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우 / 전 인천대 교수

 

필자의 말

현대 사회에서 미디어는 소통의 도구이자 사회 현상을 반영하는 거울입니다. 미디어를 읽는다는 것은 거울에 비친 우리 자화상을 본다는 의미를 갖습니다. 미디어를 통해 사회를 성찰하고 뒤돌아보는 글이 되고자 합니다. 이 글은 매주 목요일에 게재됩니다.

 
한때 신문의 사설이 사회를 보는 창이자, 논리적 글쓰기의 교본이던 시절이 있었다. 신문이 언론으로 신뢰받고 사랑받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신문의 사설이나 논설은 사회를 이해하는 중요한 수단으로 인정받았다. 사설뿐 아니라 대체로 신문에 실리는 글은 정제되고 함축적인 글이었고 특히나 그 진실성은 거의 절대적이었다. 검열이 심하던 시절에는 검열당한 부분을 백지로 내보낼지언정 진실이 아닌 글을 신문에 싣지 않겠다는 양심과 기백을 언론이 가지고 있었던 시절이기도 했다. 그랬던 만큼 신문에 실리는 글은 그 권위를 인정받았고, 품격 있는 글이었다. 

세월이 흐르고 미디어 환경이 변하면서 신문의 위상과 존재감이 변하게 된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그런 단순한 변화가 아니라 추락하고 심지어 타락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작금의 신문이 보여주는 모습이 되었다. 기자들이 기레기 소리를 듣는 것은 물론이고 그보다 더 심한 비아냥의 대상이 될 정도로 추락했다.

신문의 위상이 한껏 높았던 시절, 논설위원의 논설은 그 신문에 실리는 글 중에서도 특히 경륜과 품위를 인정받는 글이었다. 그러나 최근의 신문에서 논설위원은 거의 막말을 쏟아내는 존재로 타락했다. 최근 북한의 위협에 대해 여러 기사가 쏟아지고 있는데, 문화일보에 실린 이현종 논설위원의 글은 언론이 얼마나 타락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 듯하여 씁쓸하기만 하다. 

그동안 평화 메신저의 모습을 보였던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의 변신은 충격적이라고 서두를 연 글은, 전혀 근거 없는 추측으로 터무니없이 마무리를 하고 있다. 조신하고 수줍어하던 모습은 사라지고 막말을 쏟아내고 있으며, 등 돌린 연인에 대한 저주도 이보다 심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는 부분은 단순한 의견으로 생각하고 넘어갈 수 있겠으나, 그다음에 나오는 글은 근거 없는 추측을 늘어놓고 있다. 

오빠를 대신해서 나쁜 경찰 역할에 나섰다는 부순은 분석이겠으나, "김여정이 앞으로 김정은을 대신할 가능성도 점쳐진다"는 부분은 근거 없는 억측의 시작이다. 다음 부분은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서 김정은 건강 이상설과 권력승계를 말하고 있다. 짧은 글에서 비약도 이런 비약이 없다.

"김정일이 김정은에게 권력을 이양할 때 했던 '당 중앙'의 역할을 김여정이 하는 것을 보면 김정은의 건강이상설이 허위는 아니라는 지적도 전문가들 사이에선 나온다. 사실상 권력승계로 보는 시각도 있다. 예전에도 '서울 불바다'발언이 있었지만, 지금처럼 백두혈통이 총대를 멘 적은 없다. 한 대북 전문가는 김여정 담화에 쓰인 단어를 분석해 보면 감정의 기복이 심하고 격해 '정신적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도 의심하고 있다."

그러니까 김여정의 발언을 놓고 앞으로 김정은을 대신할 권력승계라는 전혀 근거 없는 추측을 분석이라고 하더니, '정신적 문제'가 의심된다는 말로 끝을 맺는다. 외교적 관계를 염두에 둔 지극히 계산적 발언을 놓고 감정의 기복이 심해서 정신적 문제가 있다는 주장을 이렇게 할 수 있다니, 글을 작성한 논설위원의 정신상태가 오히려 궁금해지는 글이다. 

불과 얼마 전에 소위 북한 전문가라는 사람들의 근거 없는 추측을 인용해서 김정은의 건강 이상이 기정사실인 것처럼 보도하던 언론이다. 전혀 사실무근으로 밝혀졌는데 아무도 사과하는 언론이 없다. 그런데 또다시 이런 억측이 버젓이 신문 지상에 다시 등장하다니, 한국 언론의 타락한 위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듯하여, 그저 측은할 뿐이다.

끝없이 추락해버린 언론의 위상으로 인해 어떻게든 지푸라기라도 붙잡고 살아남으려는 몸부림을 이해 못하는바 아니지만, 이런 식의 기사를 이어갈수록 더욱더 몰락을 재촉한다는 사실을 왜 모르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신문을 제대로 된 언론의 범주에서 제외시킨 지 이미 오래되었기에 그다지 놀라운 일은 아니었지만, 한때 신문의 사설과 논설을 열심히 탐독했던 독자의 한 명으로, 위 논설을 읽으며 한탄스러운 마음이 문득 들었다. 이렇게까지 추락하고 타락한 신문을 지켜볼 수밖에 없다는 것은 사회적으로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