 찍은 영화가 중경삼림이라 하겠다. 다양한 인종이 좁은 도시에 밀집되어 살아가는, 여러 문화가 공존하는 국제도시 홍콩은, 영국이 중국과 체결한 조차 계약이 만료되면서 전혀 다른 체제인 공산주의 중국으로 반환되었다.

반환 시점을 앞둔 1990년대의 홍콩은 당연히 어지럽고 혼란스러운 분위기일 수밖에 없었다. 많은 주민들이 홍콩을 떠나 캐나다 등으로 이민을 떠났으며 홍콩의 장래에 대한 우울한 불확실성이 극대화되던 시기였다. 그런 홍콩의 정서를 매우 세련되고 독창적인 영상 언어로 표현해 낸 영화가 중경삼림이었다. 왕가위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고 영웅본색의 오우삼 감독에 이어 미국 할리우드에 진출하여 많은 수작 영화를 만들었다. 한국에도 열혈 팬들이 많아서, 중경삼림은 21세기에 들어서 한국에서 몇 번 재개봉을 하기도 했다.

중경삼림은 빼어난 영상미 이외에 삽입된 OST도 유명하다. 아일랜드 그룹인 크랜베리스가 불렀던 드림(Dream)은 영화에 출연한 가수 겸 배우인 페이 웡이 번안해서 부른 "몽중인" 노래로 삽입되었다. 저작권 문제로 번안곡을 사용했다고 하는데, 원곡의 분위기보다 오히려 더 영화의 분위기에 어울리는 노래였다고 기억한다. 마마스 앤 파파스의 캘리포니아 드림도 삽입되었는데, 이 경쾌한 분위기의 곡은 영화의 쓸쓸한 분위기와 묘한 조화를 이룬다.

영화 중경삼림을 불쑥 끄집어낸 이유는, 최근 홍콩의 분위기가 마치 1990년대 중국 반환을 앞둔 암울한 정서를 떠올리게 만들기 때문이다. 작금의 홍콩에서 진행되는 일련의 사건을 보면 영화 중경삼림에서 묘사된 세기말적이고 염세적인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오버랩된다. 민주주의는 탄압받고 있고 사람들은 표현의 자유를 억압받고 심지어 소리 없이 사라지는 일도 있다고 한다. 한국에 거주하는 홍콩인들은 돌아가기를 두려워하고 있다니, 홍콩은 그야말로 극심한 변화를 겪고 있는 중이다.

중국 정부는 홍콩을 반환받으면서 홍콩의 자치를 보장하는 일국양제를 약속했다. 그랬기에 그동안 홍콩은 비교적 안정적인 지위를 유지했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중국은 홍콩의 자치권을 무력화시키고 홍콩을 확실하게 중국 체제에 편입시키는 정책을 차근차근 진행하고 있다. 홍콩 주민들은 이런 시도에 대해 격렬하게 저항했지만 결과가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불확실성 속에서 암울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홍콩 주민들의 노력에 대해 가장 공감하고 지지해줄 수 있는 사람들이 바로 한국인이 아닐까. 홍콩 시위 현장 모습을 보도하는 기사나 영상을 보면, 과거 민주화를 위해 투쟁했던 시절의 한국 모습을 보는 듯하다. 그렇기에 홍콩인들이 치르는 희생을 누구보다 잘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이 한국인들이다.

그런 희생을 치르고 나서 한국은 성공적으로 민주화를 달성하고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지만, 홍콩의 경우 반드시 희망적 결과가 있을 것이라 예상하기 어렵다. 국제 사회에서 홍콩의 자치권을 보장하기 위해 나름 노력을 하고는 있으나 중국 당국이 호락호락 물러설 것 같지 않다. 더욱 아쉬운 것은 한국 정부의 대응이다. 중국과의 관계를 의식해서인지 홍콩 문제에 적극적인 의견을 표명하지 않고 있다. 국익이 달린 문제에 섣불리 대응하지 않고 신중하려는 것은 이해하겠으나, 특히 암울했던 시절을 온몸으로 겪어내고 현재 정부의 권력 핵심에 진출해 있는 사람들이 홍콩 문제에 전혀 무심한 듯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정부 차원의 대응이 어렵다면 개인 자격으로라도 입장을 표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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