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두 「수리공」


일거리 없는 「데모」날

떨어진 구두창의 신음소리 들으며

 

3월 30일(목요일, 맑은 날씨)

 

둘째 녀석을 해산한지 한 달 – 이름을 아직 못지어준 것이 가슴 아프다. 날이 새면 꼭 작명소에 가야겠다. 아비 구술을 왜 이다지도 못하는 것일까?

덕철이도 벌써 세살 이 좁은 셋방에 네 식구가 늘었으니, 살아갈 일이 점점 암담해진다. 서울운동장 담벽 밑에서 구두수선을 한지 5년이 되었건만 부부 동반이라고 해서 극장에 간 기억은 꼭 한번 분이니 너무나 청춘이 가엾다.

미역국도 제대로 못 끓여 먹고 파리해진 어미 품에서 어린 것들은 지금 세상없이 젖을 빨고 있다. 잘 먹기라도 했으면 젖도 잘 나오련만 내 수입 하루 7, 8백환으로는 어쩔 도리가 없으니 부끄럽기보다 눈물겨워진다.

닭아 빠진 흙투성이 구두를 하루 설흔컬레나 만져서 손은 온통 터져 피가 줄줄 흘러도 이 모양이니 어떻게 된 영문일까? 게으른 탓일까?

나는 이 모양으로 허름한 옷을 입고서라도 저렇게 고생하는 아내에게는 깨끗한 옷 한 벌을 사줘야겠다. 이 손이 닳아 떨어져도 올 봄에는 꼭 새 옷을 사줘야겠다.

벌써 아이 둘을 낳은 어머니가 아닌가? 그리고 이 봄에는 그 옷을 입혀서 아이들과 함께 창경원 구경을 가고야 말테다.

그러나 왜 요즈음은 이렇게도 경기가 없을까.... ? 「데모」라도 시내에 있는 날이면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구두조차 고치려 들지 않는다. 세월이 하두 어수선한 탓인가?

아니 세상이 어떻든 나는 죽도록 일하련다. 비오는 날이라도 나는 거리에 나가련다.

비를 흠뻑 맞으면서도 나는 죽도록 일하련다. 누가 뭐라 하든지 나는 나의 일을 해야겠다.

× ×  

요즘 사람들은 다 떨어져가는 구두를 수리하려고 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오늘도 십여명이나 너덜너덜한 신을 끌고 내 앞을 지나갔다. 끈을 갈고 못을 박고 기워서 신어야 할 하많은 신들이 내 앞에 맥없이 지나갔다.

구두창을 갈아야 할 신발이 신음하듯 한 소리를 남기며 지나갔다.

그리고 기름을 발라 말끔히 닦아야 할 너절한 신, 신발들이...

내일이면 그런 신들을 내 손으로 마음껏 고쳐주고 닦아주리...

아니 그보다 내일이면 먼저 꼬마 이름부터 지어주어야겠다.

 
을지로 6가

김재환(33)
 

▲ 거리의 초상 (1) [민족일보 이미지]

<민족일보> 1961년 4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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