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석근 / 시인

 

필자의 말

안녕하세요?
저는 아득히 먼 석기시대의 원시부족사회를 꿈꿉니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천지자연이 하나로 어우러지던 눈부시게 아름답던 세상을 꿈꿉니다.
인류는 오랫동안 그런 세상을 살아왔기에
지금의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천지자연을 황폐화시키는 세상은 오래 가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또한 우리에게 지금의 고해(苦海)를 견딜 수 힘이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저는 그 견디는 힘으로 ‘詩視한 세상’을 보고 싶습니다.
원래 시인인 ‘원시인’의 눈으로 보면 우리는 이 참혹한 세상에서 희망을 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가시 울타리
- 왕유

빈 산 사람은 보이지 않고,
다만 두런대는 말소리만 들린다.
지는 햇빛 깊은 숲에 들어와,
다시 푸른 이끼 위를 비춘다.

 

요즘은 시간이 많아 거의 매일 산에 오른다.

가끔 ‘가시 울타리’를 본다. 안심이다. 사람의 흔적. 나무 의자에 앉아 있으면,

‘빈 산 사람은 보이지 않고,/다만 두런대는 말소리만 들린다.’ 포근하다. 잠이 슬핏 든다.

잠결에 보는 세상은 눈부시다.

‘지는 햇빛 깊은 숲에 들어와,/다시 푸른 이끼 위를 비춘다.’

나이 70대 중반 쯤 되어 ‘자연인’이 되려 했는데, 코로나 19 덕분에 예행연습을 한다. 나는 인생의 말년을 충분히 ‘자연인’으로 잘 살 것 같다.

젊은 시절부터 ‘자유인’으로 살아오며 세상만사를 대충 다 겪어 보았기에 가능한 것 같다. 만일 ‘평생직장’에서 퇴직했다면 ‘자연인’은 불가능할 것이다. ‘내 나이가 어때서?’ 속으로 웅얼거리며 다시 일자리를 찾아 나서게 될 것이다. 혹은 산에 홀로 살면서 속으론 세상을 흘깃거리는 ‘사이비 자연인’이 되든지.

미국의 작가 존 스타인벡이 지은 장편소설 ‘분노의 포도’에는 1929년에 시작된 사상 최대의 대공황으로 하루아침에 부랑자가 되어 떠도는 가족 이야기가 나온다.

농촌 공동에서는 어느 누구도 굶지 않는다. 대충 얼기설기 ‘가시 울타리’를 짓고 살아도 사철 등 따뜻하게 살 수 있다. 산과 들, 냇가에 가면 먹을 게 지천으로 널려 있다. 독에 쌀이 떨어져도 이웃의 따뜻한 손길이 있다.

그렇게 살던 마음씨 고운 순박한 사람들의 세상에 경제 대공황이라는 괴물이 나타나며 일순간에 인심(人心)이 바뀐다.

대대손손 흙과 함께 살아오던 사람들의 보금자리를 트랙터가 나타나 다 부수어 버린다. 어딜 가도 일자리를 찾는 사람들뿐이다. 곡물 가격의 안정을 위해 과일들을 내다 버린다. 굶주린 사람들이 아귀가 되어 달려들면 농장주들은 과일에 휘발유를 뿌려 먹지 못하게 한다.

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공동체 정신을 잃지 않는다. 길에서 낯선 사람끼리 서로 돕는다. 아이들에게 동전을 준다. 미래를 위해.

아이를 사산한 젊은 여인은 죽어가는 노인의 입에 젖을 물린다. 가장 낮은 곳에 사는 사람들은 삼라만상이 하나의 영혼임을 안다.

하지만 이제 공동체 정신은 찾아보기 힘들다. 자본주의는 지구 곳곳을 사람들의 뇌리까지 탐욕으로 물들였다.

급기야는 태곳적부터 원시림에서 깊은 잠에 빠져 있던 바이러스들을 깨웠다. 이제 자본주의의 탐욕은 멈추는 듯이 보인다.

하늘이 맑게 개이고 사람들은 회개하는 듯하다. 하지만 자본주의는 쉽게 죽지 않을 것이다. ‘환골탈태’할 것이다.

코로나 19로 다시 세계는 대공황으로 접어들고 있다. 대안으로 ‘기본소득제’가 등장한다.

하루아침에 부랑자로 추락하는 현실에서 기본소득제는 최소한의 안전장치일 것이다.

기본소득제를 통해 모든 사람들이 ‘자연인’을 꿈 꿨으면 좋겠다. 자연인의 수련 과정으로 학교에서 인문학을 철저하게 공부했으면 좋겠다. 사실 인간이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그다지 많은 돈이 필요하지 않다.  

 

 

경북 상주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중학교 졸업 후 고향을 떠나 철도고등학교 운전과를 졸업한 후 기관조사로 근무하다 충북대학교 사회교육과에 진학했습니다.

졸업 후 중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는 동안 잠시 전교조 활동을 했습니다. 교직을 떠난 후 빈민단체(주거연합)에서 활동하다 한길문학예술연구원에서 시 창작을 공부했습니다. ‘리얼리스트 100’에서 주는 제6회 민들레 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지금은 경기도 부천에서 살며 글을 쓰고 인문학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지은 책으로는 시집 ‘나무’ 산문집 ‘명시 인문학’ 에세이집 ‘숲’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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