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우 / 전 인천대 교수

 

필자의 말

현대 사회에서 미디어는 소통의 도구이자 사회 현상을 반영하는 거울입니다. 미디어를 읽는다는 것은 거울에 비친 우리 자화상을 본다는 의미를 갖습니다. 미디어를 통해 사회를 성찰하고 뒤돌아보는 글이 되고자 합니다. 이 글은 매주 목요일에 게재됩니다.

 

빛바랜 추억. 감성을 자극하는 표현이다. 이 표현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오래되어 빛이 바랜 사진을 보고 옛날을 추억하기에 생겨난 것이 아닌가 싶다. 시간이 흘러갈수록 우리 기억이 희미해지고 각색되는 것처럼 오래된 사진은 색이 바래고 흐릿해지기에 빛바랜 추억은 사진과 딱 들어맞는 표현이다. 그만큼 사진은 우리 일상생활에서 각별한 존재이다. 특히 아날로그 시절에 찍었던 빛바랜 사진은.

사진의 발명은 기록매체의 역사에 있어서 중요한 사건이었다. 사물을 있는 그대로 촬영할 수 있다는 것은 오랜 세월 화가가 그리는 그림에 시각적 기록을 의존했던 것에 비하면 획기적인 일이었다. 근대에 촬영된 사진은 과거 생활상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의 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의 일상생활을 기록하는 매체로서 사진은 이제 마치 공기처럼 당연한 존재가 되었다. 이처럼 사진은 아마도 일반 서민들과 가장 가깝고 친숙한 생활 밀착형 기록 매체가 아닐까 싶다.

사진이 발명되기 이전에 자신의 모습을 기록으로 남기는 유일한 방법은 그림이었다. 그런데 그림은 화가의 재능이 필요하고, 재능 있는 화가를 고용할 능력이 있는 사람은 대부분 상류층이었기에 서민들의 삶과 모습을 기록하는 데 있어서 그 한계가 명확했다. 그렇기에 사진은 기록문화에 있어서 그런 한계를 뛰어넘은 획기적인 발명품이라고 하겠다. 사진의 등장 이후에 비로소 서민들의 진솔한 삶의 모습이 시각적으로 기록될 수 있었으니 말이다.

물론 초창기 카메라는 크고 무거운 장비로 인해 제약이 있었지만, 귀족들의 전유물이었던 초상화를 대중화시켰다는 점에서 사진은 혁명적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술의 발달로 카메라가 작고 가벼워져서 휴대성이 확보되자 누구나 카메라를 들고 자신의 삶을 기록할 수 있게 되었다. 일회용 카메라를 들고 수학여행을 떠났던 기억이 있는 세대라면 카메라가 일반 대중의 일상생활을 어떻게 쉽게 기록하고 빛바랜 추억을 만들었는지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20세기 말, 디지털 혁명이 진행되면서 우리 삶의 패러다임은 지금도 지속적으로 변하고 있는데, 사진도 예외는 아니다. 필름을 카메라에 넣고, 현상과 인화 과정을 거쳐서 종이에 착화되어 나오던 일련의 과정은, 디지털카메라가 보급되면서 촬영 즉시 모니터를 통해 사진 결과물을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굳이 종이에 프린트를 하지 않아도 컴퓨터 화면에서 확대된 사진을 즉각적으로 볼 수 있으며 마음대로 편집도 가능하게 되었다.

디지털화가 가져온 변화는 스마트폰이 대세가 되면서 더욱 극적으로 진화했다. 스마트폰의 카메라 기능은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여 이제는 굳이 따로 카메라를 장만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 정도이다. 언제 어느 장소에서건 그저 무심히 촬영 버튼만 누르면 누구나 훌륭한 사진을 촬영할 수 있게 되었다. 스마트폰 자체에 내장된 각종 보정장치들은 악조건에서도 보기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에, 서민들의 기록 매체라고 하기에 손색이 없다.

하지만 이런 변화와 발전이 마냥 좋지만은 않다. 디지털 사진은 아무리 세월이 흐르고 아무리 많이 복제를 해도 그 품질이 변하지 않는다. 이제 더 이상 사진은 빛이 바래지 않는다. 빛바랜 추억을 곱씹고 싶다면, 억지로 멀쩡한 사진에 빛바랜 디지털 효과를 입혀줘야 한다. 이것은 빛바랜 가짜 추억이 되는 것은 아닌지? 기억이 빛이 바래갈 즈음에, 오히려 디지털 사진을 보고 다시금 생생한 기억으로 되살아나는 것은 아닐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 환경으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당연히 받아들여야 할 일이지만, 그리고 기록매체로서의 사진이 더욱 기능이 충실해진 진보이겠으나, 가끔은 희미해지거나 잊혀야 할 기록이 과도하게 생생하고 지워지지 않는 기록이 되어버리는 것 아닌가 싶다.

카메라를 제조하던 업체가 이제 더 이상 카메라를 생산하지 않는다는 소식과 더불어 그 원인이 스마트폰의 카메라 기능이 너무 좋아져서라는 기사를 읽고 기록매체로서의 아날로그 사진과 디지털로 진화과정의 변화에 대한 상념을 하게 되었다. 이제 더 이상 추억은 빛이 바래는 것이 아니라, 인위적으로 탈색하는 것이 된 것 같은 생각이 문득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여전히 추억은 아름답고 소중한 것임에는 변함이 없겠지만, 희미해지고 빛이 바래야 제격일 추억이 너무 생생하고 디테일하게 보존되는 것은 기술의 진보가 가져온 부작용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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